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172] <위 리브 인 타임>
※ 영화 <위 리브 인 타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암에 걸린다. 두 사람은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며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그 사랑은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 영원히 남는다. <위 리브 인 타임>의 뼈대를 이렇게 정리하면, 이 영화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첫 장면부터 이미 보인다.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로맨스이고, 그 문법이 요구하는 감정의 목적지도 뚜렷하다. 그런데 존 크로울리 감독은 이 익숙한 재료를 가지고 뜻밖의 선택을 한다. 이야기를 순서대로 들려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선택이, 뻔할 수 있었던 이 영화를 구제한다.
영화는 '알무트'(플로렌스 퓨)와 '토비아스'(앤드류 가필드)가 이미 함께 살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침대에서 깨어나는 '토비아스'에게 '알무트'가 음식을 건네기도 하고, 만삭의 '알무트'가 욕실에 앉아 있기도 하며, 쓰러진 '알무트'가 암 재발 판정을 받는다. 이 모든 장면이 러닝타임 5분 안에 펼쳐진다. 관객은 이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왜 사랑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를 아직 모르는 채로, 그들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들을 먼저 목격한다.
존 크로울리 감독은 이 구조에 대해 "관계의 내부에 있다는 것이 진정으로 어떤 느낌인지 표현하기 위해 영화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수년에 걸친 시기, 약 6개월의 시기, 딸이 태어나는 하루. 이 세 개의 시간대가 경계 없이 뒤섞이며 흐른다.
셰프 '알무트'는 자신의 레스토랑 오픈을 앞두고 있다. 회사원 '토비아스'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려던 참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말 그대로 충돌이다. '토비아스'가 호텔 가운 차림으로 한밤중에 볼펜을 사러 나갔다가 무단횡단을 하고, 그를 들이받은 차의 운전자가 '알무트'였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두 사람이 병원 복도에서 처음 눈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후 두 사람은 아이를 원하는 문제로 갈등하고, '알무트'의 첫 번째 난소암 진단 앞에서 흔들리고, 힘겹게 임신에 성공하고,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딸 '엘라'를 낳는다. 그리고 암이 재발한다.
비선형 구조가 이 서사에서 하는 일은 순서 뒤섞기 이상이다. 관객이 어느 한 감정에 오래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통상적인 멜로드라마라면 슬픔이 쌓이는 방향으로 서사를 설계하겠지만, 이 영화는 행복한 장면 직후에 비극을 놓고, 비극 직후에 웃음을 던진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어느 한 감정에 잠기지 못하고, 두 사람의 10년을 하나의 전체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기억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의 조각이 떠오르고, 행복한 순간에도 어딘가에 균열이 있다. 크로울리 감독의 편집은 그 기억의 질감을 영화적으로 재현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출산 직전의 시퀀스다. 양수가 터진 '알무트'와 '토비아스'는 병원으로 가려 하지만 빡빡하게 주차된 차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결국 두 사람은 차를 버리고 가던 중 주유소의 화장실로 뛰어든다. 잠긴 문을 부수고, 직원 두 명이 합류하고, 의료진은 전화기 너머에서 지시를 내린다. 이 장면은 극도로 혼란스럽고, 그래서 웃기고, 동시에 전율스럽다. 코미디와 공포와 감동이 뒤엉킨 이 출산 시퀀스가 힘을 갖는 이유는, 두 배우가 그 혼돈 안에서 한 치의 여백도 없이 서로에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플로렌스 퓨와 앤드류 가필드는 촬영 당시 감독의 디렉팅이 들리지 않을 만큼 서로에게 몰입했다고 전해진다.
'알무트'라는 인물은 이 영화의 가장 야심 찬 설계이자 가장 날카로운 지점이다. 암 재발 이후, 항암 치료를 병행하면서 세계 최고 권위의 요리 경연대회에 비밀리에 출전하는 것은 버킷리스트가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의 죽어가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딸에게 쇠약해진 모습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의 어머니를 남기고 싶다는 욕망. 플로렌스 퓨는 이 역할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 인생에서 어떤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묻기 시작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알무트'가 요리에 쏟는 집착은 허영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삭발 장면도 그랬는데, 플로렌스 퓨는 감독의 계획과 달리 카메라 앞에서 실제로 삭발을 감행했다. "'알무트'가 해야만 하는 일을 내가 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라는 플로렌스 퓨의 말은, 이 영화에서 연기와 인물이 얼마나 긴밀하게 포개지는지를 보여준다.
앤드류 가필드는 크로울리 감독과 <보이 A>(2007년) 이후 약 17년 만에 재회했다. 촬영 당시 번아웃 상태였던 그가 크로울리 감독의 제안 이후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경험했다"고 말한 것은 '토비아스'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열쇠다. '토비아스'는 '알무트'를 바라보며 반응하는 인물이다. 그의 감정은 능동적으로 서사를 이끌지 않지만, 앤드류 가필드의 얼굴은 매 장면 그 수동성 안에서 무수히 많은 것을 전달한다. 분노와 체념과 사랑이 동시에 담긴 눈빛은 대사 없이도 충분하다.
아쉬운 지점도 분명히 있다. 비선형 구조는 유효한 선택이지만, 그 구조 때문에 어떤 감정의 파고는 오히려 낮아진다. '알무트'와 '토비아스'가 아이 문제로 맞부딪히는 장면은 영화의 중요한 갈등이지만, 이미 두 사람의 딸을 본 뒤에 그 갈등을 보는 긴장감은 반감된다. 음악도 때로 감정을 앞서 나간다. 화면이 충분히 말하고 있는 순간에 스코어가 끼어들어 여백을 지운다.
그럼에도 <위 리브 인 타임>은 기억에 남는다. 장르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그 공식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경로를 뒤틀었고, 그 뒤틀림이 오히려 삶의 질감에 더 가까이 닿는다. 기쁨과 슬픔은 순서 없이 뒤섞여 찾아온다. 영화가 그 사실을 구조 자체로 보여준다는 것. 두 배우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모두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현재에 머무릅니다. 그 시간을 다른 이들을 사랑하며 보내는 것이 정말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그 마법이 작동하는 방식을, 시간의 순서를 해체함으로써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
※ 영화 리뷰
- 제목 : <위 리브 인 타임> (We Live in Time, 2024)
- 개봉일 : 2026. 04. 08.
- 제작국 : 프랑스
- 러닝타임 : 108분
- 장르 : 멜로/로맨스,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존 크로울리
- 출연 : 플로렌스 퓨, 앤드류 가필드, 그레이스 델라니, 리 브레이스웨이트, 에이오프 힌즈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