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만난 흥미로운 영화들

[양미르의 영화영수증 #37]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감상 영화 ③

by 양미르 에디터
4320_3350_1423.jpg 사진 =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풍경 ⓒ 전주국제영화제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가 지난 4월 30일 개막, 5월 9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를 비롯한 전주시 일대에서 관객들과 함께하는 선 넘는 영화제를 진행했다. 슬로건 '우리는 늘 선을 넘지'를 내건 이번 영화제는 57개국 224편의 상영작을 공개했으며, 국제경쟁 부문 대상은 조엘 알폰소 바르가스 감독의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가, 한국경쟁 대상은 조현서 감독의 <겨울의 빛>이 차지했다. 전주에서 몇몇 작품을 감상한 에디터의 짤막한 후기들을 모았다.

4320_3351_1530.jpg 사진 = 영화 '폐허에서 파쿠르' ⓒ 전주국제영화제

1. <폐허에서 파쿠르>
- 섹션 : 프론트라인
- 감독 : 아리브 주아터
- 출연 : 아흐메드 마타르, 아리브 주아터 등
- 등급 : 12세 관람가 / 상영시간 : 90분


누군가에게 파쿠르는 단순한 운동이나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폐허에서 파쿠르>를 관람하고 나면, 그것이 가자 지구의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에 걸쳐 촬영된 이 작품은 미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감독 아리브 주아터가 가자 지구의 파쿠르 청년 아흐메드 마타르와 맺은 우정을 통해 정체성, 소속감, 그리고 제한된 환경에서의 자유를 탐구한다.

영화는 아리브 감독이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한 영상으로 시작한다. 폭발로 인한 회색 구름이 배경으로 보이는 가운데, 가자 지구의 모래 지붕에서 파쿠르를 하는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감독은 영상의 촬영자인 아흐메드 마타르와 연락을 시작하고, 장거리 우정을 형성한다. 아흐메드와 그의 친구들은 "폭격 맞은 쇼핑몰"이라 부르는 곳부터 라파 공항의 폐허, 바르쿠크 성, 심지어 지역 묘지까지 가자 지구의 파괴된 건물들을 자신들의 놀이터로 삼아 위험한 묘기를 선보인다. 그들의 파쿠르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제한된 환경에서 자유를 찾는 방법이자 국제 대회 초청을 통해 가자 지구를 떠날 수 있는 희망의 티켓이었다.

영화에서 청년들이 폐허에서 몸을 날리는 모습은 물리적 제약을 초월하려는 인간 정신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그들이 추락하고 부상을 입어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모습은 가자 지구의 현실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폐허에서 파쿠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들에게 폐허는 절망의 장소가 아닌 가능성의 공간이다. 인상적인 것은 파쿠르 팀의 공동체 의식이다. 팀원 중 한 명이 심각한 사고를 당했을 때, 그들은 슬퍼하기보다 병원에서 돌아온 친구를 환영하고 축하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폭력에 둘러싸여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잃지 않는지 보여준다.


4320_3352_1633.jpg 사진 = 영화 '발코니의 여자들' ⓒ 전주국제영화제

2. <발코니의 여자들>
- 섹션 : 월드시네마
- 감독 : 노에미 메를랑
- 출연 : 노에미 메를랑, 수일라 야쿠브, 산다 코드레아누 등
-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상영시간 : 104분


페미니즘, 복수, 해방의 메시지를 담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영화는 마르세유의 폭염 속에서 한 아파트에 머무는 세 여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내성적인 '니콜'(산다 코드레아누), 온라인 캠걸로 일하는 자유분방한 '루비'(수일라 야쿠브), 그리고 억압적인 남편으로부터 도망쳐온 배우 '엘리즈'(노에미 메를랑)는 '니콜'이 짝사랑하는 이웃 남성 '마냐니'(루카스 브라보)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방문한다. 그러나 그날 밤, '마냐니'가 '루비'를 성폭행하게 되고, 이 사건은 그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순식간에 세 여성은 시체를 처리하고 범죄 현장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과정에서 '니콜'은 '마냐니'의 유령에 시달리게 되고, '엘리즈'는 파리에서 찾아온 남편과 마주하게 되며, '루비'는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 세 여성의 연대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며, 그들은 함께 자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노에미 메를랑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년)에서 보여준 절제된 연기와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보여주며 감독으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다.

또한, 감독은 성폭력이나 가정 폭력과 같은 여성들이 직면하는 현실적 공포를 초자연적 요소와 유머로 풀어내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들이 영화 속에서 마땅한 대가를 치르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묘한 쾌감을 안겨준다. 한편, <발코니의 여자들>에서 나체는 자유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루비'가 상의를 벗고 발코니에 나가는 것은 단순한 노출이 아닌, 사회적 규범에 대한 도전이다. 영화의 후반부, '엘리즈'가 셔츠를 열어젖힌 채 거리를 걷는 모습은 '엘리즈'가 마침내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4320_3353_2035.jpg 사진 = 영화 '퀸즈' ⓒ 전주국제영화제

3. <퀸즈>

- 섹션 : 시네마천국
- 감독 : 클라우디아 레이니케
- 출연 : 에이브릴 쥬리노비치, 루아나 베가, 곤살로 몰리나 등
- 등급 : 전체 관람가 / 상영시간 : 104분


1992년 페루 리마. 경제적 붕괴와 정치적 혼란이 거리를 가득 메운 시기에 <퀸즈>는 우리를 한 가족의 친밀한 서사로 초대한다. '카를로스'(곤살로 몰리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거짓말쟁이다. 그는 자신을 비밀 요원, 고고학자, 배우라고 소개하지만, 실상은 낡은 자동차로 택시 영업을 하는 불안정한 삶을 사는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진심으로 대하는 대상은 그의 '여왕님들', 두 딸 '아우로라'(루아나 베가)와 '루시아'(에이브릴 쥬리노비치)뿐이다. 이 소중한 관계마저도 그는 오랫동안 방치해왔다.

전처 '엘레나'(히메나 린도)는 두 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준비 중이다. 심화하는 경제위기와 테러 위협,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페루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찾겠다는 결정이다. 다만 국외로 아이들을 데려가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하다. '카를로스'는 동의서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결국 미루기만 한다. 그의 행동은 단순한 무책임함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지막으로나마 딸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붙잡으려는 절실함이 담겨있다. 클라우디아 레이니케 감독은 자신의 10살 무렵 페루를 떠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고향을 떠나는 아이들의 복잡한 감정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사춘기 소녀 '아우로라'의 갈등은 절절하다. '아우로라'는 미국으로 떠나고 싶지 않다. 친구들, 남자친구,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된 아버지의 모습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한편, <퀸즈>는 개인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카를로스'의 허언증은 어쩌면 혼란스러운 사회에 대응하는 그만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선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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