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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Jan 11. 2023

헤어진 다음날 - 찹쌀닭죽

아침에 든 백만가지 생각



2021. 1. 17. 일요일   

  

온 정성을 다해 만난 프로그램, <로또싱어>의 막방 다음 날이다. 거의 7개월 동안 매달려 사랑한 프로그램의 마지막 생방송. 허구헌날 해본 생방을 뜬금없이 쫄려서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슬쩍 체하기했고 그 여파가 다음 날 아침까지 올 정도다. - 내 몸은 정직하다. 슬프거나 힘들면 바로 아프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찹쌀 닭죽!     

이 닭죽은 히스토리가 있는데 때는 바야흐로 로또싱어 첫 방 다음날 2020년 10월 4일!

그날 아침, 시청률이 나오고 유 본부장님이 집 앞에 찾아오셨더랬다. 그전에도 시청률 안 나오면 밀항할 거라고 농반으로 얘기하긴 하셨는데 진짜로 밀항을 해야겠다며 불쑥 오셔서는 같이 가자셨다. 물론 난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일단 차에 탔다. (지금 와서야 하는 얘기지만 시청률이 안 나온 게 아니다. 잘 나온 시청률이다. 다만 화제성이 낮았을 뿐) 그리고는 북한을 가는 건지 계속 "개성"을 향해 가다가 그때까지 아침을 먹지 않아 배고픈 내가 밥 좀 먹고 가자고 해서 들어간 식당이 토종 닭백숙집 이어따!


본부장님은 월북인지 밀항인지를 하기 위해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왔다고 했고 나 혼자 먹어야 할 판인데 그 토종닭이라는 아이가 어마무시하게 커서 당연히 다 못 먹었다. 역시나 무지 많이 남아 집에 거의 다 싸 들고 왔는데 내가 누군가? <집안에 들어온 음식은 모두 내 뱃속에 버린다! 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음식 쓰레기 줄이기 마녀가 아니던가?

그날 바로 토종닭 해체 후 따로 싸준 찹쌀밥 넣어 죽으로 6인분으로 소분해 냉동실에 보관해 온 닭죽! 

그러니까 이 닭죽은, 

로또싱어의 사연이 담긴, 아니 아주 깊은 인연이 있는 역사적인 닭죽인 것이다!


(사진의 유 본부장님 얼굴은 초상권 생각하여 얼굴의 반만 보여드림)



그 놈을! 막방 끝나고, 프로그램과 헤어진 다음 날 아침에 먹는다니, 참으로 의미(?)가 있다. 내가 담은 동치미와 엄마표 콩잎지를 곁들여 한 그릇 먹고 나니 이제사 내일 내보낼 보도자료가 눈에 들어온다. 일해야겠다.





보통은 프로그램이 끝나면 시원섭섭하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던 부분도 생각나고 힘들었던 것들이 끝남에 시원하기도 하다. 아마도 이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런데 내게 <로또싱어>는 좀 특별했다.      


어떤 프로그램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한다. <로또싱어>라고. 다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말하라고 해도 답은 같다. 

개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트로트 오디션 두 개를 끝내고 만난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게다가 음악의 장르도 국악부터 클래식, 뮤지컬, K-Pop, 트로트, 록, 발라드, 비트박스까지 다양한 장르를 다룬 음악방송이었는데 잡식성 음악 취향을 가진 내가 2년 동안 트로트에 파묻혀 있었으니 다양한 음악을 한 무대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던 로또싱어의 일이 대단히 재밌었던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했다. 음악을 보고 듣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무대를 구성하고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고 재밌는 일인가?     

 

<로또싱어>는 나만 사랑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연주를 한 하우스 밴드도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현존하는 음악의 거의 전 장르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고 (덕분에 한동안 연주하지 않던 장르를 하느라 손이고 입이고 성한 곳이 없는 연주자도 있었다) 무대 디자인 감독님도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어 재밌다고 했었다. 카메라, 조명, VJ 감독님들도 한 무대 한 무대마다 달라지는 콘셉트 때문에 준비할 것은 많지만 늘 새로워서 신나게 촬영하셨더랬다. 출연자들은 말해 뭐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일이 좋았을 것이다. 45명의 싱어들은 함께 녹화한 다른 가수들과 더욱 친밀해졌고 어떤 분들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등산 모임, 각종 운동 모임을 하며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행복은 아주 멀리 있지 않다. 각자 정해진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시너지로 행복감을 맛본다. 시청률이 안 나왔다고 (정말이지 안 나온게 아닌데!!) 시즌2는 물 건너갔지만,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행복하다.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아마 이런 프로그램은 살면서 다시는 할 수 없을 거예요.”라고 음악감독님, 유 본부장님과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로 다시는 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내 인생에 그토록 재밌게 일할 수 있었던 ‘즈음’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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