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얼굴만 바뀌었을 뿐.
휴강이 마치 강의 시간표 같았다.
진숙이와 나는 휴강 공지를 보는 즉시 51번 버스 타고 서면 가서 홍콩 영화를 뻔질나게 봤다.
소극장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영화 두 편쯤 보고 나오면 “독재타도! 호헌철폐! “ 의 함성이 이끄는 쪽으로 자연스레 발길을 옮겼다.
태화백화점 쪽이었다.
무리 속으로 들어가 행진하다 “아아악!” 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또 달음박질을 죽어라 했다.
달리다 친구와 갈라질 때 제일 무서웠다. 범일동 버스 정류장에서 한참 서성거렸다.
버스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친구를 기다렸다. 어차피 버스 운행 중단이 휴강처럼 잦던 때였다.
영도까지 걷기로 작정을 하고 걷다 보면 봉고차가 멈춰 서서 “학생들, 타요~” 하며 남포동까지 혹은 중앙동까지, 운 좋으면 집까지 태워 주던 날들이었다.
친절도 휴강처럼 잦던 날들이었다..
30년 전 내 나이는 지금 내 딸과 같은 나이다.
아이폰 8 사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내 딸의 나이일 때 나는 소극장에 처박혀 홍콩영화보다 말고 독재타도! 호헌철폐! 를 외치다 생판 모르는 님의 봉고차를 타고 집에 갔다. 엄마는 걱정을 감추고 밥을 차려 주셨지만 아부지는 눈에 힘주시며 나보고 간댕이 큰 가시나라고 하셨다. 1987년, 21살.. 사는 게 재미도 없고 무섭지도 않은 간댕이가 부어있던 나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1987의 우리는, 꿈이 없어서 무서운 것도 없었나 싶다.
그 시절의 우리는 그저 '민주주의' 하나만 꿈꿨다.
2017의 21살은 개인의 구체적인 꿈이 있지만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신음하는 청춘들이 많으니 인생의 팍팍함은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고통이자 뚫어야 할 벽이다.
영화 <1987>에는 주인공이 없다.
주인공이 따로 있을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주연급 배우들이 단역, 조연을 마다하지 않고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어 무척 고마울 따름이다.
장준환 감독을 존경하게 되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다가 결국엔 그냥 놔뒀다.
울음이 토처럼 나왔다.
옆에 앉은 여고생들이 흘끔 거려도 어쩔 수 없었다.
‘얘들아, 이거 우리 이야기거든.. ‘
영화가 끝나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옆자리 아이들이 일어나서 나가고 한참을 앉아 오열했다. 심장이 아팠다.
말없이 기다려 주던 남편이 손을 내밀었다.
우리 둘만 덩그러니 남았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니 혼자 앉아 있는 아저씨가 한 명 더 있었다.
그렇게 1987은 우리 셋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