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63] <우리들의 교복시절>
1997년 대만 최고 명문 '제일여고'. 같은 교실, 같은 책상을 사용하지만, 낮과 밤으로 나뉜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입시에 실패해 야간반에 입학한 '아이'(진연비)는 자신을 '짝퉁 엘리트'라고 여긴다. 같은 초록 교복을 입지만 야간반의 흰색 명찰과 주간반의 다른 색 명찰은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다. 성적 몇 점 차이로 갈린 이 경계는 생각보다 견고하다.
'아이'는 자신과 같은 책상을 쓰는 주간반 학생 '민'(항첩여)과 책상 서랍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해진다. 공부도 놀기도 잘하는 '민'은 '아이'가 동경하는 모든 것을 가진 존재다. '민'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교복을 바꿔 입고 '땡땡이'를 치기 시작한다. 주간반 교복을 입은 '아이'의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표정 변화, 처음엔 당황과 부끄러움이었다가 점차 뿌듯함으로 바뀌는 그 순간이 <우리들의 교복시절>의 핵심을 압축한다.
두 소녀는 '제일고' 농구부 에이스이자 수학영재반 학생인 '루커'(구이태)를 동시에 좋아하게 되면서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이'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점점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고, 결국 모든 것이 드러나면서 깊은 상처를 받는다. 거짓말이 들통난 후 혼자 탁구장에서 끊임없이 날아오는 공을 치며 펑펑 우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프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촹칭션 감독은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감동을 받았다. 영화 속의 연대기가 실제 내 학창 시절의 연대기이기도 하고, 영화 속에 나타난 사회적 분위기가 실제로 느꼈던 분위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그 개인사가 곧 한 시대의 집단적 기억이 된다.
주목할 점은 감독이 "여러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도 정의할 수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 노력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라고 밝힌 대목이다. 이는 성적과 출신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사회에 대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저항선언이다. 영화 속 랍스터 비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랍스터는 자라면서 낡은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새 껍데기를 얻는다. 아주 고통스럽지만 성장에 꼭 필요한 과정이야." 청춘이라는 이름의 고통스러운 탈피 과정을 은유한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언급한 것처럼, <우리들의 교복시절>에서 가장 섬세한 장치는 바로 명찰이다. 같은 학교, 같은 교복이지만 명찰 색깔 하나로 세계가 갈린다. 당재양 프로듀서는 "예전에 대만이 부유하지 않았을 때, 많은 학생에게 학업 기회를 주기 위해 주간반과 야간반을 따로 만들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주간반은 진짜고 야간반은 가짜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특목고-일반고, SKY-지방대 구분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구조다. 기회의 평등을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새로운 차별의 근거가 되는 아이러니. '아이'가 주간반 교복을 입었을 때의 미소는 단순한 기쁨이 아니다. 그것은 계급 상승에 대한 은밀한 욕망이자, 동시에 그 욕망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복잡한 감정의 발현이다.
영화 전반에 스며든 921 대지진의 흔적도 놓칠 수 없는 요소다. 1999년 9월 21일 대만을 강타한 이 지진은 2,4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였다. 대만 로맨스의 부흥을 알린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년)에서도 소재로 등장한 바 있는 이 지진은 촹칭션 감독에게도 반복적으로 다뤄야 할 '감정의 진앙지'다. 921 지진은 감독에게 집단적 트라우마이자 회복의 상징이었던 것.
영화 속 지진은 '아이'와 가족, 친구들 사이의 진정한 화해를 이끄는 전환점이 된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무력해질 때, 비로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 관객에게도 집단적 기억으로 공명할 수 있다. 재난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질적 연대감과 사랑 말이다.
한편, 영화의 마지막에서 '아이'는 깨닫는다. 자신의 가치는 명찰 색깔이나 출신 학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이는 뻔한 '자기 계발' 메시지가 아니다. 오히려 구조적 차별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라는 신자유주의적 해법에 대한 섬세한 의문 제기에 가깝다.
촹칭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꼬리표도 당신을 정의할 수 없다. 중요한 건 지금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미래에 어디로 가고 싶은지다"라고 말한다. 이는 '아이'가 야간반 학생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주간반이라는 이유로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교복을 입고 있던 그 시절의 우리에게, 그리고 아직도 마음속에 교복을 입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건네는 따뜻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명찰 색깔로 사람을 판단할 것인가? 언제까지 '개천에서 용 나기'만이 성공이라고 여길 것인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모두 여전히 책상 서랍에 편지를 남기고 싶어 하는 그 시절의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
2025/07/13 CGV 강변
※ 영화 리뷰
- 제목 : <우리들의 교복시절> (The Uniform, 2025)
- 개봉일 : 2025. 07. 11.
- 제작국 : 대만
- 러닝타임 : 109분
-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 등급 : 전체 관람가
- 감독 : 촹칭션
- 출연 :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 지친, 황즈링 등
- 화면비율 : 2.00: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