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IAM 사전
소명 召命 (부를 소, 대추 조 / 목숨 명, 운수 명)
명사 1.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
2. (기독교)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일.
= 성소聖召
: 하느님이 특별한 목적의 도구가 되게 하려고 부름.
특히 성직 또는 수도(修道) 생활을 하도록 부르는 것을 이른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간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즈막히 국수 한 그릇 말아 아침을 먹기로 했다. 식탁에 앉아 밥 친구로 <김어준의 뉴스공장 : 겸손은 힘들다> 오늘자 방송을 틀었다. 어제 뉴스 정리를 해주는걸로 이만한 콘텐츠는 없다 싶어 거의 다 끝나가는 라이브를 켰다. 이명세 감독과 거의없다와 조진웅 배우가 앉아있길래 벌써 영화 코너로 넘어갔군. 싶어 앞쪽으로 돌렸다.
북살롱 오티움 대표 정혜승 이란 분이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나는 이 코너를 처음 본다. 이분도 처음 본다. 국민청원 기획자라고 한다. 우와- 대단한 분이구나! 하며 국수를 한입 먹었다. 그리고 이미 화면에 나와 있는 책 표지를 보았다.
어떤 동사의 멸종
일단 제목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정혜승 대표의 말에 따르면 사라지는 직업에 대한 기록을 한 책이라고 했다. 책에 소개된 직업들은 앞으로 사람이 아니라 AI나 로봇이 할 것이므로 사라지는 것이며 저자는 2, 3년 정도 직접 노동을 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승태’라는 이름은 아마도 필명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했다.
김어준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거참 독특하네..” 그가 독특하다면서 한 말은 ‘왜 사라져가는 것을 기록하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글쓴이의 정체를 궁금해 했는데 맥락상 단순하게 그가 노동자인가, 작가인가가 궁금한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쫓아가는 시대인데 저자는 기록한 ‘청소하다’, ‘요리하다’, ‘전화받다’ 같은 동사와 연관된 직업이 사라져 가는 것을 기록한다니,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인지, 노동을 하다가 기록자가 된 것인지, 무엇이 소명인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정혜승 대표는, ‘저자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 모르겠지만 저자는 노동자고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책의 내용을 보면 그 직업에 대해 어떤 편견도 없고 자신이 겪은 것을 그저 기록했을 뿐이라고만 했다. 언급한 직업들은 하겠다 마음을 먹으면, 말하자면 손을 뻗기만 하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2, 3년 정도 하고 나면 다른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여기까지 듣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음... 김어준은 대체 왜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한거지?’
그리고 그의 말에서 “소명”이란 단어가 나왔었다는 것을 복기했다.
아. [소명]!
- 우리는 어릴 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질문에 “직업”을 말하는 문화에서 자랐다.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얘기는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훌륭한 사람이 될거야” 정도가 다인데 보통 이런 대답에는 부차적인 질문이 생긴다. “뭐해서 훌륭해 질건데?”
- 우리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나서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산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이 없기에,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이 없기에.
- 세상의 모든 직업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창조라는 ‘업’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자와 작가는 결과물의 형태만 다를 뿐, 둘 다 “창조자”다. 다만 그 일에 “소명”을 갖고 하면 [창조]가 되어 나는 “창조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결과물과 상관없이 나 자신은 기계가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노동자’란, 특히 책의 저자가 언급했다는 텔레마케터, 택배 상하차, 뷔페식당의 주방보조 등은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몸을 써서 하는 사람이다. 많이 배우지 않아도 되고 경력도 중요하지 않아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뭔가 계획하고 고도의 지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 노동을 “소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작가’란, “아이디어”를 구조화하여 글이라는 도구로 “형상화”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모든 사람을 “작가”라고 봐주지 않는다. 아마도 예술작가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그림을 그리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 춤을 만들고 추는 것 모두, 業이 되면 “작가”다. 업이 된다는 것은 그 행위로 “먹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이고 싶은데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없는 사람은 앞에서 언급한 “노동”을 하여 먹고 살기도 한다. 소명은 글을 쓰는 작가인데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노동을 한다고 말이다.
