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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Dec 22. 2022

손이 큰 게 아니라 음식은 나눠 먹는 것! - 동지팥죽

아침에 든 백만가지 생각


2022. 12. 22. 목요일     


일 년 중에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 

동지에는 팥죽을 먹어야지. 그래서 어젯밤부터 팥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혼자 살지만 음식은 나눠 먹어야 제격이고 나눌 사람도 많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나처럼 음식을 만드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사람은 음식을 나눌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너무 많이 하면 안된다. 손이 큰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고로 많이 하겠다 생각하고 하면 급식소만큼 많아진다. 적게 만든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자! 팥은 700g만 써야지. 그 정도면 동네 친구, 엄빠랑 나눠 먹고 오후에 조명 시공하러 오시는 승정이 형님 한 그릇 드릴 양이 될거야.        


팥죽을 쑤다 보면 시장통에서 파는 팥죽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팥죽은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음식이다. 다른 죽도 오래 걸리긴 하지만 팥죽만큼은 아니다. 

일단 팥은 잘 삶아지지 않는다. 생각보다 오래 삶아야 익는 놈이 팥이란 놈이다. 팥을 다뤄본 사람들은 다 알지만 엄청 단단하다. 손으로 팥알을 눌러 쉽게 뭉게질 정도로 삶으려면 제법 시간이 지난다. 일반 냄비에 삶으려면 족히 한 시간 이상을 걸린다. 대부분 압력솥을 이용해 삶는데 나는 갖고 있는 샐러드 마스터 MP5에 넣고 삶았다. 대충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 다음 공정은 팥을 곱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믹서기로 껍질과 알맹이를 통째로 갈았다. 믹서기 성능이 좋지 않았던 옛날에는 삶은 팥을 채반에 넣고 껍질과 알맹이를 분리해 가며 곱게 내렸으니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 일인가? 요즘도 시장에 가면 삶은 팥을 채반에 내린다. 그걸 다시 끓여 죽을 만드는 것이니 시장 팥죽은 정말 싼 것이다. (고작 죽 한 그릇! 이라고 값어치를 깎아 내리지 말고 만든 이의 정성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먹자!고 한 말이다)     


여튼 믹서기에 곱게 간 팥을 보니.... 

또!

생각보다 양이.... 많다........?


곱게 갈아진 삶은 팥


여기에 찹쌀과 새알심을 넣고 동지팥죽을 끓이려면 물도 더 넣어야 하고 8리터쯤 되는 냄비 한 가득 될 예정! 


하아~ 나는 정말 손이 크구나.      


사실 새알을 빚을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그래도 동지에 먹는 팥죽인데 새알심을 넣어야 제맛이지 싶어 새알을 빚었다. 새알 골라 먹는 재미는 또 팥빙수의 떡 골라 먹는 재미만큼 좋지 않은가? 

찹쌀 익반죽을 느무 오랜만에 했더니 감이 사라져 힘도 들고 잘 안되고! 반죽하다가 힘 빠져서 반죽의 반만 빚어 넣었다. 


잘 끓고 있는 팥죽 (왜 색깔이 이렇게 나올까..? 예쁜 색이었는뎅)


팥죽이 끓는다. 

아. 기분이가 좋다. 

여기에 설탕 넣어 단팥죽으로 먹고 

새알심 다 건져 먹은 후에는 칼국수 넣어 팥칼국수 해먹어야지! 


상상만해도 신나는 팥죽 한 냄비를 보며 행복감을 느꼈다.


동짓날 아침밥 - 팥죽한상


아침에 팥죽 먹을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간밤에 잠을 설쳤을까?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일어나 동네 친구에게 팥죽 배달을 하고 내가 먹을 동지팥죽 아침상을 차렸다. 죽상에 뭐가 더 필요하겠냐마는, 그래도 동치미는 놔야 하고 죽과 곁들일 반찬은 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동생이 만들어 준 갈비찜을 마치 장조림처럼 찢어 놓고 제철이라 물 많고 달달한 무로 만든 무생채와 짭짤한 고추지 무침을 놓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훌륭한 새알팥죽이구마!      




엄빠에게 팥죽 배달 연락을 드리니 오셔서 드시겠다고 한다. 팥죽 조찬 회동 그거 좋지! 엄빠 드릴 동지 아침상은 또 업그레이드 버전이어야 하니 이거 저거 꺼내서 차려보았다.


엄빠가 드신 팥죽 한상



엄빠는 팥죽 한 그릇씩 제대로 드시고 커피까지 한 잔 하시고는 잘 먹었다! 말씀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엄빠가 내 집에 뭘 드시러 오시는 것이 좋다. 대단한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그냥 지나다가 들르시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내어드릴 수 있는 음식과 차가 있는 내 집도 좋다.         




아침을 잘 챙겨 먹으면서 좋은 점 하나는, 조찬회동이 쉽다는 것이다. 

아침을 함께 나누는 것은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먹는 것보다 간단하면서 얘기하기 좋다. 대부분 아침에는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전날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은 자면서 조금 상쇄되고 어쨌거나 아침을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꽤나 행복한 일이거덩. 게다가 아침엔 공기도 좋은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 

나로서는 내 공간을 점령하는 손님 같은 느낌이 안 들어 좋다. 나는 손님이 오는 것도 좋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집이 나만의 쉼터로 돌아와야 나의 생활 리듬이 돌아오는데 조찬모임은 다들 알아서 오래 머물지 않고 각자 자신의 터전으로 간다. 그래서 더 좋다    



 이렇게 대충 나눠 먹으면 냄비가 좀 비어야 하는데...? 새알심만 다 골라먹었네? 더 빚어 넣어야겠다. 이따 승정이 형님 오시면 한 그릇 드리고 형수님과 형님 딸 하윤이 몫으로 보내 드려야지.    


   



오늘은 체감온도가 영하 17도! 이 추운 날 일하러 오시는 형님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난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을거다. 추우니까!


여름보다 겨울이 좋았던 예전의 나는 이제 늙어서 없다.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싫다. 이렇게 인간은 적당히 보수적으로 늙어가나보다. 극적인 어느 것 하나 받아들이지 않으려 피하고 지 좋은 것만 하나 하나 해나가면서 살아가는.     


아. 보다 진보적으로 살기 위해서.... 산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영하의 기온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북한산 칼바람이라도...?

고민이네...?     




팥죽배달 - 진짜 죽집 배달 서비스 같아서  괜히 재밌어 사진을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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