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53] <퀴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17세 때부터 꿈꿔온 영화 <퀴어>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장 원시적이고 절망적인 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 "깊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사랑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듯, 사랑의 본질적 고독함을 탐구한다.
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에서 도망친 작가 '리'(다니엘 크레이그)는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이어간다. 잘 다린 리넨 정장을 입고 신문을 옆구리에 낀 채 거리를 거니는 그의 모습은 겉보기엔 점잖은 신사 같지만, 실상은 젊은 남자들을 물색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년 남성일 뿐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밤, 아름다운 청년 '유진'(드류 스타키)과 마주치는 순간, 온 세상이 느린 동작으로 재생되는 경험을 한다.
너바나의 'Come as You Are'가 흘러나오는 이 장면은 시대착오적이면서도 묘하게 적절하다. '리' 자신이 시간과 공간에서 유리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리'와 '유진'의 관계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전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년)과는 완전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와 '올리버'(아미 해머)의 상호적이고 서정적인 사랑과 달리, 여기서는 철저한 일방통행의 감정이 흐른다.
'유진'은 '리'에게 마음을 여는 듯하다가도 사춘기 소년처럼 짜증을 내고, 때로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나 '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넌 한 푼도 안 내도 돼. 원한다면 아무 여자하고도 다 자도 돼. 나한테는 그저 다정하게만 대해주면 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라고 구걸하듯 말하는 '리'의 모습에서 사랑의 가장 비참한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리'가 '유진'을 붙잡기 위해 남미로 떠나는 여행을 기점으로 로드 무비, 그리고 판타지 어드벤처로 장르를 확장한다.
'야헤'라는 신비한 식물을 찾아 에콰도르 정글로 향하는 이들의 여정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다. '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텔레파시, 즉 '유진'의 진심을 읽고 싶은 욕망이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모든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극단적으로 형상화한 설정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연기는 <퀴어>의 가장 큰 성취다. '제임스 본드'의 강인한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연약하고 측은한 중년 게이를 탁월하게 연기해 냈다. 그가 헤로인을 주사하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절망적 시선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 역시 루카 구아다니노 특유의 감각이 빛난다. '리'의 의상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땀으로 얼룩지고 구겨지며 점점 어두워지는 변화는 그의 내적 몰락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탁월한 장치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상상 속 멕시코시티'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감정의 공간을 창조해 낸다.
영화의 후반부, 특히 '야헤' 복용 이후의 초현실적 시퀀스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두 인물이 육체적으로 융합하는 장면들은 보디 호러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접근성을 완전히 포기하고 순수한 예술적 실험으로 향한다. 어느덧 구아다니노 감독의 세계에서 빠질 수 없는 트렌트 레즈너와 아티커스 로스의 음악이 더해진 이 시퀀스들은 매혹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도하게 느껴진다.
<퀴어>라는 제목이 담고 있는 이중적 의미는 이 영화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동성애자'라는 뜻과 동시에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본래 의미를 모두 품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기묘한 실험 영화다. '리'가 "나는 퀴어가 아니야, 나는 비체화된 존재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는 정체성조차 유동적인 존재다.
결국, <퀴어>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3막 구조의 불균형, 과도한 실험성, 때로는 관객을 배제하는 듯한 연출 등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장 날것 그대로의 모습, 그 속에 숨어있는 절망적 고독감을 이토록 진솔하게 담아낸 영화도 드물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내가 보고 싶고, 만들고 싶고, 출연하고 싶은 영화"라고 고백했듯, 이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든 작품이다.
진하게 사랑하지만 결국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그 누구보다 '퀴어'한 방식으로 그려낸 <퀴어>는 관객에게 불편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마저도 사랑의 일부라는 것을, 루카 구아다니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
2025/05/28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퀴어> (Queer, 2024)
- 개봉일 : 2025. 06. 20.
- 제작국 : 이탈리아
- 러닝타임 : 137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 출연 : 다니엘 크레이그, 드류 스타키, 제이슨 슈왈츠먼, 엔히 자가, 레슬리 맨빌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