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의 전시회_ 결론은 남편 잡기_나는 악역이 어울리지
(2019년 여름, 폭우 내리던 날 쓴 글)
나는 재능 많은 남해 형님이(송사마 누나) 부럽다.
형님은 학교 땐(장소가 시절을 나타내는 것은 명사인지 부사인지) 공부를 잘했고, 옷도 잘 만들고, 음식도 잘하고, 수영도 잘하고, 남해군 카약 대회에서 여성부 챔피언도 먹었단다.
적절한 예인지 모르지만, 형님네 아이들은 우리 집 아이들보다 공부도 잘해서 대학도 좋은데 다니는데 나는 이것도 형님의 재능이라 생각한다. 형님의 잔소리 신공 말이다. 조카들은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더 열심히 공부했을지 모른다.
무튼 형님의 많은 재능 중 가장 부러운 것은 단연 그녀의 그림 그리기 재능이다.
형님은 서울의 모 은행에서 근무했는데 정치하는 남편의 일로 서울에서 남해로 내려갔다. 거기서 군수의 아내로 살얼음판 걷듯이 살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고, 그곳에서만 6년간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한다.
그런데 그림 잘 그리는 남해 형님을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내가 오늘은 심사가 틀렸다.
하필 비 오는 날, 그냥 오는 것도 아닌 억수같이 퍼붓는 오늘 같은 날에 형님의 전시회를 보러 남해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전시회를 했어도 동생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었기에 형님의 전시회는 남해 군민들이나 가는 지역행사쯤으로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애들 고모부가 가족 단톡 방에 전시회 사진을 올리고 어머니께도 친히 전화까지 해서 알린 것이다.
어머니는 장녀이자 외동딸의 작품 전시회를 은근히 궁금해하시는 눈치였다. 뭐든 대놓고 시원하게 표현을 하지 않으시는 성정이라 남편과 나는 어머니의 의중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여느 시어머니 같은 분이라면 나도 일부러 모른 척 넘어갈 테지만, 어머니는 내게 여느 시어머니와 다른 분이시다. 다른 여자를 시어머니로 모신 적이 없는, 현재까지 단혼녀인 나는 내 시어머니의 삶에 깊은 측은함과 존경심을 함께 가지고 있다.
"여보, 토요일에 어머니 모시고 남해 가서 누나 전시회 한번 보고 오는 게 어떨까? 어머니가 가고 싶어 하시는 눈치네. 매형이 괜히 말해가지고.. 어머니 모시고 남해 여행 간다 생각하고 갔다 옵시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뭐? 이 빗속에? 맛있는 거 무러 남해에?"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 어깨 재활치료 중인 남편이 두 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하고, 나는 또 며느리 모드 장착하여 여기서 방긋 저기서 방긋 웃어야 하고, 분위기 썰렁하지 않게 농담도 쳐야 하고, 조카들 안부부터 사돈어른 건강까지 아주 관심이 많은 듯 물어야 하고..
무엇보다 연일 계속 쏟아붓는 이 폭우를 뚫고 위험하게 남해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말이다.
남편은 어머니께 모시고 가겠다고 이미 말해 놓은 눈치라 (아.. 품위 따위 버리고 얘기하자면) 쌩깔 수가 없는 상황이고, 나는 이 상황에 짜증이 났다.
" 꼭 가야 해? 훈이도 장염으로 아프고, 내일모레 애 시험인데 집에서 죽이라도 챙겨줘야 할 것 아니가."
신경질적으로 말해도 나는 꾸역꾸역 조수석에 타는 내 모습이 보였다.
"형님~ 12시 20분쯤 남해에 도착할 것 같은데, 정확하게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응, 그럼 점심부터 먹고 갤러리로 가자. 남해 금산 횟집 찍고 와~"
"네~~^^"
가증스러운 문미리애.. 가기 싫으면서 형님과 나눈 문자 말미의 "네"에 물결 두 개와 방긋방긋 까지 넣는다. 미친다..
가는 두 시간 동안 휴게소에 한번 들르자고 했지만 폭우가 엄청나 휴게소 들어갈 엄두도 못 내고 남해 금산 횟집으로 가니 12시 10분이다.
기분은 이미 깊은 수렁 속에 패대기쳤는데 금산 횟집 1호 방에 한 상 가득 차려놓은 바닷 것들을 보니 가라앉은 기분에 모터라도 달렸는지 터보 엔진으로 금방 올라오는 거.. 이건 뭐냐.
금산 횟집은 애들 고모부 6촌형의 가게라나.
회는 역대급으로 맛있고, 소라는 구색이 아니라 아예 주인공처럼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제 통통함을 자랑하는 형색이었다. 내 눈치만 보던 송사마는 밝아진 내 기분을 알아차리곤 눈치의 끈을 놓은 채 히죽히죽 잘도 먹었다. 사돈 어르신까지 같이 오셔서 불편한 자리였지만, 쫄깃한 회와, 통통한 소라와, 육지에서 잘 볼 수 없는 남해 생선 '서대'와 친하느라 사돈 어르신은 어머니가 밀착 마크하도록 밀었다.
해삼과 산 낙지가 섭섭해할까 봐 간간이 숟가락으로 푹푹 떠서 먹었다.
집에서 굶고 있는 훈이는 까마득히 잊은 채 말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전시회장으로 꾸며진 어느 폐교 문화공간으로 갔다.
예술인들이 폐교를 임대받아서 예술학교로 운영을 하는데 형님이 그림을 배우러 다닌 화실도 바로 이 곳이다.
여기서 일주일에 두어 번씩 그림을 그린 세월이 6년이라니..
탤런트 박원숙 씨도 이 곳에서 함께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형님의 작품들은 아마추어의 작품이라고 보기엔 몹시 훌륭했다.
부러움과 동경이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왔다. 좀 전에 회와 소라로 제대로 잘 막아놔서 다행이다.
내가 아는 찬사와 부러움의 말을 다 뱉고 나니 배가 다시 허해지는 느낌이었다.
막내 시동생과 형님은 그림 잘 그리는 재능을 물려받았는데.. 저 멀대는 잘하는 것도 없고, 으이구..
다행히 어머니는 형님네서 하루 주무시겠단다.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음 놓고 혼꾸녕 말폭탄을 퍼부었다.
"당신은 도대체 잘하는 게 뭐있노? 느거 누나랑 동생은 그림도 그렇게 잘 그리고 손재주도 좋은데 말이야. 나한테 그림 잘 그린다 뻥이나 치고 말이야! "
남편은 결혼 전에 자기가 그린 그림이라며 헤밍웨이 초상화를 보여 줬는데 알고 보니 막냇동생이 그린 것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늘의 주제는 그림이었고, 그림 때문에 이 빗속을 왕복으로 뚫고 가는 길이니 나는 20년도 더 된 이야기를 또 꺼내는 건수를 잡았다.
물폭탄은 연신 앞 유리창을 때리고 마누라는 말폭탄으로 때리고..
이렇듯 내 얘기의 결말은 언제나 똑같다.
남편 혼꾸멍내는 것이다.
한결같은 결말인데 쓸데없이 긴 글 읽으시느라 시간 낭비하신 님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에필로그>
올케야~ 비 오는데 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아까 너가 제일 좋다는 그림 가지고 부산에 한번 갈게~~^^
*형님의 문자 끝 물결 두 개와 방긋방긋은 진심이겠지? 아, 나는 역시 악역이 어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