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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Jun 26. 2023

일필휘지를 향한 반성문

독백

"엄훠~ 저 단박에 브런치 작가가 됐지 뭐예요?"


감격어린 말을 하면서 시작한 브런치를 무려 6개월 동안 방치했다.

그저 만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남긴 나의 아침밥 일기의 기록이 아까워 정리를 해보고자, 어쩌면 무기력 상태였던 (그 즈음, 바닥에서 겨우 기어 올라 어딘가에 매달리고 있었다) 나를 건져내줄 구원의 "그 무엇"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한 것이 <브런치>였다. 그런데 세상에! 얼토당토 않게 조횟수가 겁나 높은 글들이 나오는 것이다. 헐! 구독자도 별로 없는데 하루 아침에 몇 천명이 이걸 봤다고? 대체 왜?? 처음에는 신이 났다가 무서워졌다. 분석이 안돼서.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까.


참나. 인간이란게 배운 도둑질 무시 못한다고 방송하던 년이 시청률 분석하듯이 조횟수 분석을 하려니 가당키나 하겠냐는. 본 사람들이 글을 끝까지 읽었는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연령대는 어떤지, 또 다시 들어오는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그걸 모르는데 분석이 되겠냐고? 아니 그리고, 해서 뭐할건데? 분석하면 쓰는 소재가 달라지고 사진이 달라지고 문체가 달라지고 그럴 거냐며... 그냥 "배운 도둑질"이지.


그러나 방치한 이유는 경로 분석이 안돼서 무서워진 탓이 아니다. 그냥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매주 하나, 두 개의 글을 올려야지! 라고 나와의 약속을 하고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렇게 지켜봤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의무감처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마치.. 재밌지도 않은 일인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거기다 원고료도 짠데 원고 쓰는 느낌이랄까?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일단 올리고 보는 나.


'어! 이게 아닌데? 이러려고 시작한게 아닌데?'



어릴 때, 글짓기 대회 나가면 상도 받고 PC통신 시절에도 글 쓰는데 몰두한 적 있으나 단 한번도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보니 글을 쓰는 사람인 것 같은 [방송作家]라는 직업을 갖게 되어 남들이 볼 때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있다. 나는, 나같은 예능 작가는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닌, 참으로 애매한 어느 선상에 있다고 늘 말한다. (내가 아주 어린 작가였을 때 어떤 선배는 "예능 작가는 말을 쓰는 사람"이라고도 하셨다)


방송 일을 시작하고 25년. 말은 썼을 수 있으나 글은 쓴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노트에 나누어 쓰던 별 것 아닌 고민과 생각들, PC통신에 흩뿌렸던, 지금 보면 아마도 당장 폭파 시켜버릴 것 같은 세기말의 20대의 내가 쓴 것들은 그래도 "글"이었던 것 같은데 그 후로 나는 글을 쓴 적이 없다.

어떤 후배는 "내 글"을 쓰고 싶어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명색이 작간데 팀 안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보다는 타인의 아이디어로 다른 사람이 해야 할 말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더란다. 그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때 굉장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애초에 나는 내가 쓰는 대본이나 기획안이 "글"이라고 생각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내 글"에 대한 욕구가 없었다.


어쩌면 그 후 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아마도 후배가 표현한 "내 글"이 내겐 그냥 "글"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가 그렇듯 안하던 것을 하려면 잘 안된다. 안하던 운동하면 근육이 뭉치고 탈이 나서 약값이 더 들듯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그 만의 근육이 필요한 것이다.



一筆揮之

반복하는 것을 지루해서 못 견디는 나는, 한번 쓰고 나면 다시 읽으며 고치는 작업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일필휘지.다! 어릴 때 부터 그랬다. 잘 써서 그런게 아니라 성격이다. 일을 하면서는 그래도 오타나 중복되는 의미의 문장, 긴 문장 자르기 같은 것을 하려고 한 번은 다시 보긴 하지만 첫회 대본 말고는 그리 꼼꼼하게 보는 편이 아니다. (물론 내가 쓴 것에 한해서다. 남이 쓴 대본은 또 엄청 꼼꼼하게 보고 수정한다. 내가 쓴게 아니니까 지루하지 않아서)

일필휘지.는 종이가 귀하던 옛날에나 미덕이지 요즘처럼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시대에는 미덕이라 보기 어렵다. 조선시대까지 안가더라도 원고지 쓰던 시절만 생각해도 그 시절 작가들은 이야기의 구성이 머릿속에 대충 다 박혀 있고 분량도 조절돼 있을텐데 우리 처럼 '한글과 컴퓨터'세대는 뇌의 구조가 이미 달라져 있으니 일필휘지.는 그냥 성의없음.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나는, 쓰는 근육이 일필휘지.에만 편향되어 있어 쓰는 중간에 외부의 영향으로 끊기거나 내부의 반발심 (쓰다보니 재미없는데? 같은..)이 생기면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반드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글이라고 생각되면 마무리는 하는데 처음과 달리 후반부의 글이 영~ 힘이 떨어져 용두사미가 된다. 때로는 앞과 뒤의 주제가 판이하게 다르기도 하다. 그리고 일단 마무리를 지었다면 그걸로 끝! 다시 제대로 써보고자 반복하지 않는다. 아. 진짜 성의 없지 않은가? 이러니. 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글"을 써보고자 열었던 브런치.에 일주일에 몇 개 업로드. 라는 의무감으로 성의 없는 글을 올리며 재미없게 쓰는 게 말이냐 방구냐?!

그래서 정신 차리고 차근 차근 잘 써서 업로드 해보고자 했지만 제대로 쓰려는 마음을 먹는게 참으로 힘들었다. 뭘 쓰고 싶은지도 다가오지 않았고 확실한 것은 "글쓰는 근육"이 없었다. 더 핑계를 대자면 몸이 좀 아팠고 그래선지 마음이 아주 바빴다.


몸이 안좋아 움직이기가 불편하니 생각이 많아지고 살이 더 쪘다. 몸은 더 불편해지고 불안해졌다. 나는 불안해지면 먹고 마시고 쇼핑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아픈 것을 다스리기 위해 열심히 치료받았고 조금 낫기 시작했을 때는 살을 빼기 시작했다. 그렇다. 지금 나는, 버릴 것들을 버리고 키워나가야 할 것들을 찾아내고 있다. 키워나가고 싶은 것 중 하나, 그것이 일필휘지.근육 말고, 글쓰는 '다른 근육'이다.  


한 겨울에 쓰다만 아침밥 일기들은 일단 뒤로 물리고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했다. 사실 아직 "바로 이거야!"라고 확신에 차 있지는 않지만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일단은 또 다시. 도전해 보는 것으로. 만 46년 8개월을 살면서 이제야 겨우 알게 된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또한 반성하면서. 근돼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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