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0분이 길게 느껴지면서도 참신하게 들리는 마력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68] <모래그릇>

by 양미르 에디터
5171_6056_299.jpg 사진 = 영화 '모래그릇' ⓒ (주)다자인소프트

※ 영화 <모래그릇>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무라 요시타로의 <모래그릇>은 이상한 영화다. 두 시간 넘는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수사 과정에 쏟아붓고, 관객은 형사들과 함께 일본 전역을 발로 뛰며 '가메다'라는 단어 하나를 붙들고 미궁을 헤맨다. 그런데 정작 영화가 끝난 뒤 오래 남는 건 범인을 찾는 쾌감이 아니라, 범인이 짊어진 삶의 무게다.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모래그릇>이 진짜로 묻는 것은 "누가 죽였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다.

도쿄역 차량기지에서 얼굴이 짓뭉개진 채 발견된 신원불명의 남성. 유일한 단서는 피해자가 입에 올렸다는 '가메다'라는 단어와 짙은 도호쿠 사투리뿐이다. 베테랑 형사 '이마니시'(탄바 테츠로)와 혈기 왕성한 동료 '요시무라'(모리타 켄사쿠)는 이 희미한 실을 붙잡고 일본 전국을 오간다. 목격자를 찾아 문서를 뒤지고, 땡볕 아래 철로를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수사는 느리고 반복적이다. 그런데 '노무라'는 이 느슨함을 결함으로 두지 않는다. 형사들이 거쳐 가는 시골 마을과 해안선, 매미 소리와 선풍기 바람 등 영화는 장소의 감각을 공들여 쌓아 올리며, 관객이 일본의 여름 속으로 젖어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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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끝에 모습을 드러내는 용의자는 촉망받는 젊은 피아니스트 '와가 에이료'(가토 코)다. 범행 동기를 설명하는 마지막 40분은 형사 드라마의 문법을 완전히 벗어난다. 대사는 거의 사라지고, 작곡가 아쿠타가와 야스시의 피아노 협주곡 '숙명'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아버지가 한센병에 걸린 뒤 마을에서 쫓겨나 전쟁 통에 일본 각지를 떠돌았던 '와가'의 유년기가 플래시백으로 펼쳐진다. 그 기억들은 현재의 형사 수사 장면과 교차 편집되며, 두 개의 시간이 하나의 감정 위에서 만난다. 원작자 마츠모토 세이초는 이 시퀀스를 보고 "소설에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 원작을 뛰어넘은 작품"이라고 했다. 영상과 음악이 맞물릴 때만 가능한 무언가가 여기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40분을 보는 내내 묘한 감각을 경험했다. 분명히 길다. 교차 편집은 때로 과잉처럼 느껴지고, 비극은 정직하게 눌러 쌓인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시퀀스는 예상을 비껴간다. 길다는 느낌이 곧 이 장면의 작동 방식이다. 한센병을 앓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설움의 땅을 밟아온 시간이 요약되거나 생략되지 않고 관객의 시간 위에 그대로 얹힌다. '관객'은 와가의 삶을 속도 없이 통과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를 향한 감정이 동정이나 분노로 납작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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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사회적 고발로 읽히는 것은 '와가'의 비극이 개인의 불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와 낙인, 그 아들에게 대물림되는 배제라는 구조 안에서 '와가'는 과거를 지우고 엘리트 예술가로 살아가려 했다. 살인은 그 지우기의 끝에 있다. '노무라'는 '와가'를 괴물로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면죄부를 주지도 않는다. 그저 그 삶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감정이 흘러가는 속도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불편한 것은 '와가'의 범행이 아니라, 그 범행을 낳은 사회에 자신도 속해 있다는 사실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조감독 출신인 노무라는 <모래그릇>을 무려 15년에 걸쳐 기획했다. 음악을 맡은 아쿠타가와 야스시는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로, 그의 아버지는 일본 문학 최고 권위인 아쿠타가와상의 원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 '숙명'에 투입된 음악 제작비는 당시 일본 영화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탄바 테츠로는 '이마니시'를 연기하며 냉철한 외피 안에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얹었고, 가토 코는 '와가 에이료'의 무뚝뚝한 차가움 아래 인정받지 못한 욕망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 두 배우 모두 말보다 표정과 몸으로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

※ 영화 리뷰
- 제목 : <모래그릇> (The Castle of Sand, 1974)
- 개봉일 : 2026. 04. 02.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143분
- 장르 : 드라마, 범죄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노무라 요시타로
- 출연 : 탄바 테츠로, 가토 코, 모리타 켄사쿠, 시마다 요코, 야마구치 카린 등
- 화면비율 : 2.3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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