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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Jul 22. 2019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세상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으로 가려면..

김정운 작가의 신작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읽기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흘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점점 신경질이 났다.


뭐야, 이 키 작고 똥똥한 영감탱이..

뭐 이렇게 남성 중심적이지?

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은근 와이프 디스까지.. 아이구, 이 영감탱구..


저 영감탱구가 내 영감탱구도 아닌데 왠지 우리 집에 있는 키 크고 빼빼 마른 영감탱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심하게 이입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한동안 책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마침내 책에서 책갈피를 꺼내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다 읽을 때는 혼자 울고 혼자 웃고 있다.

역시 김정운 작가야.. 하면서 말이다. 언제는 영감탱이, 영감탱구라 욕해놓고는 말이다.



작가가 말하는 '슈필라움' 은 '놀이'와 '공간'이 합쳐진 말이다. 우리말로 딱히 이름 지을 수 없지만 작가에 의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남성에게 특히 이 슈필라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김정운 작가의 남성 편애 혹은 남성 연민 때문에 처음엔 배알이 꼴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안식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남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여자에게는 화장 지우며 앉을 수 있는 화장대라도 있다, 안방은 엄마방으로 불린다.. 며 여자보다 끈 떨어진 남자에게 정녕 필요한 것이 슈필라움이라니.. 쳇. 마땅찮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회와 가정에서 고립되는 남성들을 생각해보면 영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내 남편만 해도 어떤가.

쉰 살 초반에 사회적 지위도 위태로워지고, 집 서열은 이미 저 아래에 있다. 가정에서의 서열은 외식할 때 메뉴 주도권이 있느냐 없느냐로 가름된다. 남편이 먹고 싶어 하는 추어탕, 회는 가족회식 메뉴에서 늘 제외된다.

삼겹살을 이길 수 없다.

고3 아들 과외 기사 노릇도 해야 하고, 딸내미 심부름도 늘 아빠 몫이다.

남편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어쩌면 한 달 이용권으로 사우나도 하고 헬스도 할 수 있는 집 근처의 온천랜드뿐인 거다. 남편의 슈필라움을 내가 만들어줘야 하나.. 잠깐 고민에 빠진다.

슈필라움은 온전히 자신의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니 그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맞겠다.



'후회'에 대한 정리에 한참 머물렀다.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로 구분해야 한다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심리학과의 닐 로스 교수가 주장했다.. 고 김정운 전 교수가 전한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굳이 무슨 무슨 대학 아무개 교수라는 것을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저명한 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혹은 아무개 교수 또는 아무개 박사에 의하면..이라는 전제나 전언이 좋게 다가오지 않는다. 저명한 이가 먼저 명문화 해 놓은 문장들은 그의 것이지만 글에 담긴 의미는 그의 것이  아니다. 누구든 살면서 한 생각을 다만 글로 안 적어놓았다 뿐인 뻔한 말들을 어느 박사, 어느 교수가 했다고 해서 신뢰가 더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닐 로스'란 이가 아닌 김정운 작가의 말에 무척 공감이 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 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이 때문에 심리적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이야기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이 그토록 오래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 이 섬의 미역 창고에 작업실을 짓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할 것임이 분명하다. 반대로 섬에 작업실이 완공되어 습기와 파도, 바람 때문에 아무리 괴롭고 문제가 많이 생겨도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섬에서 왜 행복한가의 이유를 끊임없이 찾아낼 것이다.

 


꼬이면 자빠진다!


김정운 작가는 재미있다. 그는 유시민 작가가 불편하단다. TV를 켜면 그가 나오고 그의 '구라'는 갈수록 현란해지고, 그가 쓴 책은 모조리 잘 팔려서 그렇단다. 그러나 자기의 마스크가 그나마 유시민 작가보다 나아서 자기는 그를 제쳤다고 생각한다나. 흐흐..

그럼에도 '이상순'한테는 안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가 바로 이효리니까. 그냥 그걸로 '게임 끝'이란다. 이상순에 대한 질투가 성격적 열등감을 건드린다며 또 이러저러 학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심리학적 썰을 푸는데 그들의 이론적 근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다만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을 만드는 것이 가장 게으른 방식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타인들과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한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마음속에 깊이 박힌 대못'처럼 그저 성찰의 계기로 품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한치의 틀림이 없다.


나도 하루에 열두 번 열등감을 느끼며 산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몹시 부럽고 짜증이 난다. 시간이 많으니 저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야.. 라 단정 지으며 시간 많은 이의 한가로움을 비판하기도 한다. 쉬는 시간을 쪼개어,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혼자만의 시간을 성찰의 시간으로 삼아 글을 쓴다는 것을 알면서 괜히 그런다.

나에게 없는 것에 대한 못된 시기와 질투는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내 맘이 꼬여서 그런 것이다.

배우나 안 배우나 다 똑같다.

꼬이면 자빠진다니 심하게 꼬여 있는 나는 거꾸로 돌며 내 꼬인 것들을 풀어야겠다.

자빠지면 쪽팔리니까.





원치 않는 백세시대에 접어들었다.

슈필라움은 고사하고 아들 딸에게 방 하나씩 주기 위해 한 세상 휘몰아치게 살아온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에게는 백세시대의 인생 후반전은 정말 큰 숙제다.

