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피소드- What's this line for?
1995년 여름.. 40일간의 일정으로 처음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였다.
런던에서 일주일 가량 여행하다 파리로 갔다.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는 옛날 옛적의 이야기이다.
국제전화로 예약했던 파리 시내의 youth hostel은 막상 가보니 작은 성(castle)과도 같은 멋진 곳이었다.
널찍한 공간에 침대 세 개와 욕실까지 있는 아주 훌륭한 방을 얻은 것은 행운이었다.
친구와 나는 파리가 참 좋았다.
비록 집시들이 호시탐탐 내 배낭을 노리고, 당시엔 희귀했던(?) 동양여자들을 신기한듯이 쳐다봤지만 파리가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내게는 그저 '그까짓 것' 정도의 불편함일 뿐이었다.
파리에서의 어느 날, 친구와 나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여행책에 나와 있는 지도만 보고 어렵게 길을 찾아가다 엄청 긴 행렬이 눈에 띄었다.
‘저 긴 줄은 뭘까?’
여행 가면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긴 줄만 보면 내가 뭘 놓쳤나 싶기도 하고, 저 줄에 내가 서 있어야 하나 싶고 말이다.
궁금해할 시간에 얼른 물어보는 것이 좋다.
줄 서 있는 잘 생긴 남자에게 물어보려고 다가갔는데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키 작은 동양인 아가씨가 나의 질문 기회를 가로채 버렸다.
“What’s this line for?”
나는 그냥 “What’s this line?”으로 물어보려고 했는데 ‘for’를 쓰니 의미가 더 명확하게 전달되는구나..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가씨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이 줄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입장하는 줄이래요’라고 유창한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쳇, 누가 물어봤나..
그녀는 혼자 여행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한국사람 만나니 너무 반갑다며 자기도 우리와 같은 숙소에 묵고 싶다며 숙소가 어디인지 궁금해했다.
‘포코니에르’ 가에 있는 유스호스텔에 묵고 있다니 자기도 거기 잘 안다며 반색을 했다.
마침 방엔 침대 세 개가 있으니 같은 방에 묵는 것에 동의하고 호스텔로 돌아갈 땐 그녀와 같이 갔다.
호스텔은 개인별 지불을 하는 것이니 아무렴 어떠랴, 반가운 한국사람도 만났으니 우리도 좋았다.
그렇게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다음날 일어나니 그녀가 없었다.
데스크에선 그녀를 찾고 있었다. 우리에게 물어본 들 알 리가 있나..
이유를 물어보니 방값을 안 냈단다. 환전하면 주겠노라고 해서 줄 때까지 기다렸단다.
(요즘은 이런 아량은 절대 없다)
아.. 창피한 한국 배낭여행자여..
영어만 잘하면 뭐하누. 매너가 바닥인데..
당시 국외여행 자유화가 되면서 초창기 배낭여행자들은 이런 민폐를 자주 했다.
그래도 나는 그녀로 인해 아주 유용한 영어 표현은 하나 건졌지 뭔가.
전치사 관련된 수업을 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들려주는 나의 여행 에피소드이다.
*전치사를 문장 끝에 넣어서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의문문은 아주 많이 쓰인다.
What is this line for? (이 줄은 무엇 때문인가요?)
What is this book about? (이 책은 무엇에 관한 거죠?)
What are friends for? (친구 좋다는 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