[별세개반이상만 #74] <슈퍼 해피 포에버>
※ 영화 <슈퍼 해피 포에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3년 8월 19일, '사노'(사노 히로키)는 친구 '미야타'(미야타 요시노리)와 함께 이즈반도의 한 호텔에 도착합니다. 여름 휴양지를 찾은 관광객치고 '사노'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죠. 호텔 프런트에서 5년 전 잃어버린 빨간 모자를 찾아달라고 요구하고, 해변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아이에게 "빨간 모자, 아드님 건가요?"라며 무례하게 따져 묻는데요. 누군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는 휴대전화를 바다에 던져버리기까지 합니다. 무언가 깊은 상실이 그를 잠식하고 있었죠.
'미야타'가 주선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동석한 여성들은 '슈퍼 해피 포에버'라는 자기 계발 모임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사노'는 냉소적으로 반응합니다. 사이비 같다고 말이죠. 하지만 곧 밝혀집니다. '사노'는 얼마 전 아내 '나기'(야마모토 나이루)를 잃었고, 이곳은 5년 전 '나기'와 처음 만난 장소였다는 것이죠.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사노'는 혼자였습니다.
그날 밤, 잠들지 못한 '사노'는 복도에서 베트남인 객실 직원 '안'(호앙 느 꾸잉)이 흥얼거리는 'Beyond the Sea'를 듣는데요. 그 순간 카메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영화는 2018년 8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같은 호텔, 같은 방. 하지만 이번엔 '나기'가 체크인하죠. 친구가 할머니 임종으로 함께 오지 못하게 되었지만 '나기'는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기로 결심합니다. 로비에서 우연히 '사노'와 '미야타'를 만난 '나기'는 셋이서 마을을 구경하고, 저녁엔 '사노'와 클럽으로 향하죠.
<애프터썬>(2022년)에서 30살 '소피'가 11살 자신과 아버지의 여행을 캠코더 영상과 기억으로 재구성했듯, <슈퍼 해피 포에버>도 기억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은 샬롯 웰스 감독과는 다른 방식을 택하죠. <애프터썬>이 한 사람의 관점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직조했다면, <슈퍼 해피 포에버>는 두 사람의 관점을 교차합니다. 1부는 '사노'의 시선으로 상실 이후를 그리고, 2부는 '나기'의 눈으로 그 시작을 보여주죠.
이 구조가 흥미로운 이유는, 2부가 '사노'가 말로만 전했던 과거를 '검증'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5년 전과 똑같은 옷을 입고 왔다는 사실, '나기'가 묵었던 바로 그 방을 예약했다는 사실이 '나기'의 시점에서 확인되죠. <애프터썬>의 '소피'가 아버지의 부재를 직접 외치지 않았듯, <슈퍼 해피 포에버>의 '사노'도 자신의 슬픔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관객은 '나기'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보며 역으로 '사노'의 상실이 얼마나 깊은지 체감하죠.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은 이 영화가 코로나 시기 절친한 친구의 죽음에서 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30대의 건강한 친구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 충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하죠. "이 영화를 한 줄의 시간선으로 보면 슬픈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시간을 직선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행복했던 순간들은 지금 어딘가에 살아 있다"라는 감독의 말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다카하시 와타루 촬영감독은 두 시간대를 똑같은 밝은 낮 햇살로 촬영했는데요. 시각적 단서 없이도 관객은 분위기만으로 시간의 차이를 감지하죠. 2023년의 호텔은 텅 비어 있고, 객실 복도엔 먼 곳에서 들려오는 기계음만 울립니다. 반면 2018년 같은 복도를 '나기'가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죠. 프런트 직원과 나누는 짧은 대화, 열쇠를 받아 드는 손의 움직임만으로도 공간은 달라집니다.
영화는 2018년과 2023년, 정확히 5년의 간극을 두는데요. 그 사이에 팬데믹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사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2023년의 풍경이 말해주죠. '사노'와 '미야타'가 찾아간 식당은 문을 닫았고, 호텔은 이번 여름 시즌을 끝으로 영구 폐쇄될 예정이었습니다. 5년 전 '나기'와 '사노'가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공간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죠.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변한 것들을 찾아내는 일, 그것이 '사노'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감독이 선택한 배경이 '아타미'라는 점인데요. 도쿄 남쪽 이즈반도에 있는 이 해안 도시는 한때 신혼여행지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쇠퇴한 관광지죠. 감독은 코로나 이후 젊은이들이 이런 버려진 휴양지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합니다. 황금기를 지나 쇠락의 시간을 맞이한 장소, 그곳에서 '사노'와 '나기'는 만났죠.
<비포 선라이즈>(1995년)가 빈의 거리를 청춘의 로맨스로 채웠다면, <슈퍼 해피 포에버>는 폐쇄 직전의 리조트를 기억의 저장소로 만드는데요. 야마모토 나이루의 '나기'는 '셀린'(줄리 델피)처럼 자유롭고 활기찹니다.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2025년)에서 적군파 '아스카'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야마모토 나이루는 여기서 정반대의 매력을 보여주죠. 거칠고 날카로웠던 '아스카'와 달리 '나기'는 따뜻하고 순수합니다.
한편, 바비 다린의 'Beyond the Sea'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적 모티프인데요. 감독은 집 근처 이자카야에서 술을 마시다 이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이 노래로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2018년 클럽에서 '나기'가 부르던 이 노래를 2023년엔 '안'이 흥얼거리죠. 음악이 두 시간을 연결하는 순간, '사노'는 과거로 빠져듭니다. '안'이 '나기'가 잃어버린 빨간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한데요. '나기'의 흔적이 다른 누군가의 일상에 남아 계속 순환하죠.
또한, 제목 '슈퍼 해피 포에버'는 역설적입니다. 감독은 "무엇보다도 행복한 제목을 원했다. 동시에 일종의 기도이기도 하다.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고,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영원한 행복 같은 건 없죠. '나기'는 죽었고, 호텔은 문을 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안'에게로 초점을 옮깁니다. '안'은 호텔이 폐쇄된 후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죠.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났지만, 그 흔적은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계속됩니다. 관객은 '사노'가 어떻게 살아갈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안'의 모습을 통해 상실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은 존재하는데요. '사노'에게 '나기'와의 여름이 그렇고, 관객에게 이 영화가 그럴 것입니다. ★★★★
2025/12/26 CGV 강변
※ 영화 리뷰
- 제목 : <슈퍼 해피 포에버> (Super Happy Forever, 2024)
- 개봉일 : 2025. 12. 24.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95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이가라시 고헤이
- 출연 : 사노 히로키, 미야타 요시노리, 야마모토 나이루, 호앙 느 꾸잉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