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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강점을 되풀이하려다 단점만 더 보이는 안타까움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82] <그랑 메종 파리>

by 양미르 에디터
4611_4258_5634.jpg 사진 = 영화 '그랑 메종 파리' ⓒ (주)미디어캐슬

미식의 본고장 파리에서 아시아인 최초 '미슐랭 3스타'에 도전하는 일본인 셰프 '오바나'(기무라 타쿠야)의 이야기. 드라마 <그랑 메종 도쿄>(2019년)에서 이미 도쿄에서 3스타를 달성한 '오바나'가 이번에는 프랑스라는 더 큰 무대에서 진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파리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좋은 식재료 수급부터 막히고, 프랑스인들의 배타적 시선과 미식계의 보수적 관습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오바나'는 과거 동료들과 함께 '그랑 메종 파리'를 운영하지만, 완벽주의적 성향과 조급함 때문에 팀 내부에서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새롭게 합류한 한국계 캐나다인 파티셰 '릭유안'(옥택연)은 한국적 정서가 담긴 디저트를 고집하며 '오바나'와 충돌한다. 된장과 막걸리를 활용한 디저트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려는 '유안'과 정통 프랑스 미식만을 고집하는 '오바나'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절대 미각의 소유자 '하야미 린코'(스즈키 쿄카)마저 '오바나'의 독단적 행보에 등을 돌리면서, 팀은 분열의 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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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위기는 따로 있었다. 프랑스 미식계 권위자들을 초청한 '갈라 디너'에서 '오바나'는 준비가 덜 된 육류 요리를 선보이며 치명적 실수를 범한다. 신랄한 비판이 쏟아지고, 미슐랭 3스타는 커녕 레스토랑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스승에게 "3스타를 받지 못하면 파리를 떠나겠다"고 약속한 '오바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과연 그는 흩어진 팀을 다시 결속시키고, 문화적 편견을 뛰어넘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츠카하라 아유코 감독은 "요리라는 장르적 형식에 인간관계와 정체성의 질문을 결합하며 미식 영화의 기존 틀을 벗어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국경과 언어, 성공과 실패, 파트너십의 균열과 회복 같은 문제들을 셰프들의 일상과 플레이팅을 통해 시각화하겠다는 포부였다. 특히 그는 "별을 향한 성공보다, 어떻게 함께 일하고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인가"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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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 최초로 파리에서 미슐랭 3스타를 획득한 코바야시 케이 셰프가 요리 감수를 맡으며 실제 미슐랭의 세계를 생생하게 재현하려 했고, 야마시타 타츠로가 주제곡 'Santé'를 작곡하며 "기무라 타쿠야에 대한 무한한 마음을 담은 응원가"를 완성했다는 것도 제작진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좋은 의도들이 스크린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그랑 메종 파리>의 가장 큰 문제는 드라마 시리즈의 성공 요소들을 그대로 반복하려 했다는 점이다. 팀 앙상블, 미식의 전문성, 문화적 장벽의 극복이라는 검증된 소재들을 다시 꺼내 들었지만, 새로운 매체에 맞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찾지 못했다. 드라마에서는 11회에 걸쳐 천천히 쌓아 올릴 수 있었던 캐릭터 간 갈등과 화해 과정이 영화에서는 급작스럽고 설득력 없게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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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옥택연이 연기한 '릭유안' 캐릭터의 활용이 아쉽다. 분명 이 영화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문화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지만, 그의 갈등과 성장 과정이 너무 도식적으로 그려진다. 한국적 정서를 담은 디저트라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이것이 '오바나'와의 갈등과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이 뻔하고 억지스럽다.

배우로는 여전한 매력을 선보이는 기무라 타쿠야의 '오바나'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영화에서는 완벽주의적 독재자에서 따뜻한 리더로 변화하는 전형적인 궤적만 따라간다. 그의 변화가 어떤 내적 동기에서 비롯되는지, 왜 갑자기 팀원들을 이해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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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프랑스어, 한국어, 영어가 뒤섞이는 다국적 언어 환경은 현실적 설정이지만, 영화에서는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배우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면서도 완벽하게 소통한다는 설정 자체가 어색하고, 특히 감정적인 장면에서 언어의 차이가 주는 어색함이 더 도드라진다.

그럼에도 시각적 완성도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코바야시 케이 셰프의 감수 아래에 완성된 요리 장면들은 실제로 군침을 돌게 만들고, 주방에서 벌어지는 역동적인 조리 과정은 리드미컬하고 보는 재미가 있다. 미슐랭이라는 권위와 미식 비평가들의 평가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도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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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랑 메종 파리>는 성공한 드라마 시리즈를 영화로 만들 때 흔히 빠지는 함정에 그대로 빠져버린 작품이다. 원작의 DNA는 유지하되 새로운 매체의 특성에 맞는 변화를 시도해야 했는데, 기존 공식만 반복하다 보니 장점은 희석되고 단점만 주목받았다. 물론 팬들에게는 익숙한 캐릭터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겠지만,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 보면 아쉬움이 더 크다. 드라마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영화만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


※ 영화 리뷰
- 제목 : <그랑 메종 파리> (Grand Maison Paris, 2024)
- 개봉일 : 2025. 08. 27.
- 제작국 : 일본
- 러닝타임 : 117분
- 장르 : 드라마
-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츠카하라 아유코
- 출연 : 기무라 타쿠야, 옥택연, 스즈키 쿄카, 마사카도 요시노리, 타마모리 유타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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