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81] <어글리 시스터>
※ 영화 <어글리 시스터>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의 장편 데뷔작 <어글리 시스터>는 우리가 알고 있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어놓는다. 디즈니의 달콤한 해피엔딩 대신, 그림형제의 잔혹한 원전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서브스턴스>(2024년)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름다움이 곧 권력이 되는 잔혹한 경쟁의 왕국에서, 언제나 외모로 조롱받던 '엘비라'(레아 미렌)는 왕자와의 달콤한 사랑을 꿈꾼다. 어머니 '레베카'(아네 달 토르프)가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귀족 '오토'(랠프 카를손)가 신혼 첫날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가족은 빈털터리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토'의 아름다운 딸 '아그네스'(테아 소피 로흐 내스)까지 가족이 되면서, '엘비라'는 자신의 추함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그러던 중 '율리안' 왕자(아이작 칼름로스)가 개최하는 무도회 초대장이 도착한다. 왕자가 신붓감을 고르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판단한 '레베카'는 '엘비라'를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여자로 '개조'하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엘비라'의 지옥 같은 변신이 시작된다. 코를 망치로 부러뜨려 모양을 바꾸고, 인조 속눈썹을 바느질로 눈꺼풀에 꿰매며, 다이어트를 위해 촌충 알까지 삼키는 '엘비라'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하게 만든다.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이 보여주는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엘비라'가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 발가락을 자르는 순간이다. '그림형제' 원전에서 암시로만 처리되었던 이 장면이 영화에서는 극도로 사실적이고 잔혹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이 장면이 고어를 위한 고어가 아닌 이유는, '엘비라'의 절망적인 희망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작품을 "외모로 인해 고통받은 모든 젊은 여성들을 위한 영화"라고 말했다. 실제로 감독 자신도 어린 시절 '신데렐라'를 꿈꾸었지만, 성인이 되어 원작을 다시 읽으며 계모의 딸들의 절박함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영화 곳곳에 녹아있어, '엘비라'의 고통이 스펙터클을 위한 장치가 아닌 진정성 있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가 '엘비라'를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름다워지기 위한 '엘비라'의 노력이 점점 광기로 변해가면서, 순수했던 소녀는 사라지고 욕망에 사로잡힌 괴물이 나타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에 중독된 여성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영화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캐릭터는 '엘비라'의 어머니 '레베카'다. 딸의 고통을 외면하며 오직 신분상승만을 꿈꾸는 '레베카'의 모습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어떻게 또 다른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끼를 들고 기절한 딸의 발가락을 절단하는 장면에서 '레베카'가 내뱉는 대사들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의 민낯을 드러낸다.
'신데렐라' 역할의 '아그네스' 역시 전형적인 선역이 아니다. 마부와의 정사 장면을 통해 성적 주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엘비라'에 대한 '아그네스'의 차가운 태도는 미인이 갖는 특권 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 모든 여성들이 결국 남성(왕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어떻게 분열시키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시각적으로 <어글리 시스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2011년), <님포매니악>(2013년) 등에서 의상을 담당했던 마농 라스무센의 의상 디자인은 화려함과 그로테스크함을 동시에 구현해낸다. 폴란드의 고우호프 성과 루비아즈 수도원에서 촬영된 배경은 고딕적 아름다움과 으스스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조화시킨다. '엘비라'가 코에 착용하는 황동 보호대는 중세의 고문 도구를 연상시키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운 장신구처럼 보인다. 이러한 양가적 미학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 장치로, 아름다움과 추함, 욕망과 고통의 경계를 흐린다.
한편,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캐릭터는 '엘비라'의 동생 '알마'(플로 파게를리)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모든 사회적 기대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알마'는 영화 말미에 '엘비라'를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알마'가 언니의 입에서 기나긴 촌충을 끄집어내는 장면은 기생충 제거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가 강요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 두 자매가 함께 집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입센의 <인형의 집>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노라'가 혼자 문을 나선 것과 달리, 이들은 함께 떠난다. 이는 여성의 해방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시사하는 희망적 메시지다.
그렇게 <어글리 시스터>는 동화 패러디의 범주를 벗어나 현대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신랄한 고발장이다. 19세기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다루는 문제들인 성형수술, 극단적 다이어트, 외모 경쟁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에밀리 블리치펠트 감독은 30대 신인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연출력을 보여준다. 바디 호러 장르의 기법을 차용하면서도 충격에만 머물지 않고, 그 안에 깊이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레아 미렌의 열연 역시 '엘비라'라는 복합적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구현해낸다.
다만 영화의 극단적 폭력성은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요소다. 일부 장면들은 정말로 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며, 이로 인해 작품의 메시지가 가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성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비정상적 미의 기준을 폭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
※ 영화 리뷰
- 제목 : <어글리 시스터> (The Ugly Stepsister, 2025)
- 개봉일 : 2025. 08. 20.
- 제작국 : 노르웨이, 덴마크
- 러닝타임 : 109분
- 장르 : 공포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감독 : 에밀리 블리치펠트
- 출연 : 레아 미렌, 테아 소피 로흐 내스, 아네 달 토르프, 플로 파게를리, 아이작 칼름로스 등
- 화면비율 : 1.66: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