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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이사왔는데 왜 이렇게 밋밋할까?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77] <악마가 이사왔다>

by 양미르 에디터
4589_4182_2125.jpg 사진 =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 CJ ENM

942만 관객을 동원한 <엑시트>(2019년)의 이상근 감독이 6년 만에 내놓은 신작 <악마가 이사왔다>는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랫집에 악마가 이사왔다면?"이라는 발상 자체는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마치 인형뽑기 기계 앞에서 "저거 뽑을 수 있을 것 같은데?"라며 자연스럽게 동전을 넣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다.


퇴사 후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며 인형뽑기 기계에만 몰두 중인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는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임윤아)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는 낮에는 빵집을 운영하는 청순한 파티시에였던 '선지'가 새벽 2시가 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지'의 아버지 '장수'(성동일)로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 이야기를 듣게 되고, 결국 새벽마다 '악마 선지'를 보호하는 기상천외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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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구'와 악마 '선지'의 새벽 데이트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강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거나, 트램펄린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악마 '선지'.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던 '길구'도 점차 '선지'의 진짜 속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단순한 감시가 아닌 진심 어린 보호자가 되어간다. 하지만 악마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맞는다.

이상근 감독은 "뜻하지 않게 만난 선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좋은 사람들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용기를 내는 순간에 희열을 느낀다"라며 자신만의 휴머니즘을 강조했다. 실제로 영화 곳곳에서 그의 선한 시선이 느껴진다. 길거리에 버려진 깨진 병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길구'의 모습, 악마라고 불리지만 실은 상처받은 영혼을 품고 있는 '선지'의 이야기 등은 분명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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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이런 좋은 의도들이 영화적 완성도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감독이 추구하는 '무해함'이 오히려 영화의 발목을 잡는다. 코미디로 분류되지만, 배꼽 잡고 웃을 만한 장면은 거의 없고, 로맨스라고 하기에는 감정선이 밋밋하며, 오컬트 요소는 겉핥기 수준에 그친다. 여러 장르를 욕심내다가 어느 것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다.

임윤아는 이번 작품에서 가장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다. 낮의 청순한 '선지'와 밤의 광기 어린 악마 '선지'를 오가는 1인 2역 연기는 분명 인상적이다. 악마 모드에서 보여주는 에너지는 기존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모다. 안보현 역시 그동안의 강인한 이미지를 벗고 순박한 청년으로 변신했다. 두 배우 모두 캐릭터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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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배우들이 열심히 해도 부실한 각본을 메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길구'가 '선지'에게 그토록 헌신하는 이유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 저렇게까지 해?"라는 의문이 계속 들면서 감정 이입이 어려워진다. 영화 후반부에 '길구' 스스로 이에 대해 답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설명으로 때우려는 느낌이 강해 더욱 어색하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톤의 일관성 부족이다. 밝고 유쾌한 코미디에서 갑자기 진지한 가족 드라마로, 다시 오컬트 스릴러로 급전환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 마치 인형뽑기 기계의 집게가 헐거워서 잡았다가 놓치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관객의 감정을 제대로 붙잡지 못한다. 여기에 더해 CGV를 비롯한 각종 PPL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길구'와 '선지'가 영화관 데이트를 하는 장면은 스토리상 필요라기보다는 광고를 위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자연스러운 상황 연출보다는 브랜드 노출에 더 신경 쓴 것 같아 몰입이 깨진다. CGV 관객 에티켓 캠페인 쇼츠 영상이 더 어울렸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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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감독이 다음 작품에서는 욕심을 줄이고 하나의 톤에 집중했으면 한다. 여러 장르를 섞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휴머니즘 코미디에 충실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악마가 이사왔다>는 인형뽑기에서 겨우 건진 것이 조그만 키링 하나 정도의 만족감밖에 주지 못한다. ★★☆

2025/08/06 CGV 용산아이파크몰


※ 영화 리뷰
- 제목 : <악마가 이사왔다> (Pretty Crazy, 2025)
- 개봉일 : 2025. 08. 13.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113분
- 장르 : 미스터리, 코미디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이상근
- 출연 : 임윤아, 안보현, 성동일, 주현영, 고건한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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