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이 된 한국 그림책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46] <알사탕>

by 양미르 에디터
4392_3541_4220.jpg 사진 = 영화 '알사탕'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시네마

서울 어느 언덕길 주택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소년 '동동이'는 오늘도 혼자서 구슬치기를 한다. 공원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놀 뿐, '동동이'에게는 관심도 없고 그의 구슬에도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의기소침해진 '동동이'는 이제 노견이 된 반려견 '구슬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혹시 구슬이 매력이 없어서일까 하는 생각에 문방구에 들른 '동동이'는 눈에 번쩍 띄는 알록달록한 알사탕 한 봉지를 발견한다.


문방구 할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건네받은 알사탕을 집에서 하나씩 맛보기 시작한 순간, '동동이'의 세상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 체크무늬 알사탕을 입에 넣자 집 안의 낡은 체크무늬 소파가 말을 걸어온다. '동동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집에 있었던 소파는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동동이의 추억을 모두 간직하고 있었다. 이어서 또 다른 알사탕들은 '동동이'에게 더욱 특별한 대화의 기회를 선사한다.

4392_3542_4234.jpg

늙어서 헉헉거리는 '구슬이'의 속마음, 항상 바빠 보이는 아빠의 진짜 마음, 그리고 이제는 볼 수 없는 할머니의 따뜻한 목소리까지, 6개의 알사탕을 통해 '동동이'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진심들을 듣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열어가게 된다.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과 <나는 개다>를 원작으로 한 20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알사탕>은 짧은 러닝타임이 무색할 만큼 깊고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마법의 알사탕을 통해 사물과 대화하게 되는 판타지이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듣기'와 '공감'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이 보여주는 '소통'에 대한 관점이다. '동동이'가 알사탕을 통해 듣게 되는 것들은 모두 그가 이미 알고 있어야 했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다. '구슬이'가 늙어서 힘들어한다는 것,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만 표현이 서툴다는 것, 할머니가 얼마나 자신을 아꼈는지 등은 사실 특별한 마법 없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상의 진실들이다.

4392_3543_4244.jpg

하지만 우리는 왜 이런 당연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갈까? <알사탕>은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인의 소통 부재 현상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알사탕>에서 놀라운 것은 일본 제작진이 보여준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이다. 토에이 애니메이션과 단델라이온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합작으로 만든 <알사탕>은 한국 아동문학을 원작으로 한 일본의 첫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가 있다. 와시오 타카시 프로듀서는 제작 과정에서 한국어를 직접 배우기 시작했고, 니시오 다이스케 감독과 함께 서울 곳곳을 다니며 로케이션 헌팅을 진행했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서울의 언덕진 지형,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까치, 그리고 한국 가정의 독특한 주거 문화까지 세세한 부분들이었다. 특히 강아지 '구슬이'가 베란다가 아닌 실내에서 생활한다는 설정을 두고 벌어진 감독과 원작자 간의 긴 토론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일본 제작진은 한국 버전에서는 모든 대사와 자막을 한국어로 제작했다. 와시오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봤을 때 위화감이 없고 익숙한 풍경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현지화를 넘어선, 원작과 그 문화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표현이다.

4392_3544_4255.jpg

백희나 작가는 찰흙과 유사한 소재인 '스컬피'를 손으로 직접 빚어 인형을 만들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해 그림책을 완성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아날로그적 질감을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제작진은 약 1년에 걸쳐 캐릭터 모델링 작업을 진행하며 백희나 작가의 승인을 받아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원작의 손맛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움직임의 역동성을 더한 독특한 비주얼이다. 알사탕을 먹을 때 증기기관차처럼 뿜어져 나오는 김, 소파의 주름이 표정처럼 움직이는 장면 등은 3D 기술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표현들이다.

올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알사탕>의 성공은 한 편의 좋은 애니메이션이 탄생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K-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최근 K-드라마와 K-팝의 전 세계적 성공에 힘입어 많은 한국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에서 제작되어 수출되는 일방향적 구조로 되어 있다.

4392_3545_436.jpg

반면 <알사탕>은 한국의 원작자가 기획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본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결합해 만들어진 진정한 의미의 협업 작품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원작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풍부해졌다는 점이다. 와시오 프로듀서는 "좋은 작품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만들면 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배려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원작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국내 일부 콘텐츠 업체들이 원작을 함부로 각색하고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는 행태와는 확연히 대조된다.

극장에서 20분짜리 단편을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지만, <알사탕>은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더 길었다면 이만한 순도 높은 감동을 전달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동동이'가 마지막 알사탕을 먹으며 처음으로 다른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는 장면에서, 우리는 20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한 아이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변화가 결코 급작스럽거나 작위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진정한 성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

2025/05/23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 영화 리뷰
- 제목 : <알사탕> (Magic Candies, 2024)
- 개봉일 : 2025. 05. 28.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21분
- 장르 : 애니메이션
- 등급 : 전체 관람가
- 감독 : 니시오 다이스케
- 목소리 출연 : 최영준, 정성화, 이현, 엄상현, 손정아 등
- 화면비율 : 16:9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완벽주의 예술가가 만든 반복의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