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71] <좀비딸>
필감성 감독의 <좀비딸>은 확실히 의미 있는 시도다. 2016년 <부산행> 이후 K-좀비 영화가 반복해온 '생존 VS 감염', '우리 VS 그들'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좀비를 사회적 타자가 아닌 '가족'으로, 배제의 대상이 아닌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 재배치한 것이다.
맹수 전문 사육사 '정환'(조정석)이 좀비가 된 딸 '수아'(최유리)를 포기하지 않고 훈련하기로 선택하는 순간, 기존 좀비 영화의 공식은 정면으로 전복된다. 이제 좀비는 제거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이해하고 소통해야 할 존재가 되었다. 이는 일반적인 장르적 변화를 넘어선, 패러다임의 전환에 해당한다. 필감성 감독이 밝힌 "좀비물을 액션 호러 장르가 아닌 코믹 가족드라마로 풀어냈다"라는 의도는 적절히 달성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정석의 존재감은 이 실험적 시도를 현실에 착륙시키는 핵심 역할을 한다.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아빠의 모습이 나와 닮았다"라는 그의 고백처럼, '정환'이라는 캐릭터에 진심으로 몰입한 연기가 작품 전체의 신뢰도를 높인다. 무엇보다 '수아'를 바라보는 '정환'의 눈빛에서 읽히는 복잡한 감정들이 인상적이다. 사랑과 두려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조정석은 과장 없이, 그러나 넉넉히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코미디와 휴먼 드라마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연기는 <좀비딸>이 안전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든든한 보증수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장면이 있다. 좀비 혐오 시위 장면에서 등장하는 피켓들이다. 감염자 색출을 요구하는 목소리들과 그들도 한 가족의 일원이라는 주장이 서로 충돌하는 것. 이 장면이 계속 아른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짐작건대 그 장면이야말로 <좀비딸>이 시도한 변주의 핵심을 보여주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 K-좀비 영화에서라면 저 피켓 시위대가 곧 주류 사회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반면 <좀비딸>에서 그들은 도리어 편견과 혐오를 대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정환'과 '수아', 그리고 '밤순'(이정은)이 만들어가는 작은 공동체가 진짜 인간적 가치를 보여주지만, 사회적 다수는 배제와 혐오의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이는 명백히 의미 있는 시각의 전환이라 볼 수 있다.
<부산행>이 계급 갈등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드러냈다면, <좀비딸>은 가족애를 통해 그 모순을 치유하려 한다. 훨씬 정확히는 '돌봄'의 가치를 제시한다. '정환'이 '수아'를 훈련하는 과정은 일방적인 길들이기가 아니라 상호 이해의 과정이다. 보아의 'No.1'에 맞춰 춤추는 '수아'가 할머니 '밤순'의 효자손에 반응하거나, 언어를 배우려는 과정은, 좀비도 관계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최근 우리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케어 윤리'와도 맞닿아 있다. 경쟁과 배제가 아닌 돌봄과 공존의 가치. 필감성 감독이 "어떤 재난도, 어떤 어려움도 사랑을 통해서 이겨낼 수 있다"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물론, 이런 접근에는 한계도 있다.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서의 해결이 사회적 차원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정환'이 '수아'를 지키는 것은 감동적이지만, 그것이 다른 좀비들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당연히 이를 한계로만 볼 필요는 없다. 차라리 <좀비딸>은 거대한 사회 변화 이전에 개인과 가족 차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인식의 전환을 다루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적 혐오와 배제의 논리에 맞서는 첫 걸음으로서의 가족애 말이다.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도 인상적이다. 최유리가 보여준 좀비 연기는 무서운 괴물이 아닌, 여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로서의 '수아'였다. <부산행>부터 다양한 좀비 영화의 안무를 맡은 전영 안무감독이 "좀비 제자들 중 최고의 레벨"이라고 극찬한 것도 최유리가 뻔한 모방을 넘어 새로운 좀비 캐릭터를 창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은의 '밤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웹툰에서 튀어나온 듯한 완벽한 싱크로율을 보여주면서도, 좀비 손녀를 품어주는 할머니의 따뜻함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냈다. ★★★
2025/07/21 메가박스 코엑스
※ 영화 리뷰
- 제목 : <좀비딸> (My Daughter Is a Zombie, 2025)
- 개봉일 : 2025. 07. 30.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14분
- 장르 : 코미디,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필감성
- 출연 : 조정석, 이정은, 조여정, 윤경호, 최유리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