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77]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82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가 포착한 건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우리 모두의 평범한 가족 풍경입니다. 영화는 세 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로 구성되죠. 첫 번째 '파더'에서 남매 '제프'(애덤 드라이버)와 '에밀리'(마임 비아릭)는 미국 뉴저지 외딴 시골에 홀로 사는 아버지(톰 웨이츠)를 찾아갑니다.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아버지에 대한 걱정을 나누지만, 그 걱정 속에는 미묘한 불편함도 섞여 있죠.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이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대화는 자꾸만 겉돕니다. 아버지는 수돗물을 내오며 "이게 제일 좋은 음료"라고 말하고, '제프'는 정성스럽게 챙겨온 고급 식료품들을 하나하나 설명하죠. 하지만 세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침묵이 흐르고, 누구도 편해 보이지 않죠.
두 번째 '마더'는 아일랜드 더블린을 배경으로 합니다. 작가인 어머니(샬롯 램플링)는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두 딸 '티모시'(케이트 블란쳇)와 '릴리스'(빅키 크리엡스)를 위해 화려한 티 테이블을 준비하죠. 단정한 옷차림의 언니 '티모시'는 조심스럽고, 분홍 머리의 동생 '릴리스'는 자유분방해 보이는데요. 하지만 둘 다 어머니 앞에서는 긴장하죠. 완벽하게 세팅된 테이블, 고급 케이크와 티 세트, 그리고 정제된 대화. 모든 게 잘 준비되어 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준비되지 않은 것 같죠.
세 번째 '시스터 브라더'에서는 쌍둥이 남매 '스카이'(인디아 무어)와 '빌리'(루카 사바트)가 파리의 부모 집을 찾습니다. 이들은 최근 사고로 부모를 잃었는데요. 텅 빈 아파트를 거닐며 둘은 옛 사진을 보고, 추억을 나누고, 부모가 남긴 흔적들을 하나씩 발견합니다. 앞선 두 에피소드와 달리 이 남매는 서로에게 편안해 보이죠. 대화가 자연스럽고, 침묵도 불편하지 않는데요. 하지만 그들이 깨닫는 건, 가까이 있던 부모에 대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짐 자무쉬 감독은 이 영화를 3주 만에 썼다고 하죠.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쓴 작품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관찰하고 곱씹어온 생각들이 어느 순간 물 흐르듯 쏟아진 것에 가깝죠. 세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요. 가족끼리도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는 면이 있죠. 진짜 모습을 감추고, 상대가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고, 불편한 진실은 덮어둡니다. 이게 냉정한 관계의 증거일까요? 감독은 그렇게 보지 않고, 오히려 이런 거리두기야말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모든 걸 드러내면 관계가 깨질 수도 있죠. 때로는 모른 척하는 게,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서로를 위한 배려일 수 있습니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세 이야기에 공통 요소를 심어뒀는데요. 진짜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는 롤렉스 시계, 물이나 차로 하는 건배, "'밥'이 네 삼촌이야"라는 영국식 관용구, 빨간색 옷, 슬로모션으로 지나가는 스케이트보더들. 이 요소들은 관객에게 일종의 놀이를 제안하죠. '아, 여기서도 나오네' 싶은 순간마다 우리는 이 세 가족이 결국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감독은 스케이트보더에 대해 "이야기의 폐쇄된 세계 밖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존재"라고 설명했는데요.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거리를 누비는 그들은, 가족이라는 틀에 갇힌 인물들과 대비됩니다.
빨간색은 더 직접적인 상징인데요. 혈연을 의미하는 색깔이지만, 여기선 따뜻한 가족애보다는 '부정할 수 없는 연결'을 나타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매는 붉은 니트를 입고, 아버지는 후드티에 붉은색 포인트가 있죠. 두 번째에서는 세 모녀가 모두 빨간 옷을 입고 나타나 어머니가 "민망하다"라고 말합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로 닮아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가족의 본질이 아닐까요? 세 번째 에피소드의 쌍둥이는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부모라는 붉은 심장이 멈춘 후, 그들에게 남은 건 산화된 검은 피의 흔적뿐이죠.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의 가장 큰 약점은 강점과 같은 곳에 있는데요. 정말 느리다는 것입니다. 특히 세 번째 에피소드는 앞의 두 이야기가 만든 긴장감을 거의 해소해 버리는데요. 인디아 무어와 루카 사바트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톰 웨이츠나 케이트 블란쳇 같은 거장들과 비교하면 힘이 약하죠. 부모를 잃은 슬픔을 다루면서도 지나치게 차분하고 시적이어서, 어떤 관객들은 여기서 집중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짐 자무쉬는 이 영화를 "조용한 영화"라고 불렀지만, 그 조용함 속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흐르죠.
명절 때 가족들과 마주 앉아 어색한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다면, 이 영화는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지만 자주 보고 싶지 않고, 그립지만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가족이지만 남처럼 느껴지는 그 모순된 감정들. 짐 자무쉬 감독은 그 감정에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않죠. 그냥 "그래, 가족이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담담히 말할 뿐인데요. 그리고 그 담담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위로처럼 보입니다. ★★★☆
2026/01/02 메가박스 군자
※ 영화 리뷰
- 제목 :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Father Mother Sister Brother, 2025)
- 개봉일 : 2025. 12. 31.
- 제작국 : 프랑스
- 러닝타임 : 111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짐 자무쉬
- 출연 : 톰 웨이츠, 아담 드라이버, 마임 비아릭, 샬롯 램플링, 케이트 블란쳇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