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체가 어떠한 기적을 바란다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40]

by 양미르 에디터
4943_5386_4659.jpg 사진 = 영화 '신의악단' ⓒ CJ CGV(주)

북한 보위부 소좌 '박교순'(박시후)은 당으로부터 전례 없는 명령을 받는다. 국제사회로부터 2억 달러 지원금을 받기 위해 '종교의 자유'를 증명하라는 것. 어제까지 지하교인을 고문하던 그가 이제는 가짜 찬양단을 만들어야 한다. 과거 량강도 최고의 악단이었으나 탈북 사건으로 좌천된 연주자들을 급히 소집하고, 가짜 목사와 전도사까지 급조하며 2주 안에 완벽한 부흥회를 완성해야 하는 상황. 보위부 대위 '김태성'(정진운)은 '교순'과 대립하며 이 위험한 작전을 감시한다.


찬양 연습이 거듭될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냉혈한이던 '교순'의 표정에 균열이 생기고, 오합지졸이던 악단원들 사이에 묘한 연대가 형성된다. 막내 기타리스트 '리만수'(한정완)가 연습 중 뜬금없이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를 연주하는 순간, '교순'은 자신도 모르게 그 선율에 이끌린다. 십자가 환영에 시달리며 자아비판하는 베이시스트 '김창수'(남태훈), 격정적인 깃발 댄스로 혼을 빼놓는 '양선자'(최선자),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악단 주위를 맴도는 '리수림'(고혜진) 등을 통해 가짜로 시작된 연극은 점점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운명의 날, '교순'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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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악단>은 <7번방의 선물>(2013년)의 각본가인 故 김황성 작가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다. 김형협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거짓된 상황 속에서 결국 우리가 찾고 싶은 것은 인간애와 사랑이라는 본질"이라고 밝혔다. 박시후는 약 15년 만의 영화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냉철한 보위부 장교가 오합지졸 악단원들과 교류하며 점차 변해가는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라며 작품 선택 이유를 설명했다. 영하의 몽골 로케이션에서 스태프의 수염에 고드름이 매달릴 정도의 혹한을 견디며 촬영했다는 비하인드도 전해진다.

<신의악단>의 문제는 캐릭터가 '변화'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교순'이라는 인물이 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관객에게 설득하는 대신, 영화는 찬양곡의 힘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가 지하교인을 고문하던 과거, 체제에 대한 충성심, 승진에 대한 욕망 같은 구체적인 내적 갈등은 피상적으로만 스쳐 지나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회상 장면은 그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그 서사적 밀도는 지나치게 얇다. 정진운도 냉혹한 보위부 대위 역할을 서늘한 눈빛과 절제된 연기로 캐릭터를 소화해 냈지만, '태성'이 왜 적대에서 이해로 전환되는지 그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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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지나며', 'Way Maker', '은혜' 같은 CCM 명곡들이 극 중에서 반복적으로 울려 퍼진다. 감독이 강조했듯 "주인공 '교순'의 심경 변화를 끌어내는 영화적 장치"로 기능하는데, 역설적으로 이 음악들이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유일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찬양이 마음을 무너뜨린다는 설정은 신앙을 가진 관객에게는 충분히 설득력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극장이지 예배당이 아니다. 신앙의 언어로만 소통하는 작품은 필연적으로 관객을 나눈다. 믿는 자에게는 감동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의문이 남는 구조. 쿠키 영상에서 정장 차림의 '박교순'이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많은 사람이 따스하게 그를 바라보는 장면은 이 영화가 결국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이 못다 이룬 꿈인지, 내세의 은총인지는 해석의 영역이지만, 분명한 건 그 장면이 기독교 신앙 없이는 온전히 이해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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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적을 믿는다. 찬양 몇 곡으로 냉혈한이 변할 수 있다고, 2주 만에 적이 동지가 될 수 있다고,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실할 수 있다고. 그런데 영화 자체도 기적을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서사의 논리 없이, 감정의 축적 없이, 오직 음악의 힘만으로 관객이 감동하기를. 신앙이 있는 관객에게는 그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 하지만 극장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영화는 모든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신의악단>은 그 의무를 신에게 떠넘긴 채, 기도하듯 기다리고 있다. ★★2026/01/04 메가박스 군자※ 영화 리뷰

- 제목 : <신의악단> (Choir of God, 2025)
- 개봉일 : 2025. 12. 31.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10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김형협
- 출연 : 박시후, 정진운, 태항호, 장지건, 한정완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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