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는다고 해서 진심을 아는 건 아니다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55] <후레루.>

by 양미르 에디터
4457_3760_400.jpg 사진 = 영화 '후레루.' ⓒ (주)미디어캐슬

'초평화 버스터즈'라는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초평화 버스터즈'는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 오카다 마리 각본가, 타나카 마사요시 캐릭터 디자이너로 구성된 팀으로, 이들의 첫 작품인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2011년)에서 주인공들이 어릴 때 만든 비밀 조직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2015년), <하늘의 푸르름을 아는 사람이여>(2019년)로 이어지는 청춘 3부작을 통해 상실과 치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섬세한 감정 묘사를 보여준 '초평화 버스터즈'가 <후레루.>로 돌아왔다. <너의 이름은.>(2016년)의 캐릭터 디자이너 타나카 마사요시가 합류하고, 요아소비가 OST를 맡았다니. <후레루.>가 올해 최고의 청춘 애니메이션이 될 조건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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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후레루.>의 기본 틀은 탄탄하다. 작품의 주인공은 신비한 생물 '후레루'를 만나 서로 닿기만 해도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된 소꿉친구 '오노다 아키'(나가세 렌 목소리), '소부에 료'(반도 료타 목소리), '이노하라 유타'(마에다 켄타로 목소리). 스무 살이 되어 도쿄로 상경한 세 사람은 각자 바 아르바이트, 부동산 회사 신입사원, 의상 전문학교 학생으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 세 청년과 그들을 이어주는 '후레루'라는 판타지적 존재까지, 현대 사회의 소통 부재와 진정한 관계에 대한 갈망을 다루기에 완벽한 무대였다.

하지만, 이 모든 설정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온다. 어느 날, '아키'가 바 근처에서 소매치기를 쫓아가 피해자 '아사카와 나나'(이와미 마나카 목소리)의 가방을 되찾아주면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다. 고마움을 표하려 찾아온 '나나'와 친구 '카모자와 주리'(시라이시 하루카 목소리)는 스토커 때문에 이사할 곳을 찾다가 아예 세 사람과 함께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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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의 청춘 남녀가 동거하는데 '사랑의 감정'이 빠질 리는 없는 법. '아키'와 '주리'가 대화를 나누며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는 한편, '유타'는 '나나'에게 키스를 한다. 이를 눈치 챈 '아키'와 '료'는 '유타'와 '나나'의 연인 관계를 축하하려고 몰래 파티를 준비한다. 하지만 '나나'와 '주리'는 두 남자의 예상과 달리 화를 내며 그 자리를 떠난다. '주리'가 뒤따라가며 "'나나'가 '아키'를 좋아했다"라고 폭로한다. 전형적인 연애 감정의 엇갈림이다. 20년 가까이 쌓아온 우정은 결국 "누가 누구를 좋아하느냐"라는 문제로 흔들린다.

'후레루'의 한계가 드러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선생님 '와키타'(미나가와 사루토키 목소리)가 등장해서 "'후레루'는 좋은 감정만 전달하고 반발하는 마음은 전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거의 해설에 가깝다. 이런 중요한 설정을 인물들이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외부 인물의 설명으로 처리한 것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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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로덕션 노트를 보면 제작진의 고민이 느껴진다.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은 기존의 여성 캐릭터 중심에서 벗어나 세 명의 남성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배경도 치치부에서 도쿄로 옮겨 '상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려 했다. '후레루'라는 캐릭터 역시 처음엔 사람 형상으로 기획되었다가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약해진다"라는 판단하에 현재의 모습으로 변경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후레루'의 존재감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세 남자의 이야기 자체가 깊이를 잃어버렸다. 오카다 마리의 각본은 여전히 섬세한 감정의 결을 그려낸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향하는 방향이 너무 뻔하다. "소통이 쉬워진 시대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관계의 감정"을 담고자 했다는 요아소비의 주제곡 '모노톤'처럼, 작품이 담으려 한 현대적 메시지는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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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루.>의 큰 문제는 '후레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 그 능력이 만능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 단순했다. '후레루'가 좋은 감정만 전달한다는 한계 역시, 진짜 소통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보다는 갈등을 위한 장치로만 기능한다. 세 사람이 '후레루'의 '내부'로 들어가 화해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환상적인 비주얼과 연출은 분명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화해가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아키'가 "자신이 '후레루'의 힘으로 친구가 되었다"라고 고백하고 다시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갈등이 너무 덧없었기에 울림이 반감된다. 물론, 우정이 무너지는 계기가 덧없다는 것 자체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서, 그것도 판타지적 요소까지 갖춘 작품에서라면 좀 더 깊이 있는 갈등과 해결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

※ 영화 리뷰
- 제목 : <후레루.> (Fureru, 2024)
- 개봉일 : 2025. 06. 25.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107분
- 장르 : 애니메이션
- 등급 : 12세 관람가
- 감독 : 나가이 타츠유키
- 목소리 출연 : 나가세 렌, 반도 류타, 마에다 켄타로, 시라이시 하루카, 이와미 마나카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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