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79] <시라트>
광활한 모로코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테크노 비트에 몸을 맡긴 채 춤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년 남성 '루이스'(세르지 로페즈)는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스 아르호나), 반려견 '피파'와 함께 이 레이브 파티를 찾았는데요. 5개월 전 집을 나간 딸이 이런 파티에 있을 거라는 소식을 듣고 전단을 돌리며 사람들에게 묻지만, 아무도 딸을 본 적이 없다고 답하죠. 그때 군인들이 들이닥쳐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파티를 강제 해산시키는데요. 세계가 3차대전 직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든 것입니다.
피난 행렬에서 이탈한 레이버 다섯 명은 두 대의 트럭을 몰고 사막 깊숙이 또 다른 파티를 향해 질주하는데요. '루이스'는 딸을 찾을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그들을 따라가죠. 처음엔 서로를 경계하던 이들은 기름을 나누고, 강을 건너는 차를 함께 끌어주고,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점차 가까워집니다. 군인들을 피해 험한 산길로 접어든 일행은 절벽을 끼고 이어지는 좁다란 길을 지나가는데요. 그리고 예상하지 않은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집니다.
작품의 제목인 '시라트'는 이슬람교에서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를 뜻하죠. 그 다리는 균형을 잃는 순간 추락하고, 한 치의 망설임도 허락하지 않는 다리인데요. 영화는 이 개념을 문자 그대로 구현하죠. 사막의 좁은 도로, 절벽 산길, 일렬로 늘어선 차량 행렬, 그리고 마침내 지뢰밭.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선'들은 모두 '시라트'의 변주입니다. 이 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선택의 여지는 사라지죠.
<시라트>가 잔혹한 이유는 그 죽음이 도덕적 판단과 무관하게 찾아온다는 데 있습니다. <시라트>에서 죽음은 영화적 장치를 거부하죠. 카메라는 그저 지켜볼 뿐입니다. 영화가 관객을 극한으로 내모는 방식은 명확한데요. 등장인물들이 겪는 연쇄적 비극은 그들을 잃을 것이 없는 상태로 밀어붙입니다. 상실 앞에서 인간은 선택해야 하죠.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움직일 것인가. '루이스'와 레이버들은 후자를 택합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가장 격렬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죠.
작품에 등장하는 레이버들은 실제로 레이브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인데요. 올리버 라세 감독은 그들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배우로서의 경험이 없는 배우의 연약함, 그 취약성에는 깊은 감동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팔 하나, 다리 하나를 잃은 이들은 영화 속에서도 그 상처를 감추지 않죠. 서구 사회가 끊임없이 자신을 완전한 모습으로 포장하려 애쓰는 동안, 이들은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자신의 빈자리를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의 빈자리도 보이기 시작하죠.
한편, 칸영화제가 이 영화에 심사위원상을 안긴 이유는 작품성만이 아닌데요. 영화는 전쟁을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전쟁이 만들어낸 세계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만듭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3차대전 소식, 국경에 몰린 피난민들, 군인들의 통제. 그러나 정작 사막에 있는 이들에게 전쟁은 멀고도 가까운 존재죠. 그들이 밟고 있는 땅 자체가 이미 전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인데요. 지뢰는 누가, 언제, 왜 묻었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지뢰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뿐이죠.
레이버들은 유럽 출신이고, 배경은 모로코입니다. 이들은 자유를 찾아 제3세계로 왔지만, 그곳 역시 서구 문명이 남긴 폭력의 흔적으로 가득하죠. 영화는 난민 위기를 뒤집어 봅니다. 유럽인들이 피난민이 되어 기차 화물칸에 실려 가는 마지막 장면은, 현재 유럽이 직면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추죠. 종말은 이미 누군가에게는 오래전부터 진행 중이었고, 다만 그것이 이제 백인 중산층에게도 도달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칸영화제는 이 냉정한 통찰을, 그리고 그 통찰을 극한의 감각적 체험으로 구현해 낸 연출력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뜻밖의 상황에서 터지는 지옥도를 함께 체험하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건너는 법'에 대한 물음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루이스'가 지뢰밭을 건넌 방식을 떠올려보죠. 그는 생각을 멈췄습니다. 두려움도, 희망도 내려놓았죠. 그저 발을 옮겼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울림은 남습니다. 우리 역시 언제나 '시라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
2025/09/20 CGV 센텀시티
-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 영화 리뷰
- 제목 : <시라트> (Sirāt, 2025)
- 개봉일 : 2026. 01. 21.
- 제작국 : 스페인
- 러닝타임 : 114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올리버 라세
- 출연 : 세르지 로페즈, 브루노 누녜스 아르호나, 리처드 벨러미, 스테파니아 가다, 조슈아 리암 헨더슨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