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현재의 경험이 미래의 생각으로 정리되고, 그 생각의 결과로 다시 움직이게 된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한가로이 책 읽는 금요일 오후가 너무나 감사한 현재..
게다가 월요일까지 연휴라 마음은 헐렁헐렁 날아다닌다.
헐렁한 마음에 맞게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너무 재미있다.
읽다가 흠뻑 마음에 닿는 구절들이 있어 옮겨 적는다.
운동장 숲 속 새들 깍깍 거리는 소리, 내 책상 어항의 공기방울 소리(구피들은 열심히 제 세상을 젓고 다니고), 인근 김해 공항과 공군 부대에서 피융 슝슝 날아다니는 항공기 소음까지..
신경을 느슨하게 만드는 ASMR 속 독서하는 금요일 오후 2시 35분의 나는,
몸은 떠날 수 없어도 마음은 작가와 함께 여기저기 여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