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rtian을 보고 자살 1등 한국의 오늘에 생각이 머물다..
(2015년 10월 12일 씀)
'리들리 스콧’ 이란 걸출한 감독, 전문적 지식과 정보에 상상력이 결합된 프로페셔널한 시나리오,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내는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기술, 거기에 ‘맷 데이먼’ 이기에 더 설득력 있어 보이는 영리한 생존법 등은 영화 ‘마션’을 빛나게 하는 멋진 요소들이다.
나는 이 최첨단의 기술이 집약된 할리우드 영화 ‘마션’이 지닌 덕목을 꼽으라면 더도 덜도 아닌 ‘메시지’에 끝까지 집중하는 애티튜드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비티’의 주제처럼 ‘마션’ 역시 내겐 생명의 가치와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이다.(여전히 나는 최고의 ‘지구 밖’ 영화는 ‘그래비티’라 생각하지만.)
‘그래비티’에서 배제되었던 미국인 특유의 위트와 유머감각은 삶을 지탱하게 하는 강력한 힘임을 느끼게 한다.
며칠 전 기사로 접했던 우리나라의 지난 5년간 자살 사망자의 숫자가 최근 지구 상에서 벌어진 전쟁 사망자보다 2~5배나 더 많다는 비극적 사실을 보며 '이누무 나라엔 도대체 무엇이 넘치고 모자라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비상식적이게 넘치는 것은 가정, 학교, 사회의 과도한 경쟁 조장 풍토이다. 이 부분은 너무나 깊숙이 뿌리 박혀있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가정사를 미화시키기 위해 한국사까지 건드리려는 이 나라에서는 딱히 해답을 기대할 여지가 없다. 그저 백년지대계로써 멀리 내다볼 때 건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해답은 어쨌거나 가정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모자라는 것들 중의 하나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삶의 여유를 갖게 하는 위트와 유머감각이지 않나 싶다.
유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에서 길러지는 덕목이며 갈등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이기도 하다. 또한 상대의 유머를 이해하기 위해 대화 중에 곧잘 생각할 여유를 주며 긴장을 풀어 주기도 하는 정신적 도구이다. 비록 가진 것 없어도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이 덕목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울 때 가르쳐야 하는 아주 중요한 생존기술이기도 하다. 물론 유머감각은 가르친다고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롭고 허용적인 부모가 나누는 재치 있는 대화를 듣고 자라는 아이들에겐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무언가가 있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배려하고, 자신의 생각을 잘 다듬어 말할 수 있는 능력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살다 보면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도 많다. 이럴 때는 은유를 담은 위트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도 있으니 이런 위트나 유머감각은 물질을 넘어선 삶의 여유이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장유유서, 상하 수직 관계의 예를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불평불만, 대들기, 말대꾸 등과 동의어인 분위기였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마음의 추는 점점 아래로 내려가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고, 급기야 자신을 표출하는 방식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10만 명당 29명의 자살률로 세계 1위의 치욕적인 기록을 달리는 한국은 건강하지 않다. 병이 무척이나 깊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말대꾸 가정, 말대꾸 학교, 말대꾸 직장, 말대꾸 나라라면 지금의 한국보다 훨씬 더 건강한 한국이지 않을까..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마션’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마션'은 끝까지 생명의 가치에 대해 집중한다.
어떻게 해야 살아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 해결(problem-solving)의 중요성에 대해 주인공 마크(멧 데이먼)는 이렇게 말한다.
"We have to solve one problem, and then solve another,
and the next.."
(대충 이런 내용의 대사인데 정확하지는 않음)
내일이나 한 달 후에 죽을지언정 지금 가장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하나씩 풀어 나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삶이며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죽는 것은 누군가를 위한 시간 단축이나 반대로 시간낭비가 아니다.
내가 버린 시간은 이미 시간이라는 개념이 아니고, 내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은 그 누구에게도 ‘시간’으로는 남지 않는다.
현재 힘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고3들이 봤으면 좋겠다.
직장을 잘린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마음의 병으로 아프고 좌절하고 있는 이들이 봤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시간은 당신을 포기하려 해도 나는 절대로 나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나의 시간은 내가 만들어 갈 때 의미가 있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무튼, 재미있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있는 두 시간은 별똥별처럼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