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로운 페미니스트여, 선각자의 길은 아프고 고독하나니.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들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리라,
그러니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
<나혜석, 운명의 캉캉>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관습과 신문화, 결코 섞일 수 없었던 가치의 간극에서 불꽃처럼 살다 간 조선 최초의 여자 서양화가 나혜석의 삶을 말한다.
내 삶의 결정은 누구도 아닌 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진취적이나 고달픈 자유의지를 깨달은 여자 나혜석, 여자 이전에 인간이고자 했기에 편견과 관습에 외롭게 투쟁하며, 생활은 패배해도 정신은 살아있다던 나혜석의 실존 이야기이다.
나혜석과 동시대를 살았던 실존인물들을 다루었으므로 완전한 픽션으로 보기엔 힘들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나혜석의 인생을 이야기하려면 작가의 상상 속 인물인 윤초이와 독고완의 시선이 필요했으나 나혜석의 실제 이야기는 픽션의 극적 서사를 능가하는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시 배우자였던 '김우영'과 유럽 여행 중에 '최린'이라는 인물과 외도를 한 까닭으로 이혼에 이르는 여자 나혜석은 인간 나혜석으로서 항변한다.
그녀의 이혼 고백서 중 한 대목이다.
조선 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오.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 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들 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자신의 외도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실수를 인정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며 어떻게든 화합을 하려 했으나 가정적으로 실패한 인생이었던 나혜석은 당시에 큰 파란을 일으켰던 이혼 고백서를 실으면서 그녀를 나무라는 오빠 경석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치 미래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이.
"저는 바보 천치가 아니예요. 내가 욕을 먹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어요. 지금은 조선이 아직 미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를 비난하고 경멸하겠지만 십 년, 이십 년, 아니 백 년 후에라도 여성의 인권을 위해 가치 있는 욕을 먹은 자가 있다는 게 밝혀질 테지요. 그래서 저는 나 혼자만 보는 일기가 아닌 잡지에 흔적을 남기려는 거예요. “
나혜석은 100년이 지난 대한민국이 여전히 여자로서 살아가기 힘든 땅임을 상상이나 했을까.
꽃 같은 20대 여성이 지하철 역에서 단지 연약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를 당하고, 외딴섬에 재직 중인 여자 교사가 주민들에 의해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이 말 안 되는 사회를 여자 나혜석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땅의 여성 인권은 허울만 좋을 뿐, 여전히 투명하고 단단한 유리벽에 갇혀 있지 않은가.
행려병자로 쓸쓸히 죽어간 나혜석 죽음의 결정적 원인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박정윤 작가는 혜석을 미치도록 부러워하고, 미치도록 질투했던 가상 인물 ‘미순’을 창조해냄으로써 소설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문장들을 힘 있게 날아다니게 한다.
혜석의 집 하녀 딸이었던 ‘미순’ 혹은 ‘미코 야마토’ 혹은 ‘엘리제 마담’은 자신이 사랑했던 단 하나의 남자 ‘하석진’의 영원한 사랑이었던 혜석이 죽도록 미웠을 것이다.
그녀에게 혜석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재수 없는 양반집 아씨이자 하나뿐인 친구였다. 친구 미순을 끝까지 믿고 의지했던 혜석은 자신의 재기를 교묘하게 막았던 이가 미순임을 알고 절망하여 병든 채 떠돌다 길에서 쓸쓸히 죽는다.
그러나 혜석을 죽음으로 내몬 이는 엄밀히 따지면 그 시대 그녀를 받아내고 소화할 수 없었던, 그녀를 보호하고자 노력했던 파인 김동환 까지, 남성이며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아내가 외도한 것을 알고도 한동안 묵인해 주었던 혜석의 남편 김우영은 조선에 돌아온 후 다시 완벽하게 조선 남자가 된다. 자신은 기생과 놀아나고, 첩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해도 내 여자는 안된다는 혜석의 남편 김우영은 네 번째 아내까지 맞아들였다.
조선 최초의 여기자 ‘최은희’의 격려와 신뢰도 그녀 나혜석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을 잃고 삯바느질로 자식을 키우던 기자 최은희는 혜석에게 한동안 남성과 조선 사회를 자극하는 글을 기고하지 말고 자식들이 어미를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어미 됨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당시의 혜석은 글이 아니면, 글로써 절규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자식 넷을 남의 손에, 그것도 세 번씩이나 바뀌는 계모 손에서 길러지는 것을 봐야 했던 어미 나혜석의 심정은 어땠을까.
" 그래, 멋진 생각이야. 네 곁에는 아이들이 있어 희망이 되는 거지. 난 아이들을 위해 지금 나 자신을 파헤치는 거야. 어미의 생각을 알아달라고. 오래전, 영국에서 여성운동을 했던 여사가 너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어. 함정을 대비하기 위해 돈을 저축하라고. “
나혜석과 동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의 사실에 기초하였으나 작가적 상상을 가미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대화를 엿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남몰래 혜석을 흠모하였던 춘원 이광수, 그녀를 이해하는 듯 보였던, 해서 자신의 ‘삼천리’ 지면을 흔쾌히 내어주던 파인 김동환, 당당한 여기자 최은희, 자신의 재능을 한 남자와 묶어 현해탄에 던져 버렸던 윤심덕, 혜석을 은근히 놀리는 것 같으면서도 존경했던 소파 방정환 등..
혹시 영화 ‘Midnight in Paris’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면 꽤나 로맨틱했던 '지식인들의 최신식 대화'를 타임슬립 한 듯 볼 수 있어 무척 좋아할 것이다. 게다가 소설의 두 갈래 주된 흐름 속에 한 줄기를 맡고 있는 남녀 주인공인 초이와 독고완의 사랑 이야기도 책장을 성급하게 넘기고 싶게 만든다. 그다음 페이지가 어떻게 될까 궁금증에 조급해진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마침표까지 확인한 다음 왠지 쓸쓸함이 더해지는 소설, <나혜석, 운명의 캉캉>을 통해 고독하고 외로웠던 인간 나혜석을 만나 보시길.
커피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대화를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녀를 절망하게 했던 그 시절의 삶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멋진 책, <나혜석, 운명의 캉캉>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