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르의 영화영수증 #43] <주차금지>
<주차금지>를 보며 든 생각은 단순했다. 이 영화가 그리는 공포는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무섭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일상의 공포를 제대로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다. 영화 제목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감정 주차금지' 팻말이 붙어있는 건 아닐까. 경력 단절 후 계약직으로 복직한 '연희'(류현경)의 하루는 전쟁터다. 왕복 4시간의 출퇴근,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치근덕거리는 상사, 그리고 집 앞에서 벌어지는 주차 전쟁까지.
'연희'에게 자신만의 공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다. 직장에서는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지위로, 집에서는 이웃의 무신경한 주차로 끊임없이 침범당한다. 어느 날, 또다시 자신의 주차 공간을 막고 있는 차량을 발견한 '연희'는 한계에 달한다. 차주에게 전화를 걸지만, 받는 것은 낯선 남자 '호준'(김뢰하)이었다. '호준'은 전 애인을 스토킹하다 살해한 후, 전화를 대신 받게 된 것. '연희'의 분통함과 '호준'의 비뚤어진 분노가 만나는 순간, 사소한 주차 시비는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번져간다.
'호준'은 '연희'가 운전석에 놓아둔 명함을 통해 '연희'의 이름, 직장, 일상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연희'의 집 앞을 서성이며 '호준'은 '연희'의 일상을 조금씩 무너뜨려 간다. 흥미롭게도 <주차금지>의 출발점은 제작사 대표의 실제 경험이었다고. 주차선에 맞춰 정확히 주차했음에도 불구하고 익명의 이웃으로부터 받은 '주차 똑바로 하세요!'라는 메모. 그 순간의 불쾌함과 억울함에서 "만약 이런 상황이 범죄로 이어진다면?"이라는 상상이 시작되었다.
손현우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단지 주차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 없이 살아가는 오늘의 사회를 비추고 싶었다"고 밝혔다. 촬영 과정에서도 이런 현실감을 살리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과천의 복잡한 주택가, 서산의 한적한 도로, 서울의 혼잡한 퇴근길 등 실제로 겪을 법한 익숙한 장소들을 선택했다.
류현경의 연기는 <주차금지>의 가장 큰 자산이다. 류현경은 사회적 약자로서 겪어야 하는 수많은 압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경력 단절 여성이라는 사회적 낙인,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지위, 그리고 여성으로서 일상에서 느끼는 위협까지. '연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한 개인에게 어떻게 집약되는지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이런 류현경의 연기는 대부분 원테이크로 촬영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고 한다.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류현경과 김뢰하가 몇 시간 동안 냉기 가득한 바닥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연희'의 동생 '동현'을 맡은 차선우가 흙바닥을 구르며 열연을 펼친 것도 인상적이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리얼한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고, 극 중에 평범한 인물이 싸우는 쪽으로 콘셉트를 잡았다"며 비일상적 상황에 놓인 평범한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자 한 의도를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주차금지>는 현대 사회의 예민함에서 비롯되는 공포를 정확히 포착했지만, 정작 그 공포를 끝까지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중반부까지 쌓아 올린 일상의 섬뜩함은 후반부에 직접적인 액션으로 전환되면서 힘을 잃는다. 김뢰하가 연기한 '호준'이라는 캐릭터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초반에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악인으로 그려지다가, 후반부에는 다소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변모한다. 현실에서 한발 물러나는 순간, 영화의 날카로움도 함께 무뎌진다. ★★
2025/05/21 메가박스 군자
※ 영화 리뷰
- 제목 : <주차금지> (No Parking, 2025)
- 개봉일 : 2025. 05. 21.
- 제작국 : 한국
- 러닝타임 : 91분
- 장르 : 스릴러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손현우
- 출연 : 류현경, 김뢰하, 차선우, 김장원, 이정빈 등
- 화면비율 : 2.39: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