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연출한 '지긋지긋한 가난' 밈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41] <굿 포츈>

by 양미르 에디터


4961_5436_3017.jpg 사진 = 영화 '굿 포츈' ⓒ (주)누리픽쳐스

LA 하늘 위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천사 '가브리엘'(키아누 리브스)은 작은 날개를 가진 하급 천사다. 그의 임무는 운전 중 문자를 보내다 사고 날 뻔한 사람들의 어깨를 살짝 건드려 정신 차리게 하는 것. 거창한 날개를 달고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거나 자연재해를 막는 상급 천사들을 부러워하던 '가브리엘'은 어느 날 차에서 노숙하며 배달과 심부름 앱으로 연명하는 '아지'(아지즈 안사리)를 발견한다.


다큐멘터리 편집자를 꿈꾸지만, 주차 벌금과 별점 시스템에 시달리는 '아지'의 모습에서, '가브리엘'은 자신이 구원해야 할 '길 잃은 영혼'을 찾았다고 확신한다. '아지'는 잠깐 백만장자 벤처 투자자 '제프'(세스 로건)의 개인 비서로 일하며 상류층의 삶을 엿보지만, 데이트 비용을 회사 카드로 결제했다가 해고당한다. 절망에 빠진 '아지'를 위해 '가브리엘'이 꺼낸 카드는 파격적이다. 일주일간 '제프'와 '아지'의 삶을 맞바꿔주는 것.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야"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겠다는 순진한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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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벨에어 저택에서 눈을 뜬 '아지'는 예상과 달리 환호한다. 돈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가브리엘'의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원래 삶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아지', '아치'가 그랬던 것처럼 차에서 노숙하게 된 '제프', 그리고 월권행위로 날개를 박탈당해 인간으로 강등된 '가브리엘'. 세 남자의 뒤엉킨 운명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굿 포츈>의 가장 큰 미덕은 키아누 리브스다. '존 윅'의 카리스마를 완전히 내려놓고 멍하면서, 무해한 천사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선물이다. 첫 햄버거를 베어 물며 천국이 열린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 인간으로 강등된 후 앞치마를 입고 담배를 피우며 허탈하게 웃는 모습 등 키아누 리브스는 순진무구함과 성숙한 연기력을 결합해 '가브리엘'을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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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즈 안사리 감독이 직접 배달 일을 체험하고 플랫폼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쌓은 디테일도 눈에 띈다. 소변통을 차에 비치해야 하는 배달 기사의 현실, 2시간 줄 서서 받아온 시나몬 번이 주문 취소되는 순간의 허무함, 별점 하나가 생계를 좌우하는 시스템의 잔혹함 말이다. 이런 진정성은 분명 영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천사 세계를 공무원 조직처럼 위계화한 설정도 재치 있다. 날개 크기가 곧 서열을 의미하고, 산드라 오의 거대한 날개가 '가브리엘'의 작은 날개를 압도하는 장면은 시각적 유머와 사회 풍자를 동시에 달성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근본적인 불편함을 피할 수 없다. 최근 한국 SNS에서 논란이 된 '지긋지긋한 가난' 밈을 떠올려보자. 페라리 키 옆에 라면과 김밥을 놓고 "지긋지긋한 가난"이라 적거나, 비행기 일등석에서 기내식을 먹으며 "지독한 가난"을 한탄하는 게시물들. 가수 김동완은 이를 "타인의 결핍을 소품으로 다루는 것"이라 비판했고, 박완서의 1975년 소설 <도둑맞은 가난>이 다시 소환됐다. 빈민가 가난을 체험하러 온 부잣집 도련님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경고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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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포츈>이 불편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할리우드 백만장자들이 '긱 이코노미'의 고통을 '연기'하며 "돈이 전부는 아니야"라고 설교하는 구도. 그들이 차에서 노숙하는 연기를 하고, 배달 앱 노동의 고단함을 코미디 소재로 삼는 동안, 영화는 실제 가난이 동반하는 현실적 고통을 지워버린다. 실제로 LA에서 차량 노숙 경험이 있다는 인디와이어의 한 평론가는 "이 농담은 '제프'들을 위한 것"이라면서, "부자 할리우드 스타들이 만든 이 영화를 보면서, 그들이 긱 이코노미를 정말 이해하는지 의심스럽다"라고 언급했다.

영화는 결국 '아지'가 원래 삶으로 돌아가야 할 설득력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 케케 파머가 연기한 노동조합 운동가 '엘레나'는 그저 교훈을 전달하는 장치로 전락하고, 타코와 춤과 웃음이 중요하다는 결론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굿 포츈>이 제시하는 해법은 결국 부자 '제프'가 양심을 찾고 직원들에게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것. 구조적 불평등은 개인의 선의로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렇게 <굿 포츈>은 충분히 멀지도, 충분히 가깝지도 않은 어중간한 지점에 머문 작품이 됐다. ★★★

2026/01/11 메가박스 군자

※ 영화 리뷰
- 제목 : <굿 포츈> (Good Fortune, 2025)
- 개봉일 : 2026. 01. 07.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98분
- 장르 : 코미디, 판타지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아지즈 안사리
- 출연 : 키아누 리브스, 아지즈 안사리, 세스 로건, 산드라 오, 케케 파머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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