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79] <스탑 메이킹 센스>
1983년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의 무대 위로 한 남자가 걸어 나온다. 데이비드 번. 그의 손에는 카세트 라디오와 어쿠스틱 기타 한 대뿐이다. "안녕하세요, 테이프 하나 틀게요." 이 담백한 인사와 함께 시작되는 88분은 영화 관람 그 이상의 체험이 된다. 훗날 레전드 스릴러 <양들의 침묵>(1991년)을 연출할 조나단 드미 감독이 의도한 대로, <스탑 메이킹 센스>는 '공연 기록이 아닌 하나의 영화'로 기획된 작품이다.
그리고 정말로, 나는 영화관에서 손뼉을 쳤다. 곡이 끝날 때마다, 데이비드 번의 기묘한 춤사위에, 밴드 전체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40년 전 공연을 보며 2025년의 관객이 손뼉을 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성취한 기적이다. 영화 제목 'Stop Making Sense'는 토킹 헤즈의 곡 'Girlfriend Is Better'에서 나온 가사다. 말 그대로 '의미 부여를 멈추라'라는 뜻이다. 데이비드 번이 2023년 NPR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토킹 헤즈의 음악은 "감정적 충격을 주는 논리적 비연속성"을 추구한다. 기존의 '말이 되는' 논리를 의도적으로 해체하여 새로운 감각적 질서를 창조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는 영화를 보는 경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토킹 헤즈를 몰라도, 뉴웨이브가 뭔지 몰라도, 1980년대 미국 음악사를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순수하게 감각에 의존해 보는 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을 느끼는 방법이다. 나 역시 토킹 헤즈의 음악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첫 곡 'Psycho Killer'에서 데이비드 번이 하이라이트 끝부분에 갑자기 목소리를 쉰 사람처럼 흘리는 순간부터 사로잡혔다. 이게 뭐지 싶으면서도, 어서 다음 곡에서도 그런 반전을 듣고 싶어졌다.
조나단 드미 감독의 가장 탁월한 선택은 밴드 멤버들이 하나씩 등장하는 구성이었다. 데이비드 번의 솔로로 시작해서 곡마다 베이스, 드럼, 키보드, 백보컬이 차례로 추가되면서 무대가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간다. 이는 세트리스트라기보다 하나의 서사적 아크를 형성한다. 조나단 드미 감독은 이 공연을 "기승전결이 살아 있는 일종의 드라마"로 바라봤다고 한다.
실제로 무대를 지켜보면 마치 레고 블록을 하나씩 쌓아가며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새로운 요소가 추가될 때마다 기존 음악적 구조는 재정의되며, 관객은 다음 단계에 대한 기대감에 몰입하게 된다. 이 점층적 구성은 토킹 헤즈라는 밴드의 본질을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 창작 과정 자체를 무대화한 메타적 장치이기도 하다. 완성된 쇼의 환상을 걷어내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예술의 역동성과 생명력을 직접 전달한다.
데이비드 번의 퍼포먼스는 이 영화의 심장이다. 그는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인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는데, 사회적 소통의 어려움이 역설적으로 무대 위에서는 완전한 해방의 몸짓이 된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 노, 분라쿠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안무는 서구적 록 콘서트의 관습을 완전히 벗어난다.
거대한 정장(빅 슈트)이 등장하는 'Girlfriend Is Better'는 압권이다. 데이비드 번은 이를 "큰 생각을 담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현대 사회의 획일화된 복장 규범에 대한 풍자처럼 보인다. 그는 춤을 추기보다 옷에 의해 조종당하는 듯 움직이며, 이 과장된 실루엣을 통해 정장이라는 사회적 유니폼의 부조리함을 드러낸다.
보통의 록스타라면 쿨하고 섹시한 이미지를 추구했겠지만, 데이비드 번은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어색하고 촌스럽고 기이한 그의 움직임은 '멋'이 아닌 '진정성'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그의 휘청이는 몸은 무대 위에서 비로소 자유를 경험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다.
<블레이드 러너>(1982년)의 조던 크로넨웨스 촬영감독의 카메라워크는 이 영화를 공연 기록에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카메라는 MTV식 클로즈업과 과잉 편집을 거부하고, 대신 공연의 리듬에 맞춰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중요한 것은 관객을 거의 비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콘서트 영화라면 열광하는 관객의 모습을 통해 현장감을 전달했겠지만, 조나단 드미 감독은 무대 위 퍼포먼스에만 집중한다. 이는 영화관의 관객이 1983년 판타지스 극장의 관객과 동일한 위치에서 공연을 경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카메라는 마치 무대 위의 또 다른 출연자처럼 기능한다. 데이비드 번의 스니커즈에서 시작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발을 따라가고, 악기 연주에 몰두하는 멤버들을 자유롭게 훑어낸다. 때로는 한 벌스 내내 상반신에 고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시선을 돌려 다른 멤버들에게 머문다. 이 모든 움직임이 음악과 완벽히 동조하여, 영화 자체가 하나의 악기처럼 작동한다.
2023년 A24가 진행한 4K 리마스터링 과정 자체는 하나의 스릴러 소설 같다. MGM 창고에서 30년 넘게 개봉조차 되지 않았던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이 발견되고, 캔자스의 지하 소금 광산에서 원본 사운드 트랙이 되찾아지는 과정은 마치 보물찾기 같다.
복원 작업에는 원래 촬영감독 조던 크로넨웨스의 아들이자 <소셜 네트워크>(2010년), <나를 찾아줘>(2014년) 등을 촬영한 제프 크로넨웨스가 직접 참여했다. 사운드 리믹스는 토킹 헤즈 멤버 제리 해리슨이 담당했다. 이들은 원본의 질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 기술의 세밀함을 더해, 시대를 초월하는 영상미를 완성했다. 그 결과 40년 전 공연이 2025년에도 전혀 낡거나 빛바래지 않은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오히려 현재의 K팝과 퍼포먼스 중심 음악 트렌드를 예견한 선구적 작품으로 다가온다.
<스탑 메이킹 센스>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 분석하고 의미화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감각에 몰입할 수 있는 자유로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해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런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토킹 헤즈의 가사는 난해하고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진정한 매력이 드러난다. 논리적 해석을 포기하는 순간, 가사는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Heaven is a place where nothing ever happens(천국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다)"라는 역설적 표현이나, "Stop making sense(의미 부여를 멈춰라)"라는 명령 자체가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극장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40년 전 공연에 대한 박수. 이미 세상을 떠난 조나단 드미 감독에 대한 박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 경험한 마법 같은 시간에 대한 박수. 손뼉을 칠 수 있는 상영관 조건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조용히 감상해야 하는 분위기였다면,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을 절반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예술은 때로 관객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서만 완성되고, <스탑 메이킹 센스>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스탑 메이킹 센스>는 토킹 헤즈의 역사를 회고하는 작품이 아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에 몰입하고 있는지', '어떤 리듬을 타고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가끔은 의미를 멈추고, 순수한 감각에 몸을 맡겨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스크린이 꺼진 후에도 몸 어딘가에서 계속 박동하고 있는 그 리듬. 그것이 이 영화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유가 될 것이다. ★★★★
2025/08/16 CGV 영등포 IMAX
※ 영화 리뷰
- 제목 : <스탑 메이킹 센스> (Stop Making Sense, 1984)
- 개봉일 : 2025. 08. 13.
- 제작국 : 미국
- 러닝타임 : 88분
- 장르 : 다큐멘터리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조나단 드미
- 출연 : 데이빗 번, 크리스 프란츠, 티나 웨이마우스, 제리 해리슨, 스티브 스케일스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