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57]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은 진실을 마주하는 것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품고 있는 영화다.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명료하면서도 절망적이다. 과연 모든 진실은 알려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진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행위가 치유가 아닌 새로운 복수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는 캐나다에서 숨을 거둔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의 기이한 유언으로 시작된다.
쌍둥이 남매 '잔느'(멜리사 디소르미스 폴린)와 '시몽'(막심 고데트)에게 남겨진 것은 두 통의 편지와 함께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으라는 수수께끼 같은 부탁이었다. 그전까지는 정식 장례도, 묘비도 세우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이 설정 자체가 이미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암시한다. '나왈'은 자신의 죽음조차 미완의 상태로 남겨둔 채, 살아있는 자들에게 진실을 찾아가는 고통스러운 여정을 떠맡긴 것이다. 마치 진실이라는 것이 죽은 자의 평안보다 산 자의 고통을 더 필요로 한다는 듯이.
'잔느'의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나왈'의 과거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현대사의 단면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연인, 보육원에 맡겨야 했던 첫째 아들, 버스 테러 현장에서 목격한 무차별적 폭력, 그리고 15년간의 감옥생활과 그곳에서 겪은 끔찍한 고문과 강간. 이 모든 것이 한 여인의 삶 위에 층층이 쌓여 있다. 영화의 절정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그리스 고전 비극도 울고 갈 만큼 충격적이다. "1+1=2여야 하는데 1이 될 수 있는가"라는 '잔느'의 절규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의 한계에 대한 외침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원작 연극을 5년에 걸쳐 각색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특정 지역의 비극을 인류 보편의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영화는 레바논 내전을 모티프로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국가명이나 지명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민감성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상의 분노와 복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라는 감독의 철학에서 비롯된 선택이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후에 그의 대표작이 될 <듄> 시리즈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2009년 촬영지를 물색하던 중 요르단의 광활한 사막에서 받은 영감이 훗날 <듄>의 '아라키스' 행성으로 구현되었다는 후일담은, 한 예술가의 상상력이 어떻게 시공간을 넘나들며 발전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그을린 사랑>이 진정 탁월한 이유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거나 인간의 악행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진짜 주제는 기록이라는 행위 자체가 갖는 근본적 딜레마에 있다. '나왈'은 15년간 감옥에서 '노래하는 여자'로 불렸는데, '나왈'은 침묵하는 법을 몰랐다. 옆 방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을 묻기 위해 부른 노래가 결국 저항의 증거가 되었듯이, '나왈'에게 침묵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왈'은 죽음에 임해서도 침묵하지 않았고, 자신이 겪은 모든 진실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을 택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바로 기록의 역설이다. '나왈'의 증언은 분명 역사적 진실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숭고한 행위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평온하게 살아가던 쌍둥이 남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겨주는 잔혹한 복수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들의 정체성 자체를 뿌리째 흔들어버리는 폭력적 행위가 되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나왈'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너희는 분노의 흐름을 끊게 하는 약속의 시작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진실을 알게 된 쌍둥이 남매와 또 다른 한 명은 정말 분노의 흐름을 끊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또 다른 형태의 이기심일 수도 있다. '나왈'은 자신이 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고통의 무게를 자식들에게 나누어 짐으로써 홀가분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왈'이 말하는 "함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메시지는 아름답지만, 그 '함께함'이 강요된 것이라면 과연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2025년 6월 25일, <그을린 사랑>이 4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중동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는 영화가 다루는 레바논 내전의 상황이 현재 우리 눈앞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는 매일 선택을 강요받는다. 과거를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 아니면 망각을 통해 화해를 추구할 것인가? <그을린 사랑>은 이 딜레마에 대한 쉬운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 선택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복잡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그을린 사랑>의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이 끝없는 질문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데 있다. '그을린 과거'를 계속해서 기록하는 것이 결국 복수가 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여전히 답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답 찾기 자체가 우리가 인간으로서 짊어져야 할 영원한 숙제일 것이다. ★★★★☆
※ 영화 리뷰
- 제목 : <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
- 재개봉일 : 2025. 06. 25.
- 제작국 : 캐나다
- 러닝타임 : 130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드니 빌뇌브
- 출연 : 루브나 아자발, 멜리사 디소르미스 폴린, 막심 고데트, 레미 지라르드, 알렌 알트먼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