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팬 변호사가 세월호 잠수사 재판정에 선 이유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54] <바다호랑이>

by 양미르 에디터
4444_3711_566.png 사진 = 영화 '바다호랑이' ⓒ 영화로운형제

"You'll Never Walk Alone(너는 결코 혼자 걷지 않는다)." 1945년 뮤지컬 <회전목마>에서 절망에 빠진 이를 위로하기 위해 태어난 이 노래는 1960년대 리버풀 FC의 응원가가 되었고, 1989년 힐스버러 참사 이후에는 추모와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2025년, 한국의 영화관에서 세월호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울려 퍼진다. 정윤철 감독의 <바다호랑이>는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극영화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다. 힐스버러 참사를 언급한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재난 앞에서 홀로 남겨진 개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구원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2014년 봄, 세월호 참사 현장. 민간잠수사 '나경수'(이지훈)는 침몰한 배 안에서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며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악몽을 안게 된다. 매일 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나오는 꿈에 시달리며, 수면제와 소주로도 지울 수 없는 유가족들의 울부짖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해경이 참사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은 동료 잠수사에 대한 책임을 민간잠수사 대표인 '류창대'(손성호) 선배에게 물어 과실치사죄로 재판에 넘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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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구조작업에 뛰어들었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가 아닌 기소장이었다. '경수'는 분노한다. 국가가 할 일을 대신 해준 민간잠수사들을 이용한 후 버리는 현실에, 동료의 죽음마저 그들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파렴치함에. 그는 '류창대'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재판정에 서기로 결심한다. 기억하기 싫은 그날의 지옥을 다시 꺼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바다호랑이>의 가장 독특한 지점은 바다를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방울의 물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연극적 연출을 전면에 내세운다. 시작부터 연출자가 배우들에게 직접 말한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 세트장에서 한 편의 영화를 작업하게 될 겁니다." 이후 모든 장면은 한 극단의 연습실 같은 단출한 공간에서 벌어진다. '나경수'가 시신을 안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장면은 이지훈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팬터마임 하듯 연기한다. 파란 조명과 음향효과, 그리고 배우의 몸짓만으로 그 처절한 순간을 재현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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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출은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2003년)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정윤철 감독만의 독특한 색깔을 드러낸다. 윤순환 프로듀서의 말처럼 "재난을 스펙터클로 전시해 관객의 관음증을 부추기는 재난 포르노그래피"를 피할 수 있었던 것. 대신 배우의 감정과 관객의 상상력이 그 자리를 채운다. 정윤철 감독은 "소리가 공간에 어떤 새로운 존재감을 만들어내면서 인물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 관객이 알아서 결핍된 공간을 채운다"라고 설명했다.

'You'll Never Walk Alone'의 노래 사용은 단순한 차용은 아니었다. 1989년 힐스버러 참사에서 96명의 리버풀 팬이 압사로 목숨을 잃었을 때, 경찰과 정부는 팬들의 난동이 원인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심지어 당시 한 언론사는 일부 리버풀 팬이 희생자들의 지갑을 훔치고, 쓰러진 소녀를 성추행했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 27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경찰의 과실이 공식 인정됐고, 70여 개 구단 팬들은 그 언론사를 보이콧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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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버러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는 구조다. 국가기관의 과실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진실을 덮으려 하며, 피해자들을 고립시키는 패턴이 그것이다. 영화는 이런 연결고리를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민간잠수사들을 변호하는 '송변'(김영택)이 리버풀 팬이라는 설정을 통해서다. 힐스버러 참사의 기억을 품은 채 세월호 잠수사들을 변호하는 그의 모습은 시공간을 초월한 연대 의식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송변'과 '경수'의 대화를 통해 'You'll Never Walk Alone'이 사실 뮤지컬 곡이라는 사실을 언급한다. <회전목마>에서 처음 불린 이 노래는 절망에 빠진 주인공을 위로하기 위한 곡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홀로 남겨진 이에게 "폭풍우가 몰아쳐도, 황금빛 하늘이 보이지 않아도, 희망을 품고 걸어가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고 다독이는 노래였던 것. 27년간 진실규명을 위해 싸운 리버풀의 역사를 아는 변호사가 또 다른 진실규명의 현장에 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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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다. 그는 "물속이 아닌 데서 물속 움직임을 표현하고, 없는 사물과 아이들이 있다고 내가 믿어야 관객도 믿는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고 회상한다. 실제로 그의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허공 속에서 진짜 바다를, 진짜 시신을, 진짜 고통을 보게 만든다. 특히 PTSD로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영웅서사에 가두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다.

손성호 역시 '류창대'라는 인물을 통해 책임감과 죄책감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리더의 무게를 잘 표현했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는 이 무거운 주제를 관객들이 끝까지 따라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된다. <바다호랑이>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영화다. 상업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연극적 연출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준 실험은 한국영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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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예산 없이도, 화려한 볼거리 없이도 진정성 있는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선정성을 피하고 진정한 추모의 의미를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많이 언급되지 않았던 민간잠수사들의 희생(故 김관홍 잠수사)을 조명하고, 그들이 겪은 트라우마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

2025/06/16 메가박스 코엑스

※ 영화 리뷰
- 제목 : <바다호랑이> (Sea Tiger, 2025)
- 개봉일 : 2025. 06. 25.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06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5세 관람가
- 감독 : 정윤철
- 출연 : 이지훈, 손성호, 박호산, 김영택, 김채원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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