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76] <누벨바그>
1959년 여름, 파리의 거리는 뜨거웠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아드리앙 루야르)의 <400번의 구타>(1959년)가 칸 감독상을 받고 돌아온 직후였죠.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들은 하나둘 감독으로 전향하고 있었는데요. <사촌들>(1959년)로 베를린 황금곰상을 받은 '클로드 샤브롤'(안토인 베송)도, '에릭 로메르'(코메 티울린)도, '자크 리베트'(조나스 마미)도 이미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죠. 그 무리 중 마지막으로 남은 29세의 '장 뤽 고다르'(기욤 마르벡)만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고의 비평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던 자신의 선언을 실천할 기회를 말이죠.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누벨바그>는 그 기회가 왔을 때의 이야기인데요. 영화는 고다르 감독이 20일 동안 파리 거리를 질주하며, <네 멋대로 해라>(1960년)를 찍던 그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가죠. 하지만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전설의 탄생을 경건하게 기록하는 대신, 아무도 자기가 전설이 될 줄 모르던 그 시절의 공기를 붙잡으려 한다는 점인데요. 링클레이터 감독은 20살에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받았던 충격을 40년 넘게 간직해온 사람이죠. 그래서 그가 만든 건 경배가 아니라 연애편지에 가깝습니다.
대본도 제대로 없이 시작된 촬영 현장은 매일 아침이 모험이었죠. '고다르' 감독은 카페에서 냅킨에 대사를 휘갈겨 적어 배우들에게 건넸고, 영감이 떨어지면 두세 시간 만에 촬영을 접었습니다. 어떤 날은 아예 한 컷도 찍지 않았죠. 제작자 '조르쥬 드 보르가르'(브루노 드레이퓌르스트)는 전전긍긍했지만, '고다르'는 태연했는데요. "현실은 연속성이 아니다"라며 스크립터의 항의를 일축하고, "예술은 표절이거나 혁명이다"라는 고갱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방식을 밀어붙였습니다.
할리우드에서 건너온 배우, '진 세버그'(조이 도이치)는 혼란스러웠는데요. '오토 프레밍거' 감독 밑에서 체득한 모든 작업 방식이 여기선 통하지 않았죠. 대본은 당일 아침에야 받고, 다음 장면이 뭔지 알 수 없으며, 감독은 선글라스 너머로 알 수 없는 지시만 내렸습니다. 반면, 권투 선수 출신의 '장 폴 벨몽도'(오브리 뒬랭)는 모든 걸 게임처럼 즐겼죠. 그는 이 영화가 개봉조차 못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웠으니까요. 링클레이터 감독도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오브리 뒬랭을 캐스팅한 이유는 바로 그가 가진 '한 줄기 햇살 같은 미소' 때문이었습니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건 2022년 장 뤽 고다르가 세상을 떠난 뒤였는데요. 촬영 첫날 제작진 모두에게 전해진 콜카드에는 고다르의 명언이 적혀 있었죠. "당신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당신을 만든다." 링클레이터는 자신이 20대에 <네 멋대로 해라>를 처음 봤을 때 "심장에 불이 붙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정해진 각본 없이 길거리에서 순간을 포착하고, 떠오르는 방식대로 촬영하는 창의적인 모습에서 미친 듯한 자유로움과 강렬함을 느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당연히 <누벨바그>는 완벽한 영화가 아닌데요. 고다르 감독의 급진성을 재현하지도 못했고, 그의 방법론을 따르지도 않았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른 걸 해냈습니다. 1959년 여름, 파리 거리를 달리던 젊은이들의 열기를 현재로 옮겨온 것이죠.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믿음을 환기했습니다. <누벨바그>는 과거를 박제하지 않고, 과거를 현재형으로 소환하죠. 고다르 감독이 1959년에 꿈꾸던 '새로운 영화'는 지금도 가능하다고 속삭이는데요. 욕을 먹어도 좋으니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라고, 실패해도 상관없으니 시도하라고 말합니다.
<비포> 시리즈로 시간의 흐름을 담았고, <보이후드>(2014년)로 12년을 한 편의 영화에 응축시켰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시간을 다루는 예술가가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를 붙잡으려 했는데요. 낭만을 아는 감독이 만든 영화사 낭만의 시절. <누벨바그>는 고다르만큼 혁명적이지는 않지만, 링클레이터만큼 따뜻하죠. 그리고 그걸로 충분한데요.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당신도 누군가와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것만큼 값진 선물이 또 있을까요? ★★★☆
2025/12/23 메가박스 코엑스
※ 영화 리뷰
- 제목 : <누벨바그> (Nouvelle Vague, 2025)
- 개봉일 : 2025. 12. 31.
- 제작국 : 프랑스
- 러닝타임 : 106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리처드 링클레이터
- 출연 : 기욤 마르벡, 조이 도이치, 오브리 뒬랭, 브루노 드레이퓌르스트, 벤자민 클레리 등
- 화면비율 : 1.37: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