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책과 동침, 책 읽는 고양이
내게 독서는 행복이다.
책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 독서하는 이들과 달리 마음이 평화로울 때 책을 읽는다. 책 읽는 시간은 내 마음이 열려있는 시간이고 그 여유로움으로 책에 푹 빠진다.
다시 말해 나는 행복할 때 책을 읽는다.
책은 행복이란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구축되었다.
책 구입 후 바로 읽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일이 바빠 여유가 없을 때는 책을 펼치지 않는다.
다만 책을 늘 곁에 둔다.
습관처럼 가방에 넣고 출근을 하고, 습관처럼 가방에서 책을 꺼내 교실 책상에 올려둔다. 책에 눈길은 주지만 읽지 않는다.
퇴근할 때 잊지 않고 가방에 다시 넣고, 내 방 침대 협탁에 두거나 아예 베개 옆에 둔다.
역시 눈길을 주지만 읽지 않는다.
책은 그저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어느 날 새벽 눈을 떴는데 머리 위에서 붉고 푸른빛이 났다.
홀린 듯 일어나 창 밖을 보니 새벽 5시 17분의 하늘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내 방은 남향이다. 남쪽 베란다 하늘이 이토록 아름답다면 새벽의 동쪽 하늘은 어떠할까 궁금했다.
무대의 핀 조명처럼 집요하고 좁게 빛나는 빛을 따라 거실로 나가니 동쪽 베란다 하늘은 해를 토하기 전의 붉디붉은 얼굴 같았다. 오묘하고 장엄했다.
내가 잠들어 있던 수많은 시간과 자느라 외면했던 저 공간은 늘 저토록 아름다웠을까.
다시 잠 들 생각 따윈 허락하지 않는 하늘이었다. 감사하고 행복했다.
방으로 돌아와 머리맡에 두었던 책을 펼쳤다. 잠이 달아난 이른 새벽에 달리 할 것도 없었다.
일상이 일심동책 (김수정 저, 책읽는 고양이 펴냄)
인내심을 갖고 곁에서 나를 기다려준 책은 <일상이 일심동책>이란 책이다. 책을 사랑해마지않는 미술교사가 쓴 책인데 그녀의 책사랑이 어마어마하다.
정녕 저 정도로 책에 빠질 수 있을까를 의심케 하는 문장들로 꽉 차있다.
책을 사랑하기에 서점을 흠모하고, 헌책방을 짝사랑하며 성북동 북카페를 꿈꾸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벌레인 책벌레님이시다.
그녀는 또한 돈벌레이길 자처한다. 자신의 사랑이자 꿈인 책 공간(혹은 서고 혹은 북카페)을 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시를 6포인트 글자로 프린트해서 너덜 해질 때까지 외운다는 글을 만났을 땐 그녀의 맑은 심상이 부러웠다.
내겐 편견이 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맑고 착할 것이란 단정 말이다.
박완서 선생의 시에 대한 이야기 발췌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발췌 글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와 연결시키는 힘, 그 소환의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 등 따숩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는 박완서 선생의 글에 정신이 번쩍 든다.
시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가의 글 또한 명상과 호흡에 집중하게 하는 맑은 종 띵샤 같다.
책이 예전처럼 쉽지 않은 까닭의 상당 부분은 노안에 있다.
눈 검사를 하니 노안이야 어차피 자연스러운 문제이지만 노안성 난시 때문에 불편함을 더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쩐지 글자가 자꾸 겹쳐 보이긴 했다.
<일상이 일심동책>에서 작가는 e-book 역시 좋아한다고 한다.
나도 아마존에서 e-book 리더인 파이어 북을 구입할까 진지하게 생각 중이다.
작은 글자를 읽느라 미간 주름이 깊고 선명하게 생겼는데 웃어도 찡그린 것 같은 인상 때문에 스트레스가 나날이 쌓여간다.
큰 포인트의 글자로 책을 본다면 좀 덜 찡그리진 않을까?
그렇지만 작가처럼 나도 종이의 물성을 포기할 수가 없다. 책은 책이다.
만지고, 쓰다듬고, 펼치고 닫고.. 그 애정스런 행위는 전자책과 할 수 없다.
게다가 가방에 책을 넣는, 그리고 어딘가에 앉아서 책을 꺼내는 그 멋진 행위를 어찌 포기할 것인가.
내게 책은 행복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그 이미지가 없어진다면 나는 행복의 기억을 상기하는 도구 하나를 잃게 된다
아무래도 미간 주름은 3만 원짜리 보톡스로 해결해야겠다. (예뻐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거니와)
김수정 작가는 미술교사라고 한다.
