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 노래 May 30. 2020

웰컴 투 더 멍청한 부부의 세계

남편 생일기념 여수 여행


송사마 생일 기념으로 여행을 왔다.
이름도 예쁜 여수..
사람 없는 루프탑 풀에서 수영하며 하늘을 정면으로 보니 좋았다.
늙수그레 쉰부부는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물에서 한참을 놀았다.
꽁꽁 묶인 영혼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
서로의 똥배를 놀리며 킥킥 거려도 눈치 볼 사람들이 없어 자유로웠다.
그러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미련없이 나왔다. 언제가부터 우리의 시간과 젊은 사람들의 시간이 겹치는게 불편하다. 살짝 슬프다. 쳇.

초여름의 매력은 더우면서 시원하다는 것, 다니기 좋지만 붐비지 않는 것이다.
손님이라곤 우리 부부뿐인 식당에서 주문한 해산물 삼합 사진을 찍으니 옆에서 보고 있던 매니저가 자기한테 보내 달라했다.
내 사진을 인스타에 올려서 홍보하겠다는 그녀..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는 사장보다 더 가게를 생각하는 것 같은 그녀가 기특해서 음식사진들을 다 보내줬다.
호객을 하다가도 금방 옆에 와서 살갑게 말을 거는 젊은 매니저의 여수 사랑이 대단했다.

어라..모르는 젊은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로 한참 떠들었다.

좀전에 젊은 사람, 불편 운운한 노친네는 어디 갔나?


여수 밤바다아~이 조명에 담기인~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아~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오~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아 여수 밤바다아~


세상에.. 나와 송사마가 이 노랠 흥얼거리며 손잡고 여수 밤바다를 걷고 있을 줄이야.
남편 생일이니 기억에 남을 장면들을 만들고 싶었다.
내 남편이 아내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귀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부부의 세계>를 열렬히 시청하며 입에 개거품 물고 '사나새끼들'을 싸잡아 욕했다.
남편은 이런 내가 무서워 금,토 밤엔 거실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다나.
드라마가 끝나서 너무 좋다는 송사마의 해맑은 눈가 주름.. '해맑은 눈동자'라 하고 싶지만 송사마는 웃으면 눈은 사라지고 주름만이 나타난다.

아, 갑자기 내 마음은 저 주름살에 왜 짠하고 난리인가악..

새벽에 깬 남편은 혼자 산책을 나갔다.
두 시간쯤 뒤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더니 같이 산책을 또 나가자고 그랬다. 오동도 산책로가 너무 예쁘다며 나도 꼭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미 혼자 새벽에 7킬로미터를 걷고 왔는데 나를 위해 똑같은 코스를 한번 더 걷는 이 남자..호텔로 돌아올 땐 다리가 풀려 버린 이 남자..를 위해 오늘 저녁엔 최상급의 고기를 넣어 미역국과 나물 몇 가지를 직접 만들어서 생일축하를 해야지 마음 먹었다. 옛 모습을 다 잃어버린 늙수그레 마누라도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는 늙수그레 남편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귀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준 기념으로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폰 캘린더 일정을 확인하다 이상한 걸 봤다.


여보, 캘린더에 음력 5월이어야 하는데   4월이라 되어있지? 앞에 ''자는 모지?

, 여보, 지금은 윤달이래. 4..


여보, 그럼 오늘  생일 아니야?


당신 생일은 한달 뒤야. 괜히 꽁냥꽁냥 했잖아.

허어얼~~~~



멍청한 부부의 세계 끝!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거기가 아파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