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봤더라면 내 인생 영화였을 텐데, 그래도

[별세개반이상만 #45] <엘리오>

by 양미르 에디터

11살 소년 '엘리오'(요나스 키브레브 목소리)는 부모를 잃고 고모 '올가'(조 샐다나 목소리)와 함께 군 기지에서 살아갑니다. '보이저 골든 레코드'에 대한 전시를 본 후,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엘리오'는 확신했죠. 지구 밖 5억 개가 넘는 행성 중 어딘가에는 분명 자신을 원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요. 그렇게 '엘리오'는 매일 밤 해변에서 "외계인! 나를 납치해 줘!"라는 메시지를 써놓고 하늘을 바라봤죠.

어느 날, '올가'의 위성 기지에서 몰래 우주로 신호를 보낸 '엘리오'는 정말로 외계 연합체 '커뮤니버스'에 소환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엘리오'를 지구의 대표로 오해하고, '엘리오'는 이 오해를 바로잡기보다는 우주에 남기 위해 침묵하죠. '커뮤니버스'의 골칫거리인 호전적인 군주 '그라이곤'(브래드 거렛 목소리)과의 협상을 자처한 '엘리오'는 그곳에서 '그라이곤'의 아들 '글로든'(레미 에저리 목소리)을 만나게 됩니다. 무시무시한 외형과 달리 온순하고 외로운 '글로든'과 '엘리오'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진정한 친구가 되죠.

4430_3682_3214.jpg 사진 = 영화 '엘리오'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엘리오>를 보는 내내 떠올린 것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작품, <콘택트>(1997년)였는데요. 실제로 해외 평론가들도 이 작품을 "어린이를 위한 <콘택트>"라고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철학이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재해석했죠. '엘리오'가 '보이저 골든 레코드' 전시를 보며 우주에 대한 경이감을 느끼는 오프닝 시퀀스는 당시 <콘택트>가 주던 과학적 설렘을 고스란히 재현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과거 SF 명작들에 대한 정교한 오마주들인데요. <미지와의 조우>(1977년), <E.T.>(1982년)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대한 헌사도 엿보이며, <터미네이터 2>(1991년)의 상징적인 엄지손가락 장면이 등장하고, <에이리언> 시리즈의 충격적인 '체스트버스터' 장면이 귀여운 코미디로 재탄생하죠. 여기에 SF 공포 영화에 나올 만한 요소가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순간들로 변모하는 과정에서는 픽사의 탁월한 재해석 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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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의도도 분명했는데요. 매들린 샤라피안 감독은 "우리가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희망과 연결"이라고 밝혔고, 도미 시 감독은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은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죠. 실제로 현대 사회의 고립감과 외로움을 다루는 영화의 주제 의식은 탄탄한 편입니다. 특히 11세라는 사춘기 직전의 미묘한 시기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것은 의미 있는 선택이었죠.

하지만 이 모든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엘리오>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복잡한데요. 1990년대의 '나'라면, 이런 설정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외로운 소년이 우주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이야기, 칼 세이건의 철학이 스며든 과학적 경이감, 클래식 SF에 대한 오마주들,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데요. 캄브리아기 최강의 포식자 중 하나인 '아노말로카리스'에서 따온 듯한 '퀘스타 대사'(자밀라 자밀 목소리)의 모습까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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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2020년대의 '나'는 수많은 SF 작품을 경험했고, 스토리의 공식이 눈에 보이며, 예측할 수 있는 전개가 때로는 아쉽게 느껴졌다는 것인데요. 전성기 픽사의 혁신적 스토리텔링과 비교하면, <엘리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지에 머무른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이 영화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죠. <엘리오>는 여전히 픽사다운 따뜻함과 시각적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특히 지구의 직선적이고 차가운 디자인과 우주의 곡선적이고 따뜻한 세계관의 대비는 인상적이죠.

'글로든'이라는 캐릭터의 창조 역시 픽사의 역량을 보여주는 대목인데요. 무시무시한 외형 뒤에 숨은 순수함, 아버지의 기대와 자신의 본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죠. 무엇보다 <엘리오>는 세대 간의 다리 역할을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과거 SF 영화에 대한 향수를, 아이들에게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호기심을 선사하죠. 외로움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통해 모든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낸 것도 의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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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은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요. <엘리오>는 그 질문에 대해 따뜻하고 희망적인 답을 제시하죠. 비록 그 답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일지라도, 때로는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죠. 그렇게 <엘리오>는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그 시절 SF 영화들이 주던 순수한 경이감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 됐습니다. ★★★☆

2025/06/11 메가박스 코엑스 돌비시네마

※ 영화 리뷰
- 제목 : <엘리오> (Elio, 2025)
- 개봉일 : 2025. 06. 18.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98분
- 장르 : 애니메이션
- 등급 : 전체 관람가
- 감독 : 매들린 샤라피안, 도미 시, 애드리언 몰리나
- 목소리 출연 : 요나스 키브레브, 조 샐다나, 레미 에저리, 브래드 거렛, 자밀라 자밀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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