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개반이상만 #86] <프로젝트 헤일메리>
'헤일 메리'는 두 개의 맥락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미식축구에서는 경기 막판 역전을 노리고 무작정 던지는 도박성 롱 패스를 뜻하고, 라틴어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성모 마리아에게 올리는 기도가 되죠. 이판사판의 스포츠 전술과 종교적 간구가 같은 이름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두 감독은 늘 그래왔듯, 익숙한 공식의 껍데기를 가져다 그 안에 전혀 다른 것을 채워 넣죠. <21 점프 스트리트>(2012년)로 낡은 TV 시리즈를 자기 비틀기의 액션 코미디로 재탄생시키고, <레고 무비>(2014년)로 완구 브랜드 영화를 가장 영리한 가족 영화 중 하나로 만들었으며, '스파이더 버스' 시리즈 제작으로 독창적인 비주얼 스타일을 세상에 선보였는데요. 두 사람이 이번에는 SF 블록버스터를 들고 왔습니다.
<프로젝트 헤일 메리>는 <마션>을 쓴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각본 역시 <마션>(2015년)의 드류 고다드가 맡았는데요. 태양이 외계 미생물 '아스트로파지'에 잠식당해 서서히 꺼져가는데,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지구에 빙하기가 닥치게 되죠. 전 세계 정부와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유일하게 '아스트로파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별 '타우세티'를 발견하고, 그곳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문제는 왕복할 연료가 없다는 것인데요. 탑승자들이 처음부터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떠나는 편도 여행입니다.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 '에바 스트라트'(산드라 휠러)는 이 자살 임무에 평범한 중학교 과학교사 '라일랜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를 발탁하죠. 학계에서 비주류 학설을 내세웠다가 외면받고, 회피를 위해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며 살아가던 '그레이스'를 말입니다.
영화는 '그레이스'가 수년간의 유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하죠.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요. 함께 탑승했던 승조원들은 이미 숨진 채 발견되죠. 혼자 남겨진 '그레이스'는 조각난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이 맡은 임무를 하나씩 파악해 나갑니다. 그러던 중 우주 한복판에서 거대한 물체가 접근해오죠. '에리드' 행성에서 온 외계 생명체 '로키'의 우주선인데요.
'로키'의 행성 역시 '아스트로파지'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고, 그 역시 같은 목적으로 이곳까지 날아왔습니다. 동료를 모두 잃은 처지마저 똑같죠. 눈도 없고 얼굴도 없는 존재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할까요? '그레이스'는 '로키'가 내는 음파 패턴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번역 프로그램을 직접 만듭니다. 두 행성의 운명이 걸린 임무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말이 통하게 되는 과정이 진행되죠.
두 감독의 대중문화 감수성은 바로 이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을 발합니다. '그레이스'가 '로키'에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실베스터 스탤론의 영화가 소환되죠. 지구로 정보를 보내는 무인 탐사선들에게 '비틀스' 멤버 이름을 붙이는 장면도 흥미로운데요. 팝컬처 코드를 가지고 논다는 것은 레퍼런스를 쌓는 행위를 넘어, 오래된 맥락에 새로운 감정을 집어넣어 증폭시키는 일이죠. 두 감독은 그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로키'의 구현 방식 역시 같은 철학의 산물인데요. 제작진은 블루스크린을 한 장면도 사용하지 않고, <스타워즈> 초기 시절에 쓴 퍼펫과 애니매트로닉스로 '로키'를 실물로 제작했습니다. 제작진은 '로키' 설계의 출발점을 해부학이 아닌 행동학에 뒀죠. 이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는가보다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먼저 물었는데요. 움직임이 곧 감정이 된 것입니다. 덕분에 라이언 고슬링이 CG 작업을 위한 테니스공에 말을 걸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었죠.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말하고 싶은 인상적인 장면은 '에바 스트라트'가 해리 스타일스의 'Sign of the Times'를 부르는 대목입니다. 원래 각본에 없던 이 장면은 라이언 고슬링이 산드라 휠러에게 직접 부탁해서 탄생했고, 휠러가 이틀 동안 고민한 끝에 곡을 직접 골랐죠. 돌아오지 못할 대원들을 앞에 두고, 휠러는 울음을 그치라고, 이건 그냥 시대의 흐름이라고 노래합니다. 체념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는 그 목소리가, 임무를 완수해도 귀환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공간을 가득 채우죠. 냉철한 관료처럼 보였던 '스트라트'의 인간적 면모가 단 한 곡의 노래로 열립니다. 듀오 감독의 세계에서 감동은 말하는 대신, 노래를 통해 도착하죠.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2010년대 '대작 SF 영화들'의 문법을 자유롭게 끌어다 씁니다. 하지만 복사본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선배들의 방식을 빌려오되 그 용도를 바꿔버렸기 때문인데요. 엔딩이 한두 박자 길게 느껴지는 것은 흠이지만, 156분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유머가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운반 수단으로 기능하기 때문이죠. "가슴 아플 만큼 슬프면서도 동시에 웃음을 주는 이야기"라고 라이언 고슬링이 말한 것처럼, 두 감정이 어떻게 한 자리에 공존할 수 있는지를 아는 감독들이 만든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스크린을 통해 깊이 전해지죠. ★★★★☆
2026/03/18 CGV 왕십리 IMAX
※ 영화 리뷰
- 제목 : <프로젝트 헤일메리> (Project Hail Mary, 2026)
- 개봉일 : 2026. 03. 18.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156분
- 장르 : SF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필 로드, 크리스 밀러
- 출연 : 라이언 고슬링, 산드라 휠러, 제임스 오티즈, 라이오넬 보이스, 켄 렁 등
- 화면비율 : 1.43:1/1.90:1(일부 IMAX 장면), 2.00:1/2.39:1(일부 장면)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