회사에서는 빨리 나가라 그러고, 사회에서는 아직 젊다고 그런다.

집에 덩그러니 있기에 24시간은 길고 일주일은 지난하기만 하다.

남자든 여자든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나마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 다행이다. 소정의 교육을 받은 후 손주들, 아기들을 봐주는 직업도 구할 수 있다. 간병 요양사도 할 수 있고, 희한하게 '여사님'이라 불리며 여사님이 절대 하지 않을 청소일 자리도 구할 수 있긴 하다.

그에 비해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참 인기가 없긴 하다.

애매한 50대 중반의 나이엔 경비직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김정운 작가는 여태껏 머리로 먹고 산 사람들은 두 번째 인생에는 손으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을 해야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해서 회사를 나온 그의 친구에게는 '용접일'을 추천해주었다고 한다.

대학을 대충 다녔음에도 삼십 년 가까이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앞으로 삼십 년은 인생에 겸손함을 장착하고 처음부터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항상 노심초사하는 내 남편도 두 번째 인생은 제발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창의적인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 일이 수입으로 이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굳이 돈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좋다.

하루하루 즐거움을 주고, 뇌의 노화를 방지하고,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깟 돈이야.. 나중에 내가 퇴직 후 아기 보는 알바라도 해서 같이 나눠 쓰면 된다.

근데.. 50대들.. 좀 짠하다.

나도 이 줄에 서게 될 줄 몰랐다. 마의 50줄 말이다.




나만의 공간을 가진 자는 여유롭다.

아들에게도 방을 하나 주었고, 딸에게도 방을 하나 주었다면 부부도 각자 방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부부의 방을 안방이라 부르긴 하지만, 니 방도 내 방도 아니다.

요즘 TV는 재미도 없고 인기도 없다. 아이들은 거실 소파에 일렬로 앉아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콘텐츠를 보고 있다.

선심 쓰듯 한 시간쯤 거실에서 같이 있던 아이들은 '신서유기'가 끝나면 자기들 방으로 가버린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소파 끝 자락에 뚝 떨어져 앉아 멍하니 TV 앞에 앉아 있을 뿐이다.

'슈필라움'이 절실하다.

아이들이 다 컸다면 그냥 아이들을 독립시키든 내쫓든 해야 한다.

부부 개인의 슈필라움을 위해서 말이다.

아이들을 아직 내쫓을 수 없다면 거실을 어떻게든 슈필라움으로 만드는 것도 좋겠다.

김정운 작가는 안되면 '땅굴'이라도 파라고 하지 않는가.


공간이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품격도 유지된다고 한다.

은은한 조명 아래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한쪽 벽면에 빔을 쏘아 영화를 보고, 내 물건.. 무엇보다 내가 애착하는 물건들을 쭉 늘어놓을 수 있는 공간에서는 나만의 서사가 넘실댈 것이다.

나는 여행한 도시의 별다방 머그를 모으고 있다. 별다방 머그에 커피를 마시면서 리스본도 추억하고 치앙마이에서의 기억도 떠올린다. 어디 이 곳들 뿐이랴.

흘러갔던 길과 골목, 사람들, 길냥이, 떠돌이 개와의 추억들을 조우하게 해주는 나의 슈필라움은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다. 뭐, 주로 거실 소파와 베란다 의자이지만.



노안이라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약병에 쓰인 주의사항, 식음료 유통기한이 보이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정보가 이렇게 자잘하게 써져 있다니.. 쳇..죽으란 말인가.

책도 자꾸 멀리 하게 된다.

인상을 써야 글자가 파악이 되다니.. 너무 서글프다. 가까운 것을 보기 위해 미간을 심하게 찡그려서 생 긴 주름은 이제 되돌릴 수가 없다.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더 명확하게 보이는 나이가 되었다. 가까이 있는 것들은 오히려 불분명하고 흐리게 보인다. 가까이 있는 작은 것들이라 간과할 수 있는 현상, 감정, 관계 등을 더 유심히,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는 인생의 힌트일 수 있겠다.


멀리 봐야 하고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는 작가는 이를 도파민과 연관 짓는다.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도파민은 먼 공간, 높은 공간과 관계 지어 있다니 참 흥미롭다.

초저녁 산책하다 만나는 붉은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의 그 아련한 느낌.. 문득 슬프고, 문득 외로움이 치고 들어오지만 분명 불행감은 아니다.

불행을 느끼지 않는 모든 순간은 다 행복한 순간이다. 다만 공기 같은 것이라 깨닫지 못할 뿐이다.

집 안에서 슈필라움을 가질 수 없다면 매일 저녁 만날 수 있는 노을, 나만의 노을을 찾으러 나갈 수밖에 없다.

여자도(섬)의 붉은 노을에 하염없이 젖을 수 있는 바닷가는 김정운 작가의 아웃도어 슈필라움일 것이다.

그의 바닷가 작업실에서 흐르는 시간이 전혀 다른 이유는 그만의 슈필라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간도 더 재미있게, 더 다양하게 흘러갈 수 있다.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든지 찾든지 해야 한다.


* 이 책을 세 번쯤 읽고 나니 작가의 외로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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