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는 전화카드였는데 지금은 보이스톡.
2006년, 유학을 핑계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국내선 제주도 비행기도 못 타 봤던 부산 여자의 첫 비행기였다. 부산에서 일본에서 하루 스탑오버를 거쳐, 다음날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는 여정이 인생 첫 해외 나들이 였고, 올해 2025년이 이제 19년차다.
그동안 독일에서 오스트리아로 거처를 옮겼고, "나는 한국 안들어간다!" 하고 부르짖고 나온터라 학생으로 할 수 있는 공부들은 아주 여유있게(?) 해가며, 그러다보니 일도 하고 회사도 들어가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았다. 환율이 1200원대였던 때부터 1900원을 치솟던 시절도 지냈다. "비행기 타기 귀찮아서 한국 안가!" 했던 - 그래서 3년, 5년 텀으로 한국에 가끔! 다녀오기도 했다- 시절도 있었는데, 자의가 아닌 "타의"로 하늘길이 닫혔던 코로나까지 여기서 보냈다. 몇년 살았어요? 하는 질문에는 이제 19년차예요, 할 때 마다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지는데...
19년, 그러게. 1년이 빠르게 지나가더라 싶은데 따지고보면 매년마다 일이 많았다.
처음 독일의 작은 도시에 짐을 풀었을 때 같이 나왔던 언니와 동생 둘, 그렇게 넷이서 잠깐이지만 한 집에 살았다.
한국과 다른 화폐단위로 장난감 같은 유로화를 봉투에서 꺼내쓰며, 냉동 감자튀김과 젬멜 semmel 을 사오며 서로 얼마씩 계산을 나눠야할 지 계산기를 두드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전화를 걸기 위해서, 한참동안 기다려 설치한 인터넷의 와이파이를 노트북에 연결해, 스카이프 크레딧을 충전하고 언제언제 전화를 걸겠다고 약속했었어야 했다. 동네의 담배가게 Tabak 에서 팔던 국제 전화카드를 사서, 뒷부분의 코팅지를 긁고, 유무선 전화기를 꾹꾹 눌러 아껴가며 전화통화를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070 인터넷전화도 신청해서 들고온 기억이 있다. 집 안의 와이파이를 잡아야만 전화가 가능했기에, 아껴가며 전화하곤 했던. 그때는 집전화와 공중전화가 소통의 전부였다.
아이폰이라는 게 나왔다. 그리고 몇년 뒤, 한국에서 놀러온 친구가 놀라며 알려주었다. "아니, 카카오톡을 모른단 말이야?" 스마트폰 속 신기한 아이콘이 생겼다. 세상에, 집 밖에 나가서도 인터넷만 되면 문자처럼 주고받을 수 있단 말이야? (한국에 있을 때도 문자 무제한 요금제를 쓰곤 했던 나였다)
그러다가 이제는 보이스톡, 이란 것이 된단다. 문자에 이어 전화까지! 공중전화 카드를 들고, 저렴한 포어발 vorwahl 을 찾아 씨름하던 시기가 얼마 전인데, 스마트폰 없이 살았던 시기가 더 긴데, 불과 십년도 안되어 지금의 나는 스마트폰의 자발적인 노예로 살고 있다. 카카오톡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인스타그램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아이러니 하게도 더 한국의 가족과 가까운 삶을 살게 된 순간부터, 한국이 더 그립다. 실시간으로 사진에 올라오는 먹거리들, 시차만 있을 뿐이지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는 한국의 뉴스들.. 화면을 보다 고개를 들면, 아 여기는 오스트리아 였지. 하고 새삼 와닿는다. "라떼는 말이야..." 라는 말이 더이상 옛 말이 아니게 된 지금,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라떼는..."을 입에 달고 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