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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액션 뒤에 숨은 아쉬운 호흡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80]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by 양미르 에디터
4597_4215_2213.jpg 사진 =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 CJ ENM

소토자키 하루오 감독이 5년 만에 선보이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시각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다. 제작사 '유포터블'이 자랑하는 2D와 3D의 절묘한 조합, 그리고 '무한성'이라는 공간의 압도적인 스케일은 IMAX 스크린에서 경이로움 그 자체다. 하지만 155분의 러닝타임을 견디고 나면, 이상하게도 극장판을 본 게 아니라 TV 애니메이션 여러 편을 몰아본 듯한 기분이 든다.


문제는 바로 '호흡'에 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2020년)이 117분 동안 '렌고쿠 쿄주로'(히노 사토시 목소리)라는 한 인물의 서사를 중심으로 완결된 이야기를 구축했다면, <무한성편>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전투를 나열하듯 배치하고, 각각의 전투마다 긴 회상 장면을 삽입하여 마치 TV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을 이어 붙인 듯한 구조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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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TV 시리즈 <귀멸의 칼날: 합동 강화 훈련편>(2024년)의 마지막 장면에서 곧바로 이어진다. '귀살대' 당주 '우부야시키 카가야'(모리카와 토시유키 목소리)가 '키부츠지 무잔'(세키 토시히코 목소리)과 함께 자폭한 후, 현장에 달려온 '주(柱)'들과 '카마도 탄지로'(하나에 나츠키 목소리) 일행은 '무잔'의 '혈귀술'에 의해 '혈귀'들의 본거지인 '무한성'으로 떨어지게 된다. 끝없이 변화하는 미로 같은 구조의 '무한성'은 '나키메'(이노우에 마리나 목소리)의 비파 연주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며, '귀살대원'들을 각기 다른 공간으로 흩어놓는다.

이렇게 갈라진 '귀살대원'들은 각자 '상현 혈귀'들과 마주하게 된다. 충주 '코쵸우 시노부'(하야미 시오리 목소리)는 언니 '코쵸우 카나에'(카야노 아이 목소리)의 원수인 상현2 '도우마'(미야노 마모루 목소리)와 조우하고, 독을 이용한 '시노부'만의 전술로 맞선다. '아가츠마 젠이츠'(시모노 히로 목소리)는 과거 같은 스승 밑에서 수련했지만 '혈귀'가 되어버린 사형 '카이가쿠'(호소야 요시마사 목소리)와 운명적인 대결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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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탄지로'와 '토미오카 기유'(사쿠라이 타카히로 목소리)의 '아카자'(이시다 아키라 목소리) 전에서는 <무한열차편>에서 '렌고쿠'를 죽인 원수와의 재대결이 펼쳐진다. 각각의 전투는 나름의 드라마와 의미를 갖고 있다. '시노부'의 복수극, '젠이츠'의 성장과 각성, 그리고 '탄지로'의 '내비치는 세계' 깨달음까지. 하지만 문제는 이 세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큰 서사로 수렴되지 못하고 각자 독립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소토자키 하루오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원작의 감성을 충실히 살리면서도 그 이상의 영상화"를 목표로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원작 만화 16권부터 18권까지의 내용을 거의 빠짐없이 영상화했고, 각 캐릭터의 과거사와 내면 묘사에도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이는 원작 팬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요소다. 특히 '아카자'의 인간 시절 회상 부분은 원작에서도 감동적이었던 부분을 더욱 세밀하게 그려내어 캐릭터의 비극성을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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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원작 충실주의'가 오히려 극장판으로서의 완성도를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TV 애니메이션에서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긴 회상과 설명, 캐릭터들의 내면 독백이 극장판에서는 전투의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끊어버린다. 일례로, 후반부 '아카자'의 회상 장면은 거의 20분 가까이 이어지면서, 그간 쌓아올린 전투의 박진감을 완전히 이완시켜버린다. 감독이 의도한 "각 인물들의 깊이 있는 내면과 과거를 통한 묵직한 감동"은 분명 전달되지만, 그 과정에서 극장판만의 몰입감과 속도감은 희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성편>이 보여주는 시각적 완성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무한성'이라는 공간의 구현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제작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기존 10년이 걸리던 3D CG 렌더링 시간을 1년 6개월로 단축하는 기술적 혁신을 통해 이 압도적인 스케일을 구현해냈다고 한다. 끝없이 확장되고 변형되는 '무한성'의 모습은 배경을 넘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 역할을 한다. 수직과 수평으로 뒤틀리며 변화하는 공간감은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로 무한성에 떨어진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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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각 캐릭터들의 호흡 기술을 표현한 이펙트는 더욱 화려해졌다. '젠이츠'의 '번개의 호흡' 7형 '화뢰신'이나 '기유'의 '물의 호흡' 연출은 애니메이션 기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음향 역시 극장판의 강점을 극대화했다.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 '무한성'이 무너지는 굉음, 그리고 각 캐릭터들의 호흡 소리까지, 모든 음향 요소가 IMAX 사운드 시스템과 결합되어 압도적인 현장감을 만들어낸다.

결국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애매한 지점에 서 있다. 기술적 완성도와 액션의 퀄리티는 극장판 수준 이상의 것이지만, 서사의 구조와 호흡은 TV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이는 3부작으로 기획된 '무한성 스토리'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구조적 한계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극장판과 TV 시리즈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연출적 선택의 결과로 보인다. 두 번째 <무한성편>에서는 완급 조절이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다. 첫 번째 작품이 보여준 기술적 완성도에 극장판다운 서사 구조까지 더해진다면, <귀멸의 칼날>은 명실상부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이다. ★★★

2025/08/11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

※ 영화 리뷰
- 제목 :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Demon Slayer: Kimetsu no Yaiba - The Movie: Infinity Castle, 2025)
- 개봉일 : 2025. 08. 22.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155분
- 장르 : 애니메이션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소토자키 하루오
- 목소리 출연 : 하나에 나츠키, 키토 아카리, 시모노 히로, 마츠오카 요시츠구, 우에다 레이나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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