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36]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감상 영화 ②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가 지난 4월 30일 개막, 5월 9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를 비롯한 전주시 일대에서 관객들과 함께하는 선 넘는 영화제를 진행했다. 슬로건 '우리는 늘 선을 넘지'를 내건 이번 영화제는 57개국 224편의 상영작을 공개했으며, 국제경쟁 부문 대상은 조엘 알폰소 바르가스 감독의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가, 한국경쟁 대상은 조현서 감독의 <겨울의 빛>이 차지했다. 전주에서 몇몇 작품을 감상한 에디터의 짤막한 후기들을 모았다.
1. <콘티넨탈 '25>
- 섹션 : 개막작
- 감독 : 라두 주데
- 출연 : 에즈터 톰파, 가브리엘 스파히우, 아도니스 탄타 등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상영시간 : 109분
베를린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품으로, 스마트폰으로만 촬영되었다는 기술적 도전이 돋보이는 동시에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영화다. 루마니아의 클루지에서 법정 집행관으로 일하는 '오르솔랴'(에즈터 톰파)는 어느 날 한 오래된 건물의 지하 보일러실에 무단으로 거주하는 노숙자 '이온'(가브리엘 스파히우)을 강제 퇴거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건물은 독일 부동산 투자 회사에 매각되어 곧 '콘티넨탈'이라는 이름의 부티크 호텔로 재개발될 예정이다. '오르솔랴'는 집행관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지만, '이온'에게 짐을 챙길 시간을 주는 등 가능한 한 인도적으로 상황을 처리하려 한다.
그러나 '오르솔랴'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잠시 시간을 준 후 돌아온 '오르솔랴'와 경찰들이 '이온'이 자살한 모습을 발견한 것.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 '오르솔랴'는 깊은 죄책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오르솔랴'는 헝가리계 이민자로 언론에서 "헝가리계가 선수 출신인 루마니아 애국자를 내몰았다"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비난도 받게 된다. 가족과 함께 그리스 여행을 떠나기로 했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는 '오르솔랴'는 마지막 순간에 함께 가지 못하겠다고 결정한다. 대신 '오르솔랴'는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 여정을 시작한다.
<콘티넨탈 '25>는 표면적으로는 한 개인의 도덕적 위기를 다루지만, 사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무관심, 그리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비판하고 있다. 오르솔랴의 죄책감은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영화는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지만 도덕적으로는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에게도 같은 고민을 요구한다. 라두 주데 감독은 '이온'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을 통해 주거권과 젠트리피케이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희생시키는 자본주의 논리를 비판한다.
2. <귈리자르의 결혼>
- 섹션 : 월드시네마
- 감독 : 벨키스 바이락
- 출연 : 에젬 우준, 베키르 베렘, 아슬리 이코즈 등
- 등급 : 15세 관람가 / 상영시간 : 84분
침묵 속에 감춰진 트라우마와 그것을 밝히려는 용기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보수적인 터키 가정에서 자란 22세 '귈리자르'(에젬 우준)가 코소보에 사는 약혼자 '엠레'(베키르 베렘)와의 결혼을 통해 '자신만의 삶'을 찾고자 하는 여정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여정 중에 발생한 성폭행 사건은 '귈리자르'의 꿈과 희망을 산산조각 내고, 이후 '귈리자르'는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한다.
감독은 성폭행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어두운 화면과 소리만으로 처리하며 '귈리자르'의 고통을 전달한다. 이 섬세한 연출은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의 정신적, 심리적 여파에 집중하게 만든다. '엠레'가 정의를 추구하고 사건을 직면하도록 '귈리자르'를 설득하는 동안, '귈리자르'는 본능적으로 침묵을 선택하고 경험으로부터 분리되려 한다. 영화는 트라우마에 대한 '올바른 대응 방식'이란 없다는 점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귈리자르'는 농장에서 그루터기를 태우는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 대목이 온전히 이해된다. 이 불꽃은 단순한 농사 작업이 아닌, 사회가 쉬쉬하고 덮어버리려는 폭력의 상처를 끝내 드러내려는 '귈리자르'의 내면적 투쟁을 상징한다. 이러한 '귈리자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침묵 속에 숨겨진 상처들을 인정하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불꽃을 일으킬 용기를 일깨운다.
3. <페도르 오제로프의 마지막 노래>
- 섹션 : 국제경쟁
- 감독 : 유리 세마시코
- 출연 : 비아차슬라우 크미트, 비올레타 라하초바, 파벨 하라드니츠키 등
- 등급 : 15세 관람가 / 상영시간 : 78분
벨라루스 망명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이다. 제3차 세계대전 소문과 함께 새해가 다가오는 불안한 시대 속에서, 25세 음악가 '페도르'(비아차슬라우 크미트)의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는 혼돈 속에서 예술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동시에 창작의 본질을 향한 묻는 여정을 그려낸다. 신년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페도르'는 긴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밴드를 결성하고 새 음악을 작곡하는 데 집중하려 하지만, 1월 1일에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수 있다는 공포에 모두가 사로잡혀 있다. 이러한 집단적 불안 속에서도 '페도르'는 무심한 태도로 자신의 음악에만 몰두하려 한다.
그러나 그에게 마법 같은 작곡 능력을 부여한다고 믿는 스웨터가 사라지면서, 그는 뜻밖의 영적 여정을 시작한다. 탐정처럼 스웨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페도르'는 다양한 인물들과 마주치고, 이는 그를 자신의 음악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끈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잃어버린 스웨터를 찾는 단순한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실제로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깊은 서사를 품고 있다. 페도르가 추구하는 스웨터는 단순한 의복이 아닌 예술적 영감의 상징이자, 그가 세상의 혼돈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안전한 공간인 것.
유리 세마시코 감독은 이 비유를 통해 예술을 통한 현실도피, 창작자와 관객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영감을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창작자의 심리를 탐구한다.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 '페도르'와 그의 동생 '니나'(비올레타 라하초바) 사이의 대비다. '니나'가 정치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반면, '페도르'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 안주하려 한다. 이 대비는 '예술가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록 음악처럼 짧고 강렬한 78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개인적 표현 사이의 균형에 대한 사색을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