김어준의 입장에서는 소개하는 책 이전에도 한 권의 책이 있다는 저자가 (찾아보니 두 권의 책이 더 있다. 꽃게잡이 경험을 쓴 <퀴닝 (구판: 인간의 조건)>, 양돈농장, 육계농장 등에서 일한 경험을 쓴 <고기로 태어나서>가 그것이다), 사라져가는 직업에 대해 기록을 하고 책을 냈다니, 이 사람은 쓰는 것에 소명이 있는 것이냐, 노동을 하는 것에 소명이 있는 것이냐, 이 사람의 소명의 방점이 어디에 있는지가 궁금했던 것일 수 있다.
정혜승 대표는 저자가 [노동자]라고 했다. 그리고 [기록자]라고 했다. 소명이 궁금한 이에게 직업을 정체화하여 말한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러자 나는 이 책의 문장들이 궁금해졌다.
방송작가 생활 이십 수년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자료조사를 하고 헌팅을 하면서 내가 한 일, 결국 지금 다른 분야, 다른 느낌의 글을 쓰면서도 하고 있는 일은 “경험과 관찰”이다. 작가는 (간접)경험과 관찰, 질문이 몸에 배어 있는 자들이다. 저자가 [작가]의 소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노동은 일종의 경험과 관찰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소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노동 행위’가 경험이 아니라 직접적이다. 직접적이라는 것은 행위에 완전히 녹아들어 ‘합일’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를 글로 옮긴다 할지라도 문장에 그것이 묻어있을 것이었다.
정혜승 대표는 결국 시간상의 이유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김어준은 언젠가 책의 저자, 한승태 님의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책 소개의 목적은 누군가 그 책을 읽기를 바래서고 우선은 그 책을 누군가 샀으면 해서다. 나는 내용을 소개받지는 못했지만 글이, 문장이 너무 궁금해서 바로 주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같은 인간이 나만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 그 코너는 성공한 것 아닌가?
책을 주문하면서 작가 소개를 읽어 보았다.
창원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꽃게잡이 배, 주유소, 양돈장 등에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선배 작가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서울의 주인들이 그럴듯한 일자리를 맡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들의 기록자로 임명했다. 지은 책으로는 《퀴닝》(인간의 조건 개정판), 《고기로 태어나서》, 《어떤 동사의 멸종》이 있다.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교양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그가 쓴 문장도 몇 부분 읽어 볼 수 있었다.
P. 8 작가란 어떤 면에선 버바 같은 존재다. SF를 쓰든 동화를 쓰든 논픽션을 쓰든 깊숙이 내려가 보면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언제나 하나뿐이다. 버바의 새우가 내게는 '노동'이다. 사람들이 일하는 이야기. 먹고살기 위해 우리가 참고 벼르고 각오하는 이야기. 인간이 무의식의 세계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서 지지고 볶는 이야기. 내가 읽고 싶고 또 쓰고 싶은 이야기는 항상 그런 것이다.
이 부분 글을 보면, 이렇게도 보인다.
버바가 “글”이라면 새우는 “노동 전문 에세이”라서,
그는 노동을 체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는 글을 쓰기 위해 노동을 하는가, 노동을 하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는가?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신은 사람을 세상에 내보낼 때 그 영혼에게 소명을 준다. 이분에게는 어쩌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여러 ‘노동’에 대해 경험하고 느낀 것을 구조화하여 글로 형상화하라는, 그렇게 창작하라는 소명을 준 것은 아닐까?
그러니 그가 “작가”건 “노동자”건 그 직업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사라져가는 직업에 대한 기록을 하건, 새롭게 떠오르는 직업에 대한 기록을 하건 “노동”에 대한 기록이라면, 노동에 대한 글이라면 그게 뭐든 상관이 없지 않겠는가? 소명이란, 생각해본적이 없어 그렇지.., 알고 보면 정말로 단순하기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