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49] <프로젝트 Y>
낮에는 플로리스트로, 밤에는 화류계 에이스로 일하는 '미선'(한소희)과 콜택시 기사 '도경'(전종서)은 이 바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꽃집 인수 계약금까지 치른 '미선', 빌라 전세 계약을 마친 '도경'. 남들처럼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생활을 원했지만, 조직적인 전세 사기로 7억 원이 증발하면서 모든 계획이 무너진다. '도경'은 '미선'에 대한 미안함에 불법 스포츠 도박으로 한 방을 노리지만, 이마저 '토사장'(김성철)이 꾸민 승부조작에 사기를 당한다.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상황에서 '도경'은 우연히 '석구'(이재균)와 한 남자 호스트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호스트는 '토사장'의 아내 '하경'(유아)의 애인이었고, '하경'은 그에게 '토사장'이 어딘가에 검은돈 7억 원을 숨겨뒀다는 정보를 흘렸다. '석구'는 호스트와 결탁해 그 돈을 빼낼 계획을 세우지만, 이 모든 걸 지켜본 '도경'은 '석구'보다 먼저 돈의 위치를 알아내기로 결심한다. '토사장'의 자산을 훔치는 건 성공했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토사장'의 해결사 '황소'(정영주)가 두 사람을 추적하고, 두 사람의 모녀 같은 관계였던 전직 화류계 전설 '가영'(김신록)까지 등장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이환 감독은 "<프로젝트 Y>는 욕망을 지닌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깨우며 인간을 성장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욕망의 연쇄 반응, 시스템의 전복,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딸과 엄마의 서사까지 염두에 두었다고. 야심 찬 기획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의도가 화면에서 설득력 있게 구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스스로를 광고 필름처럼 연출한다. 터널 안을 슬로 모션으로 걷는 한소희와 전종서, 화사가 부르는 재즈풍 'Fool For You', 네온사인으로 물든 서울의 밤. 이환 감독이 언급한 홍콩 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색감과 빛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분명 눈에 보인다. <영웅본색>(1986년), <천장지구>(1990년), <화양연화>(2000년)까지 거론하며 그가 원했던 미장센의 지향점은 명확했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이 공들여 만든 지하차도 씬, 빛이 반복되도록 설계해 인물들의 운명처럼 같은 빛과 어둠을 마주하게 만든다는 연출 의도 역시 흥미롭다.
그런데 정작 이 화려한 외관 안에 담긴 이야기는 너무 익숙하다. 밑바닥 인생, 사기, 복수, 추격. 한국 범죄 영화에서 수없이 봐온 공식이 그대로 반복된다. 더 문제인 건 이야기가 캐릭터의 능동적 선택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으로 굴러간다는 점이다. '미선'과 '도경'이 '토사장'의 비밀을 알게 되는 과정, '석구'가 정보를 흘리는 타이밍, '가영'이 등장하는 순간까지 모두 '우연히' 그렇게 됐다. 등장인물들은 이야기를 주도하기보다 각본이 요구하는 자리로 이동할 뿐이다.
한소희와 전종서의 열정은 화면에서도 느껴진다. 문제는 그 열정이 입체적인 인물 구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소희의 '미선'은 차갑고 계산적인 외면 뒤 연약한 내면을 품은 인물로 설정됐지만, 영화는 그 이중성을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감정의 큰 변화가 필요한 순간마다 카메라는 한소희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만, 정작 그 표정 안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불분명하다.
전종서의 '도경'은 <버닝>(2018년)에서 보여준 불안정한 에너지를 그대로 가져왔다. 충동적이고 거칠지만 '미선'을 향한 보호 본능만큼은 확고한 인물. 전종서 특유의 강렬한 시선 처리는 여전히 효과적이지만, 이전 작품들에서 본 그 연기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신록이 연기한 '가영'은 이 영화에서 가장 설득력을 잃는 캐릭터다. 이환 감독은 "'가영'과 '미선', '도경' 세 모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투영하고 싶었다"라고 밝혔지만, 정작 화면에서 '가영'의 행동 동기는 모호하다. 딸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벌이는 일련의 선택들은 관객의 공감을 얻기보다 당혹감을 준다. 영화가 결국 어머니의 희생이라는 익숙한 틀로 여성 캐릭터를 정리하려는 순간, 앞서 보여준 강인함은 힘을 잃는다. 김신록은 주어진 역할을 최선을 다해 소화하지만, 배우의 능력이 허술한 설계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정영주가 삭발까지 감행하며 만든 '황소'는 존재감만큼은 압도적이다. 이환 감독은 "뮤지컬 제작발표회에서 삭발하고 등장한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황소'는 무조건 정영주여야 한다"라고 캐스팅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정영주의 물리적 강인함과 날카로운 눈빛은 화면을 지배하지만, 캐릭터 자체는 과도한 스타일링에 갇혀 있다. 깃을 세운 가죽 코트와 민머리라는 비주얼은 위협적이기보다 과장되어 보이고, 결과적으로 '황소'는 실제 공포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 시각적 기호로만 남는다.
흥미롭게도 작년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 당시, 외국 평단은 남성 캐릭터를 주변부로 밀어내고 여성들이 영웅이자 집행자 역할을 한다는 점을 들며 <프로젝트 Y>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반면 국내 평단은 "여성 누아르 탈을 쓴 구태의연한 불행 포르노", "남성 시선의 누아르 문법 답습"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간극은 문화적 맥락 차이에서 온다. 해외 관객에게 한국 화류계는 이국적이고 신선한 배경이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이미 수없이 소비된 클리셰다. '화중시장'이라는 공간, 유흥업소 여성들의 서사, 밑바닥 인생의 묘사 모두 <박화영>(2018년), <어른들은 몰라요>(2021년)를 거쳐온 이환 감독에게는 익숙한 영역이지만, 바로 그 익숙함이 국내에서는 식상함으로 읽혔다.
그렇게 <프로젝트 Y>는 안전한 선택을 한 영화다. 검증된 스타 파워, 세련된 비주얼, 트렌디한 음악으로 무장했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결국 이 영화는 제목처럼 '프로젝트', 즉 완성작이라기보다 가능성을 타진한 기획에 가깝다. 두 배우의 얼굴만 믿고 간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어울리는 복수극.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2026/01/15 메가박스 코엑스
※ 영화 리뷰
- 제목 : <프로젝트 Y> (Project Y, 2026)
- 개봉일 : 2026. 01. 21.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8분
- 장르 : 범죄,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이환
- 출연 : 한소희, 전종서, 김신록, 정영주, 이재균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