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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Apr 08. 2022

훈련병 아들에게 쓰는 편지

군대 간 아들에게 쓰는 편지에 '스물다섯 스물하나' 결말을 알려주다니

아들이 공군에 입대한 지 3주가 지났다.

이번 주부터 인터넷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다.

처음엔 허용 글자 수 1200자를 꽉 채우고도 모자랐는데, 그다음은 1000자, 800자, 750자..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고생한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라는 골자에 살을 붙이고, 옷을 입히고, 장식을 한다.

성실해라, 배려해라, 다치지 마라.. 도 잊지 않고 쓰지만 어찌 쓰다 보니 엄마인지 선생인지 모를 말들을 막 하고 있다.

선생인 엄마의 한계라고나 할까.

그저께 편지에는 또 교사 엄마의 색깔이 묻어날까 심히 걱정되어 '고생한다, 보고 싶다, 사랑한다'에 더해 아들과 내가 어깨를 기대고 같이 본방 사수하며 봤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을 알려 주었다.


'훈아, 우리가 같이 봤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가 아쉽게도 끝나 버렸네. 백이진과 나희도는 헤어졌어.

15회까지 알콩달콩 잘 사귀다가 16회에 헤어지더라. 서로 껴안고 펑펑 울며 헤어지더구나. 엄마는 이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귀다 크게 싸운 적도 별로 없는데 서로가 바빠 자주 못 만나고 잘 챙겨주지 못해 누가 누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관계일 바에 헤어지는 것이 서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니 말이야. 그럼 백수 커플은 늘 해피엔딩인가. 서로 성장하는 커리어에 응원하고 이해하며 인내해야지, 백이진이 뉴욕 특파원으로 바빠져서 물리적으로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고 헤어진다는 건 좀 웃기지 않나? 고유림은 러시아로 귀화해서 한국을 아예 떠났는데도 문지웅과 헤어지지 않고 결혼했거든. 이게 뭐냐고..'


이걸로 1200자를 다 썼다.

아들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써야 하는데 나란 엄마는 드라마 결말에 대한 불만이나 쓰고 있다니 말이다.

오늘은 '고비를 넘기다'를 주제로 편지를 썼는데 지금 후회 중이다.

그냥 드라마, 영화 얘기나 할걸..

아들 군대 보낸 엄마들은 어떤 얘기를 할까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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