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헬싱키에서 쉬고 놀고 보고..

아테네움 뮤지엄, 천재 알토, 사우나와 수영하기

by 달의 노래

오후 세시 반, 헬싱키 항구에 내리니 또 비가 온다.

우버 택시를 호출할까 하다 대기시간이 20분이라 6번 트램을 타고 캄피에서 내린다.

마지막 3박을 할 집은 헬싱키의 주거지역인 캄피에 있다. 마지막 나흘 동안 헬싱키에서 단단히 살아보기..


이번 북유럽 여행의 숙소는 헬싱키 도착 후 호텔에서의 첫 2박 외엔 Air B&B를 통해 아파트를 찾았다.

그중 제일 험블한 숙소는 스톡홀름이었다. 비싼 물가에 비해 아파트 전체를 사용하는 비용치곤 꽤 괜찮아서 예약했는데 막상 가보니 호스트의 아파트 한 켠에 딸린 하녀 방(?)이었다. 출입문과 욕실이 따로 있어서 독립적 아파트로 소개할 수 있었나 보다.

그래도 위치도 좋고, 침대도 안락해서 좋았다.

숙소 이야기는 따로 모아 해야겠다.


무튼, 헬싱키 깜피 지역의 '디자인 아파트'라고 소개된 신규 아파트가 있어서 1월에 일찌감치 예약해 두었다. 가격도 좋았다.

호스트 이름은 Sami이다.

혹시 헬싱키에 여행 갈 분들은 Sami의 아파트에서 지내길 추천한다.

냉장고에 음식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서 문자를 보내봤다.

Sami, I checked in your house all right.

Nice and cozy space, indeed.

Q! Can I eat the food in the fridge?


Oh, absolutely. I bought all of them for you guys.

You can eat and enjoy everything in my apartment.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은 3박 4일 동안 먹기에 차고 넘쳤다. 국적불명의 라면사리도 다섯 개나 있어서 다음날 저녁엔 비빔라면까지 야무지게 해 먹었다.

트램 타고 오는데 골룸 같은 괴물 동상이 시원하게 하루 종일 소변을 보고 있다. 망측해라..
1층이 Sami의 집이다. 우리가 나흘 동안 살 곳..


사는 것 처럼 여행하기


여행을 하다 보면 어느 날은 여행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내가 만약 진짜 여기서 살고 있다면 오늘은 어떤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지냈을까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다.

원래 계획은 헬싱키에서 두 시간쯤 떨어진 핀란드의 대학도시이자 중세도시인 "투르크"에 다녀오기로 되어 있었다.

버스 예매까지 다 했지만 12유로를 날리기로 했다.

소윤이는 아테네움 뮤지엄에 가자고 했고, 나는 Allas Sea Pool 에 가자 했다. 온몸이 찌뿌둥해서 수영으로 뭉친 근육을 풀고 싶었다.

어차피 하루를 쉬엄 거릴거라 선택의 고민도 없이 아테네움에서 그림을 보고, 점심을 먹은 후 마켓 광장에 인접한 알라스에서 수영 후 사우나까지 하는 것이다.

아테네움 뮤지엄에 가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고흐와 고갱은 물론이고 북유럽 작가들의 작품과 천재 건축가 알토의 특별 전시까지 너무 좋았다.

요즘 감각적인 주택의 외관은 거의 알토의 설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시대를 앞서간 건축 설계와 그가 디자인한 가구 등을 직접 보게 되어 나는 몹시 흥분되었다.

1898년에 태어나 근 80년을 살다 간 그에게 '시간과 시대'란 그닥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대를 앞섰다'라는 구태스러운 표현조차 무척이나 시대착오적이다.


Alla Sea Pool은 최근에 생긴 헬싱키의 아웃도어 풀인데 항구를 떠나고 들어오는 실야 라인과 바이킹 라인 등 큰 배가 수영하고 있는 동안 옆을 지나간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거리며 내 이마 위를 날아다닌다. 배영하며 새똥 맞을까 잠시 두렵지만, 이 멋진 하늘을 등지긴 싫다.

너무 예쁜 그림? 창 밖 풍경이라고 하기엔 액자 속 그림들이 부끄럽겠어..
고흐 말년의 작품 <The Villlage>
Alla Swa Pool


Stockmann 백화점 앞의 버스커들

카모메 식당에 대한 집착은 결국 밥에 대한 집착이었다!


내 인생에 세 번 까인 적은 없다!

한 번은 테이블이 다 찼다며, 또 한 번은 수도관이 터져서 영업을 못한다며 까였던 카모메 식당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가보기로 했다.

먼저 전화를 걸어 영업을 하는지 물었고, 이어 예약이 가능한지도 물었다.

영업은 하고 있으며 예약도 된다고 한다.

누구에게는 하등의 의미가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대단한 의미와 목적성까지 부여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카모메 식당 여자주인의 친절함은 이미 경험한 바, 왠지 음식도 맛있을 것 같은 환상까지 더해져 열 번은 넘게 봤을 영화 "카모메 식당"의 실제 촬영지라는 원래의 의미보다 가서 꼭 밥 한 끼를 먹어야겠다는 목적이 나와 친구들을 지배했다.

일식과 한식.. 그 모호한 경계에 있는 음식들을 주문하고 탐닉했다.

된장국이면 어떻고 미소시루면 어떠랴.

김치면 어떻고 킴치면 어떠랴.

전골이면 어떻고 나베면 어떠랴.

세 번째 방문에 성공한 식당의 음식이 맛있어서 우리는 정녕 성공했다.

'포르보'에 다녀온 뒤라 몹시 지치고 피곤했던 내 육신에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오는 시간이었다.



Farewell, Helsinki!


마지막 날에 먹을 거라며 보물처럼 아껴 두었던 컵라면과 커피, 과일, 숭늉 등을 먹고 마지막 아침 산책을 나간다.

날이 흐리다.

해가 없으면 여름이라도 추운 곳이 북유럽이다.

쌩쌩 달리는 자전거를 보며 나도 저렇게 타보고 싶지만 망령된 청춘의 마음으로 몸에 흠집 난 채 비행기를 타기는 싫다.

공원의 청둥오리인지 거위인지 얘네들은 사람이 다가가도 무덤덤 하기 짝이 없다.

조생, 참 긴장감 없이 사는구나..


오다가다 보았던 '보타닉 가든'(확실한 명칭 모름)에서 장미꽃들을 보니 갑자기 어리둥절해진다.

8월에 웬 장미?

니 옷차림을 봐라.. 8월의 옷차림이더냐?

핀란드 장미가 조롱하듯 묻는다.

나의 고착된 인식이 깨지는 순간이다.


아, 나는 이제 여기서 그만 슝~하고 날아올라 집에 가련다.

몽골 하늘 어디쯤엔가 태양이 어둠과 밝음 속에서 바알갛게 태동하는 걸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