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으로 쉰혼여행

신혼여행 22년 후 쉰혼여행, 또 사이판

by 달의 노래


1. Prologue
방학식 날 시작한 리모델링 공사로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싼다.
오늘은 또 어디로..
Donde voy~


이른 아침 갈 곳은 동네 단골 카페인 <좋아서 하는 카페>..
아침으로 예가체프 커피와 베이글을 먹으며 책을 읽고 기사 검색을 하고 페북동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본다..이 얼마나 여유로운 일상인가..만, 나는 인부 아저씨들의 발자국이 없는, 먼지와 본드 냄새가 없는.. 내 집에서 더 자고 싶고, 소파에 누워 혼자 tv보며 깔깔 대고 싶고, 그리고 또 자고 싶고, 또 tv 보고 싶다.
그나마 편히 쉴 수 있는 동네 카페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카페 죽순이로만 있을 수 없어 10시쯤에 읽던 책과 노트북을 배낭에 넣고 15분쯤 달려 나의 엄마 송태선 여사댁으로 간다.
엄마는 감기에 걸려 매우 고생 중이시다. 나도 한달 넘게 감기로 고생한 터라 그 지독함을 잘 안다.

엄마가 아프니 내 마음도 아프다.
점심을 차려 드리고 밀린 설거지를 한다.
말동무도 해드리고 싶은데 기침을 콜록콜록 하시니 말 보다 팔을 주무르고 엄마의 쭈글쭈글 작은 손을 꽉꽉 안마한다.
우리 엄마도 나 아플때 그러신다.
엄마의 낮잠 시간에 맞춰 나도 엄마 옆에 눕는다.
노인들은 왜 보일러 보다 전기장판을 더 좋아하시는걸까?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보일러 보다 전기장판을 애용하신다.
“여보, 어머니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라는 광고는 후지다.
“여보, 어머니댁에 보일러 가스비 내드려야겠어요~”면 몰라도 말이다.
뜨거운 장판 위에 누워있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슬며시 일어난다.

다섯시가 넘어 해가 지면 울적한 마음과 찌뿌등한 몸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간다.
벽지 작업이 먼저 끝났지만 전등이 없는 아들 방으로 들어가 남편이 오길 기다린다.
나 혼자 추운 방에서 먼지 흡입하고 본드냄새 맡다 먼저 죽기 싫다.
마음 같아선 무려 마중까지 나가고 싶지만 밖은 엄동설한이라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덜 추운 먼지 방에서 고독한 헤롱상태를 선택할 밖에.
어서 남편이 와서 내가 마셔야 할 먼지와 포름알데히드를 사이좋게 나눠 마셨으면 좋겠다.

2. ’2’를 핑계삼아..
집 리모델링 먼지와 냄새가 극에 달해 적어도 2일은 집을 아예 비워야 한단다.
초딩동창 쏭을 만나 결혼한 지 2월이면 22년째다.
22년 전 신혼여행 왔던 사이판으로 다시 둘이서 두번째 쉰혼 여행..
사이판 왕복 비행기 요금 22만원..
마침 지금은 사이판 시간 오후 2시..

억지로 맞추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무튼 22년 전 동행했던 친한 남자와 다시 사이판에 오긴 했는데 22년 전의 사이판과 달라진 것이 하나 없다.
그 세월동안 내가 꾸준히 업뎃이 되어서 그런지 똑같은 모습의 사이판은 오히려 낙후된 느낌이다.
그렇구나..내가 변했다.

제주도..
제주도민들만의 올레에서 전 국민의 올레가 되어버린 이후로 제주는 힐링의 아이콘이 되었다.
힐링 받으러 오는 사람들 덕에 언밸런스한 건축물들이 생겨나고,물가와 땅값은 오르고, 엄청난 수의 렌트카가 뿜어대는 매연과 쓰레기들은 개발의 독사같은 자식으로 남았다.
여기저기 뽈뽈 거리고 싸돌아 다니는 나는 할 말이 없다..
발전은 커녕 폐허가 된 건물들이 많이 보이는 사이판을 보니 언뜻 든 생각이다.
무자식 상팔자가 좋을까, 독사 같아도 돈 만들어주는 자식이 좋을까..

3. 필요한 것도 기대하는 것도..
뻥을 좀 보태자면 늙어가니 여행에 필요한 것도, 딱히 기대하는 것도 없다.
쏭과 나는 그저 깨끗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 하루 용돈 각 30딸라면 충분하다.
그 중 10딸라는 쏭의 아사히 캔 맥주 6개들이 값이다.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수영 하다, 수심 3미터가 넘는 풀에서 천천히 수영하다, 가져온 책을 읽다, 잠 오면 자면 그만인 쉼.여행이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손 잡고 해변을 걷다 만난 석양의 황홀함 속에서 한참 놀던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아니, 금방 까먹고 또 오기를.


4. 밤 하늘의 수 많은 별
어젯밤엔 별빛 투어를 했다.
가기 전엔 별을 볼 수 있을까 의심을 했고 가서는 내 눈을 의심했다.
불빛이라곤 하나 없는 만세절벽에 주차를 하고 무심코 하늘을 보니 별천지였다. 바로 눈 앞에 하늘이 있었고 별들은 너무도 촘촘히 박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대로 잔디에 누워 한참동안 별들을, 밤하늘을 바라봤다.

“여보, 소원을 빌어야겠어.”
“응. 뭐가 첫번 째 소원이야? 당신 건강? 내 건강? 아이들 공부 잘 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거? 두 분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거?”
... ...
글쎄, 순서라..

“알 이즈 웰..”
“그게 무슨 말이야?”
... ...
생애 두번 다시 못 볼지도 모를 별들의 고향에서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 싫어 그의 말을 씹었다.
쏭도 딱히 답을 듣고싶은 것도 아닌지 입 벌리고 하늘만 쳐다 보고 있었다.

5. 쌩쇼
아침 일찍 혼자 스노클링을 했다.
바닷물 흐르는대로 헤엄쳐 가다 뒤를 보니 쏭이 쪼맨한 사이즈로 백사장에 앉아 있다.
어익후야..내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
물 속에는 해삼들이 지천이고, 큰 생선들이 눈을 꿈벅이며 곁눈질로 아리따운 나를 쳐다 본다.
니모 같이 생긴 작은 생선들도 큰 생선 옆에서 산책 중이다.
이 넘들 옆에서 나도 함께 산책 하느라 해변에 두고 온 쏭을 잠시 잊었다.
돌아가야지..
물살을 거슬러 가자니 내내 그 자리다.
슬쩍 겁이 난다.
큰 생선들 뒤로 상어가 나오면 어떡하지?
공포가 모터 역할을 했다.
죽을 둥 살 둥 발을 움직이고 팔을 저었다.
쏭의 평화로운 표정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오니 힘이 쭉 빠졌다.
저 님은 알까?
내가 얼마나 쌩쇼를 했는지..


6. 기억 그림






7. Epilogue

여행기간: 1/5~1/10

항공편: 제주항공 특가 이용 22만원

숙소: 아쿠아 리조트 클럽 사이판(시내와 떨어진 조용한 분위기에서 제대로 쉴 수 있음)

주로 이용한 식당: 남대문(‘맛있는 녀석들’에 나온 한식당, 주인분이 굉장히 친절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저녁마다 갔음)

* 써퍼 클럽은 사진 찍기는 좋으나 음식은 비추

쇼핑: 전혀 안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