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자들이 '기어이' 반성할까?

[별세개반이상만 #58] <그저 사고였을 뿐>

by 양미르 에디터


"부역자들이 '기어이' 반성을 할까? 다시 나타나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며 지나가려 할까?"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을 보고 나면 이런 씁쓸한 질문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복수극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실제로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애매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불편한 질문들로 가득하죠.

영화는 한 가정의 평범한 귀갓길에서 시작하는데요. '에크발'(에브라힘 아지지)은 임신한 아내와 딸과 함께 밤길을 달리던 중 개 한 마리를 치는 사고를 당합니다. 차가 고장 나 인근 정비소에 들른 '에크발'의 절뚝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바히드'(바히드 모바셰리)의 귀에 들리는데요. 의족에서 나는 특유의 삐걱거림을 듣는 순간, '바히드'의 얼굴에는 공포와 분노가 동시에 스칩니다. 그는 이 소리를 아는데요.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의족'의 그 소리 말입니다.

4700_4608_514.jpg 사진 =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 그린나래미디어(주)

다음날 '바히드'는 '에크발'을 납치해 사막으로 데려가죠. 구덩이를 파고, 산 채로 '에크발'을 묻으려 하지만, '에크발'의 절규와 항변에 의혹이 듭니다. '에크발'은 자신이 최근 사고로 다리를 잃었을 뿐이라고 주장하죠. 확신이 서지 않은 '바히드'는 같은 감옥에서 고초를 겪은 동료들을 찾아 나섭니다. 이렇게 모인 일행은 가관이죠. 웨딩촬영 중이던 사진작가 '시바'(마리암 아프샤리)는 히잡 없이 당당히 거리를 걸으며, 결혼식을 앞둔 신부 '골리'(하디스 파크바텐)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복수의 여정에 동참하죠.


신랑 '알리'(마지드 파나히)는 어리둥절한 채 끌려다니고, 가장 과격한 '하미드'(모하마드 알리 엘리아스메르)는 확실한 증거도 없이 당장 죽여버리자고 주장합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들을 밴이라는 좁은 공간에 가둬두고 도덕적 딜레마를 극대화하죠. 모두가 '의족 남자'에게 당한 기억이 있지만, 고문받을 때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어서 얼굴을 본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히드'는 소리로, '시바'는 냄새로, '하미드'는 목소리로 그를 기억한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확실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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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르 파나히는 1995년 데뷔작 <하얀 풍선>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다양한 작품(<써클>(2000년/베니스 황금사자상), <오프사이드>(2006년/베를린 은곰상)을 통해 여성의 권리와 같은 사회적 억압 문제를 꾸준히 다뤄왔죠. 하지만 2010년 첫 번째 체포 이후 영화 제작, 인터뷰, 출국을 20년간 금지당하는 판결을 받았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굴복하지 않았죠.

아파트에서 촬영한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2010년), 비밀리에 제작한 <닫힌 커튼>(2013년/베를린 은곰상), 택시 안에서 찍은 <택시>(2015년/베를린 황금곰상) 등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3개의 얼굴들>(2018년)로는 칸영화제 각본상을, <노 베어스>(2022년)로는 베니스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끊임없는 창작 의지를 보여왔는데요. 파나히 감독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7개월간 두 번째 수감 생활에서 직접 얻은 경험을 이번 영화로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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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수감 때와 달리, 이번에는 다양한 배경의 수감자들과 긴 대화를 나눴고, 그들의 목소리가 영화의 토대가 되었죠.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의 고문 경험담은 모두 실제 수감자들이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주목할 점은 출연진들의 면면인데요. 주연 바히드 모바셰리는 지역 방송국 직원이자 파트타임 택시 기사입니다. '시바' 역의 마리암 아프샤리는 가라테 심판이고, '하미드' 역의 모하마드 알리 엘리아스메르는 목수죠. 유일한 전문 배우인 에브라힘 아지지조차 검열을 거부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만 활동하는 인물입니다.

이들 모두가 위험을 감수하고도 실명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데요. 파나히 감독은 "누군가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지만,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를 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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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진정한 치유와 화해는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데요. 물론, 감독은 쉬운 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답은 뻔해 보입니다. 부역자들은 '기어이' 반성하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나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며 지나가려 할 것이죠. 그리고 그 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요. ★★★★

2025/09/23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 영화 리뷰
- 제목 : <그저 사고였을 뿐> (It Was Just an Accident, 2025)
- 개봉일 : 2025. 10. 01.
- 제작국 : 이란
- 러닝타임 : 103분
- 장르 : 액션, 범죄, 드라마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감독 : 자파르 파나히
- 출연 : 바히드 모바셰리, 마리암 아프샤리, 에브라힘 아지지, 하디스 파크바텐, 마지드 파나히 등
- 화면비율 : 1.85:1
- 엔드크레딧 쿠키영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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