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81] <휴민트>
겉은 바싹하게 구워진 쿠키 껍질이지만, 한입 베어 물면 속에서 꽉 찬 피스타치오 크림이 쏟아지는 두바이 쫀득 쿠키.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가 딱 '두쫀쿠' 같은데요. 블라디보스토크의 영하 20도 냉기가 스크린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차가운 첩보물 외피 아래, 뜨겁게 끓어오르는 액션과 멜로가 관객을 기다리죠. 2013년 <베를린>으로 한국형 첩보 스릴러의 지평을 연 류승완 감독이 13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 장르에서, 그는 여전히 '믿고 보는' 이름값을 합니다.
국정원 블랙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북한산 마약 '빙두'의 유통 경로를 추적하던 중, 자신의 정보원이었던 북한 여성 '김수린'(주보비)과 접선하죠. 하지만 매음굴에서 '김수린'을 구출하려던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조 과장'은 눈앞에서 정보원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김수린'이 남긴 마지막 단서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리키죠. 북한 총영사관과 러시아 마피아가 결탁한 인신매매 네트워크, 그 중심에 '조 과장'은 북한 식당 '아리랑'에서 일하는 '채선화'(신세경)를 포섭합니다.
'조 과장'은 수 개월간 '채선화'와 신뢰를 쌓아가며, 다시는 정보원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되뇌죠. 그러던 어느 날,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나타나면서 모든 판도가 흔들립니다. '박건'은 국경 지역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됐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사라진 약혼녀 '채선화'를 찾는 것이었죠. 남북의 정보원, 과거의 연인, 그리고 모든 비리의 중심에 선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까지, 네 사람의 운명이 차가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격렬하게 충돌합니다.
<휴민트>의 가장 큰 미덕은 온도의 대비인데요. 라트비아 로케이션으로 구현한 블라디보스토크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콘크리트 건물들은 브루탈리즘 양식으로 무겁게 화면을 짓누릅니다. 하지만 이 서늘한 표면 아래, 영화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숨기고 있죠. '조 과장'이 '채선화'에게 보내는 시선에는 정보원 이상의 연민이 담겨 있고, '박건'이 '채선화'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억눌린 사랑이 흐르는데요. 류승완 감독은 "구원과 희생, 복수가 액션 영화의 영원한 테마"라고 밝혔는데, <휴민트>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작동합니다. 국가도, 이념도, 임무도 아닌, 오직 '사람'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드는 순간의 뜨거움 말이죠.
솔직히 고백하자면, <휴민트>를 보러 가기 전에 든 가장 큰 의문은 "박정민이 멜로를 할 수 있을까?"였는데요. 청룡영화상 무대에서 화사와 함께 선보인 짧은 퍼포먼스가 화제가 되긴 했지만, 그게 2시간짜리 영화 전체를 떠받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죠. 결론부터 말하면, 박정민은 기대 이상으로 해냈습니다. '박건'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인상적인데요. 박정민은 과잉된 감정 표현 대신 절제된 눈빛과 몸의 긴장으로 사랑을 증명하죠. 이건 2026년에 보기 드문, 고전적 순애보의 부활입니다.
<모가디슈>(2021년), <밀수>(2023년)에 이어 <휴민트>까지, 조인성은 이제 류승완 월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죠. 그리고 매번 그는 감독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해냅니다. 이번 작품에서 조인성이 보여주는 액션은 '교과서'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데요. 실제로 국정원을 찾아가 사격 훈련을 받은 가운데, 총을 쥔 자세, 재장전 타이밍, 이동 중 사격 동선까지 하나하나가 훈련된 요원의 그것입니다. 여기에 조인성은 검은 코트 자락을 날리며 화면 전체를 지배하죠.
<휴민트>는 <베를린>의 직접적인 속편은 아닌데요. 하지만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베를린> 마지막 장면에서 '표종성'(하정우)이 "블라디보스토크 원웨이" 기차표와 연관된 그곳이, 바로 <휴민트>의 무대죠. 영화 속에서 '표종성'의 근황이 이스터 에그처럼 나오는데, 13년을 기다린 팬들에게 던지는 작은 선물입니다.
하지만 <휴민트>는 <베를린>과는 결이 다르죠. <베를린>이 복잡하게 얽힌 배신과 음모의 서사였다면, <휴민트>는 훨씬 더 직관적이고 감정적입니다. 정보전의 치밀함보다는 인물 간의 관계와 선택에 무게를 두죠.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서사가 쉽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그게 <휴민트>의 약점은 아닙니다. <휴민트>는 처음부터 복잡한 퍼즐 맞추기가 아니라, 사람을 향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렇게 <휴민트>는 오락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는 충분히 잘 만들어진, 설 연휴에 극장을 찾을 이유가 되는 영화입니다. ★★★☆
2026/02/04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 영화 리뷰
- 제목 : <휴민트> (HUMINT, 2026)
- 개봉일 : 2026. 02. 11.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19분
- 장르 : 액션,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류승완
- 출연 : 조인성, 박정민, 박해준, 신세경, 정유진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