미술 문외한인 나는 그림 잘 그리고, 그림 설명 잘하는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
부러운 정도가 아니라 무척 우러러본다.
<일상이 일심동책>의 가장 큰 매력은 아주 멋진 도슨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이토록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풀어주는 이가 있었을까.
한겨울 추운 날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름을 비로소 알게 된다
제주에 유배된 그에게 변치 않는 존경과 사랑을 보인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칭찬하며 그림 옆에 적은 글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림의 한 줄 감상평을 '제발'이라고 한다는데 그 제발이 무려 10m에 이른단다.
그림에 관한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작품과 함께 볼 수 있다니.. 책을 읽는 내내 눈이 동그래지고 고개가 끄덕여지고, 얼굴에 다양한 표정들이 생긴다.
특히 고흐의 그림 중 가장 밝은 에너지를 가진 <만개한 아몬드 나무>의 이야기에선 혼잣말도 하게 된다.
'아, 그랬구나. 그랬어..'
책 읽기는 역시 카페가 최고다.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다.
그래도 ㄱ자 베란다의 이점으로 바람이 써라운드로 들어와서 요 며칠 폭염경보에도 미니 선풍기만 틀어놓아도 괜찮은 편이다.
책 읽느라 아침 먹을 시간이 지나도록 거실에 나가지 않으니 남자 1호가 손수 아침을 방으로 가져다준다.
책 읽을 땐 기분이 좋다는 신호인 걸 아니 이럴 때 더 우쭈쭈(?)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늦은 아침을 먹었으니 산책도 할 겸 에코백에 책을 넣어 동네 카페로 간다.
살갗이 타들어갈 것 같은 한낮의 태양광선에 놀라 걸음을 서둘렀다.
이 시간 카페엔 사람들이 별로 없겠지 생각하며 문을 열었는데 둘둘 셋셋 정답게 얘기하는 이들로 빈자리가 거의 없다.
마스크를 벗고 찹싸그리한 에어컨 냉기 속에서 남은 책을 다 읽었다.
책덕후 김수정 작가 역시 독서의 장소로 카페를 찬양한다.
홀로 책 읽는 애착 카페에 누군가를 초대했다면 정녕 깊은 마음까지 내어준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남편과 카페를 자주 가는 편이다.
우리는 시시껄렁한 대화를 몇 분간 나누다 곧 서로에게 싫증을 낸다. 대화를 곧게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우리는 개인의 시간을 즐긴다. 나는 주로 책을 읽고 남편은 늘 휴대폰을 본다. 주로 주식 관련 정보를 읽는 것 같은데 영양가는 별로 없지싶다.
대화도 길게 하지 않는 우리 부부가 카페에 자주 동행하는 것은 서로가 제일 만만하고 편해서가 맞겠다. 나는 이미 마음을 그에게 주었으니 남편을 옆에 앉혀 놓고 책만 읽어도 엄청 편하다. 여자의 마음을 가진 남자가 무엇을 더 요구하겠는가. 흐흐흐..
내 나이 또래의 중년 여성들은 한때 만화책을 통해 세계사를 진지하게 접했다.
지금 생각해도 <베르사유의 장미>는 유럽 근대사를 관통하는 대단한 서사를 지닌 만화책이다. 이 위대한 만화책의 주인공인 오스칼님이 이런 말을 했다니!
좋은 책은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여 사람을 끌어당기며 놓지 않는 것. 인간이기에 좋은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책은 끌어당김의 능력을 가졌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을 끌어당기고, 당기고, 또 당기고... 어쩌면 나의 거의 모든 것은 그 만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만나는 책은 인생에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것과도 같다.
나에게 찾아와 영감을 주고, 감동을 주어 나를 변화시키며 좋은 사람으로 살게 하니 말이다.
<일상이 일심동책>의 작가도 그녀가 사랑한 책들 속에서 넓디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하며 사는 것 같다.
그 여정에서 만난 많은 작가들과 화가들, 시대를 초월한 무수한 인물들과의 교류가 이 대단한 에세이를 가능하게 했을 터이다.
이 책엔 그들의 글이, 그들의 그림들이 숨 쉬고 있다.
만나서 반갑고 또 반갑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문장, "Books tie the knot!"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오늘 읽은 이 책, <일상이 일심동책>은 묶여있던 나를 다시 풀어주었지만 말이다.
책의 세상으로 떠나라고..
Books untie the knot for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