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린피스가 전하는 위기의 바다 신호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64]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by 양미르 에디터
4510_3929_1115.jpg 사진 = 영화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 (주)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우리는 과연 바다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를 보며 든 첫 번째 생각은 아이러니였다.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 대해 우리는 달의 뒷면보다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이지윤 감독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년)의 대사에서 받은 충격을 그대로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가장 가깝고도 먼 존재, 바다. 이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 거리감을 좁히려는 간절한 시도다.


박정례 감독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인상적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은 바다생물 사진을 아무런 감흥 없이 바라보던 자신에게 받은 충격. "나 자신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무감각해져 있었다"는 감독의 고백은 현대인 모두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들어서 정작 중요한 것들에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4510_3930_1126.jpg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익숙한 환경 문제를 '전혀 다른 결'로 풀어내려는 시도. 통계나 설명 대신 '느낌'에 집중하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바다를 느끼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감독들이 말하는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닌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영화의 구조는 명확하다. 'Seven Witnesses, Seven Seas(7명의 목격자, 7대양)'라는 초기 콘셉트 그대로, 바다의 신호를 몸으로 겪고 있는 7명의 이야기를 통해 해양 위기의 실체를 드러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미쉘 앙드레부터 인도네시아 데막의 루시판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바다의 변화를 증언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단편적인 정보 전달을 넘어선다.

4510_3931_1137.jpg

흥미로운 것은 멕시코 산펠리페의 호세 솔리스(가명) 이야기다. 얼굴을 가리고 음성을 변조한 채 인터뷰에 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보여주는 것은 환경 보호가 때로는 목숨을 건 일이라는 사실이다. 바키타 돌고래를 지키려는 어부들이 마피아의 위협을 받는 상황은 환경 문제가 단순히 '자연'의 문제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돈과 권력, 그리고 생존의 문제다.

이지윤 감독이 촬영 전날 현지 가이드가 "너무 무서워서 촬영에 동행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는 제작 비하인드는 이 이야기의 무게를 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촬영,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도 카메라 앞에 선 어부들의 눈빛은 절실함 그 자체였다. 반면, 같은 멕시코의 카보풀모는 희망의 사례를 제시한다. 어업을 포기하고 해양 생태관광으로 전환한 주민들의 이야기는 대안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30년간의 노력으로 바다거북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해역이 된 이곳의 변화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4510_3932_1146.jpg

박정례 감독이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것은 7~8개월간의 편집 과정이었다고 한다. 특히 인도네시아 데막의 루시판을 편집하며 느낀 감정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 바로 다음 날 촬영에 응해준 그의 모습에서, 감독은 환경 문제의 본질이 '살아남기 위한 문제'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는 변화를 위해 싸우기보단, 그저 생존을 위해 삶의 방식을 바꿨다"는 감독의 관찰은 예리하다. 농부에서 어부로, 매일 잠겨가는 집을 스스로 높이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분노도 절규도 아닌, 더 본능적이고 절박한 생존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환경 문제를 거창한 구호로만 이야기해온 우리에게 뼈아픈 현실을 던진다.

4510_3933_120.jpg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제작 과정 자체에 있다. 그린피스를 통해 3000여 명의 시민이 후원으로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사회적 참여의 결과물인 셈. 실제로 이 영화는 한국 정부의 글로벌 해양조약 비준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5년 3월, 국회 본회의 전원 찬성으로 비준된 조약은 이 다큐멘터리가 추구한 목표의 실현이기도 하다.

촬영 과정에서 제작진이 지킨 원칙도 의미깊다. "바다의 신호를 기록하되, 바다에 무언가를 남기지는 말자"는 원칙 하에 텀블러를 지참하고, 일회용품 사용을 최소화하며, 드론 촬영조차 신중하게 결정했다는 비하인드는 이들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작은 실천일 수 있지만, 이 작업이 단지 바다를 '찍는' 다큐가 아니라 바다에 대해 '듣고 응답하는' 태도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 것이다.

4510_3934_1212.jpg

그렇게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는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을 일깨우는 영화다. 그리고 그 감각의 회복이야말로 바다와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

※ 영화 리뷰
- 제목 : <씨그널: 바다의 마지막 신호> (SEAGNAL, 2025)
- 개봉일 : 2025. 07. 16.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89분
- 장르 : 다큐멘터리
- 등급 : 전체 관람가
- 감독 : 박정례, 이지윤
- 출연 : 미쉘 앙드레, 이유정, 호세 솔리스(가명), 후디스 카스트로 루세로, 라우라 멜러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천에서 나는 용이 되기 위한 우리들의 고교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