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62] 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감상 영화 ②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집행위원장 신철, 이하 BIFAN)가 지난 7월 3일 개막, 7월 13일까지 부천시 일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간 개성 있고 실험적인 장르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한국 영화계의 지평을 넓혀온 BIFAN은 올해도 계속해서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영화가 주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41개국 217편이 소개되는 가운데, 부천에서 몇몇 작품을 감상한 에디터의 짤막한 후기들을 모았다.
1. <광장>
- 섹션 :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 감독 : 김보솔
- 목소리 출연 : 전운종, 이찬용, 이가영 등
- 등급 : 12세 관람가 / 상영시간 : 73분
한국 애니메이션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는 순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김보솔 감독의 <광장>은 제49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콩트르샹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이다. <광장>의 가장 큰 의미는 그 소재에 있다.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의 1등 서기관 '이삭'과 교통보안원 '복주'의 사랑 이야기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파격적이다. 북한이라는 공간은 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지만, 김보솔 감독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힘을 빌려 이곳을 무대로 삼았다.
평양의 회색빛 겨울 풍경 속에서 금발의 '이삭'이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돌며 보여주는 고립감은 감시 사회의 냉혹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감독이 실제 평양을 방문할 수 없었음에도 철저한 연구를 통해 구현해 낸 시각적 디테일은 애니메이션 매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한다. <광장>이 특별한 이유는 북한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감시 사회에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운 현실에 더 집중한다. '이삭'의 조선족 할머니 이야기는 분단의 역사를 개인사로 녹여낸 탁월한 설정이다. 한국전쟁 후 중립국을 선택한 할머니의 손자가 다시 분단된 조선으로 돌아온다는 아이러니는 역사의 순환성을 암시한다. 할머니가 보내준 스웨덴 소시지를 소주와 함께 마시는 이삭의 모습에서는 정체성의 혼재와 외로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아동용 콘텐츠나, 상업적 작품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연히 정치적 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도 예술적 완성도를 갖춘 작품은 드물었고, <광장>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의미 있는 시도라 할 수 있겠다.
2. <철선공주>
- 섹션 : 스트레인지 오마쥬
- 감독 : 완 라이밍, 완 구찬
- 목소리 출연 : 백홍, 강명, 한란근 등
- 등급 : 전체 관람가 / 상영시간 : 78분
1941년,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한 상황에서 '완씨 형제'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시작했다. 필름도 부족하고, 장비도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아시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꿈이었다. 하지만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년)를 본 그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3년간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237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하고, 20만 장이 넘는 종이와 2만 프레임을 사용한 <철선공주>는 하나의 문화적 선언이었다.
완 형제의 의도는 명확했다. 서구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배우되, 중국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디즈니의 로토스코핑 기법과 멀티플레인 카메라를 빌리면서도, 수묵화의 담백한 아름다움과 중국 전통극의 과장된 표현법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서유기>의 에피소드를 각색한 <철선공주>는 줄거리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인다. '삼장법사' 일행이 서천취경 도중 화염산에 가로막히고, '손오공'이 '철선공주'로부터 '파초선'을 얻기 위한 세 차례 시도를 담은 것.
하지만, 이 단순한 구조 속에는 전쟁이라는 현실과 희망이라는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중국인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손오공'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철선공주'의 분노 앞에서 무력하게 날아가 버린다. 이는 일본의 침략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중국의 현실을 은유한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손오공'이 꾀를 부려 작은 벌레로 둔갑해 '철선공주'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작지만 영리한 전략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이 장면은 게릴라전의 은유로 읽힌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우마왕'으로 둔갑해 진짜 '파초선'을 얻어내지만, 곧 들켜서 다시 빼앗기고 만다. 이 반복되는 쟁탈전은 전쟁의 허무함과 동시에 포기하지 않는 의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인상적인 것은 '철선공주'라는 캐릭터의 설정이다. '철선공주'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 '홍해아'를 잃은 슬픔에 분노하는 어머니다. 이러한 설정은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복합적인 인간상을 제시한다. 전쟁 속에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모든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8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철선공주>를 다시 보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기술적으로는 분명 낡았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제한된 자원으로도 불굴의 의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는 현재의 창작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준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는데, 어린이 영화로 기획되었음에도 과도한 액션 장면들이 포함된 것은 당시 검열 기준에서도 문제가 됐다. 또한, 원작의 풍부한 철학적 함의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단순한 모험담으로 축소된 면도 있다.
3. <레즈우주공주>
- 섹션 : 메리 고 라운드
- 감독 : 엠마 허프 홉스, 릴라 바르기스
- 목소리 출연 : 샤바나 애지즈, 버니 반 틸, 젬마 추아 트란 등
- 등급 : 15세 관람가 / 상영시간 : 87분
애니메이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의 솔직한 반응은 "이게 뭐야?"였다. <레즈우주공주>라니, 대체 어떤 영화길래 이런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제목을 달았을까? 하지만 87분의 관람이 끝난 후에는 이 제목이야말로 이 작품의 정체성을 가장 완벽하게 설명하는 한 문장임을 깨달았다. 한없이 가벼울 때는 가볍게, 진지할 때는 진지한 톤으로 웃겨주는 이 애니메이션은 퀴어 성장 서사에 새로운 언어를 제시한다.
영화는 작은 행성 '클리토폴리스'(이름부터 의미심장하다)의 레즈비언 왕족 딸 '사이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춘기 한복판에 있는 '시아라'는 "가장 지루한 왕족"으로 뽑힐 만큼 내향적이고 자신감 없는 인물이다. 그런 '시아라'가 전 연인이자 현상금 사냥꾼 '키키'에게 차이고, 설상가상으로 '키키'가 '이성애자 백인 악당들'에게 납치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이라'는 24시간 안에 자신의 '라브리스'를 소환해 '키키'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사이라'는 말 그대로 '어디에도 가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사이라'의 가장 큰 적은 악역들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의인화된 자기 의심인 '헤드 몬스터'다. 검은 끈적한 물질로 표현되는 이 불안과 자기 의심은 영화 내내 '사이라'를 따라다니며, '시아라'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점차 극복해야 할 진짜 장애물임이 드러난다. 여정 중 만나게 되는 도망친 '게이팝' 아이돌 '윌로우', 그리고 성차별적인 '우주선'과의 관계를 통해 '사이라'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는 그 '당당함'이다. 엠마 허프 홉스 감독은 "우리는 우리가 아닌 척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영화는 퀴어 정체성을 숨기거나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살아라, 웃어라, 레즈비언" 배너나 "게이플릭스 앤 칠(넷플릭스 앤 칠에서 따온 유희)" 같은 유머로 정체성을 축하한다.
감독들이 언급했듯이 영화는 "유색인 여성이면서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서 자신들의 경험을 투영한 것이다. 실제 연인 관계인 두 감독이 4년간의 연애를 바탕으로 만든 이 작품에서, '사이라'의 여정은 자기 수용의 과정으로 그려진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테디상을 받고, 시드니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다. 이는 퀴어 서사가 더 이상 비극이나 고통에만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는, 그리고 기쁨과 유머 역시 저항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