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한국 버전

by Sheisthelady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접한 후 나는 일본 신경정신과의 기묘한 모습에 폭소를 터뜨리며 언젠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었다. 그러던 중 내 나이 마흔 여덟이 되었고, 서른 여덟이 되었을 때 상담을 했던 프로이드학파의 고수께서 병원을 접으신 까닭에 국립대 의대 정신과 교수님이 제자들 중 가장 훌륭한 2인을 소개해 주셨다. 나는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논현동의 작은 의원을 선택했다.


그 병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병원보다는 의원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그 의원은 논현역 근처의 대로변에 위치한 상당히 오래된 건물 2층에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걸어서 오르내려야 한다. 현대식 엘리베이터가 발명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지만, 시작은 기원전 그리스의 아르키메데스로부터였다. 한데 21세기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대로변 건물이라니.. 물론 우리동네 대로변 건물 중에도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 여튼 당시에 나는 번아웃 상태였기에, 2층까지 걸어 올라가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트리비우스 '건축사서'의 오더를 따른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1층의 층고는 상당히 높았던 까닭에 다리가 퍽퍽하고 숨이 찼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L 의원의 문을 열자 매우 자그마한 내 서재 정도의 공간이 펼쳐져 있고,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머리가 부시시한 직원이 인사말도 없이 무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대기 중인 환자 대신 무료함이 가득하여 숨쉬기 어려운 진공 같은 공간만이 존재했다. 내가 예약을 한 사람이고 지금 정확한 시각에 맞추어 왔노라고 설명하자, 그녀는 아무말 없이 원장실에 노크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 가세요"라는 형식적인 한마디조차 생략되었다. 그녀는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기묘한 모습이었다.


원장실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왜 왔어요?"가 원장님의 첫마디였다.

"C 교수님 소개로 왔습니다."

"저는 꿈 분석을 합니다. 융학파를 지지하기 때문이지요."


서른 여덟에 다녔던 병원 선생님은 프로이드학파였기에 히스토리 테이킹을 하면서 상담을 진행 했었다(적어도 숙제는 없었다). 주로 교수님(퇴임하셨어도 당시엔 교수님이라 불렀었다)이 질문 하시면 나는 매우 공손한 자세로 청자가 가장 이해하기 쉽도록 생각을 정리하여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또박또박 답변을 하곤 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무려 6개월 동안 가끔 교수님이 질문하고, "잘 했어요", "흥미롭군요" 정도의 반응을 하는 외에는 매우 고요한 상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스스로를 반추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데 상당히 유익한 상담이었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반면 이 융학파의 원장님 방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과 사진들이 가득 걸려 있고, 바닥까지 이것저것 쟁여져 있어서 산소가 부족해 보였다.


"다음주부터는 꿈을 적어 오셔야 합니다. 저는 꿈을 분석합니다. 동의하시나요?

저는 프로이드식 해석보다는 융 방식이 더 과학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오늘은 왜 여기에 왔는지 말씀해 보시지요"

"자살충동이 심해져서 왔습니다"

"자살은 하나의 출구일 뿐입니다. 꼭 나쁜 것도 아니지요"


헐.. 자살률 넘버원인 우리나라에서 자살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처음 들었다. 물론 나는 서른셋까지만 살기로 작정하고 다양한 미학적 자살법을 연구하다가, 서른 두살 겨울에 갑작스러운 결혼을 하면서 자아와의 약속을 져버린 비겁한 인간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장려하는 말처럼 들리는 원장님의 반응은 범상치 않았고, 심지어 그는 그가 직접 쓴 자살에 관한 논문을 나에게 주기도 했다. 케이스들은 자살 실패를 한 환자들이 임사체험을 한 내용들이었고,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은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아서 나는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계속 살고 싶어요?"

"엄마 때문에요. 엄마 돌아가시면 저도 가겠지요"

"... 엄마한테 가스라이팅 당했나요?"

"... ??"


첫 대화는 이런식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차로 30분 거리의 의원까지 6개월 동안 성실하게 세션에 참여했다. 사실 매일 꿈을 적어서 제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REM 수면 중 잠이 깬다면 쉽겠지만, 꿈이라는게 기억이 안나기도 하고, 잠시 생생하다가 일상이 시작되면 연기처러 사라지는 것이라서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었다. 융은 의식의 태도가 한쪽으로 치우칠수록, 꿈은 그 반대 경향을 보여주어 심리적 균형을 회복하려 한다고 본다. 따라서 내가 고안한 나름의 기술은 '무의식에 말걸기'였다. 매일 잠 잠자리에 들면서 무의식에게 당부했다.


"네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꿈을 통해 나에게 알려 주렴.,"


나는 직업이 만들어낸 습관 탓에, 성실하게 특히 읽는 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꿈과 함께 꿈의 내용과 관련된 나의 경험, 앞선 두가지에 대한 나의 해석'을 에피소드별로 정리해서 프린트 한 종이를 제출하고 상담에 임했다. A+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A-는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안내 데스크의 여자만큼 무표정한 원장님은 "판사도 교수도 꿈을 그냥 적어와요. 여기 보세요. 쓸데 없이 혼자 분석하려 하지 마세요"라고 답변 했다. 맞는 말씀이시다. 내가 스스로를 분석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왜 의원을 찾았겠나? 6개월 동안 상담을 진행하는 사이에 나는 사무실 건물의 지하 쇼핑몰을 통해 지상의 다른 건물로 전너갈 때마다 미학적 죽음을 생각하곤 했다. 누군가가 지하 3층으로 나를 밀치거나 또는 스스로 지하 3층으로 뛰어내릴 것 같은 충동이 일어서였다(실제로 스스로 지하 3층으로 뛰어내려 자살한 케이스도 있었다. 모두가 쉬쉬하지만).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연옥에 살아남아 있다.


의사는 자제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조언했다. 공포영화는 아예 못보고(옆지기는 좋아함) 통상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저것을 던진 후에 청소는 어떻게 하지?"가 궁금해지는 나에게 의사는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했다. 던지고 싶으면 던지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마구 배설하라는 조언이다. 하지만 평생 욕을 입에 담는 일을 해본 일이 없어서, 그리고 순간의 감정 폭발이 배출한 쓰레기를 치우기 싫어서 나는 여전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이순을 맞아서 나는 생각한다.


"못할게 뭐람?"


매주는 아니지만 상당히 빈번하게 방음이 안되는 이 의원에서는 비좁은 대기실안에서 고성이 오가곤한다. 누군가가 프랙티스에 대한 불만을 표하기도 하고, 예약 시간을 착각했거나 예약 시간과 무관하게 본인이 먼저 상담을 받기 원하는 환자들이다. 어떤 환자들은 내가 상담실에 들어갈 땐 멀쩡하게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날에 원장님은 잠시 상담을 멈추고 상담실 밖으로 나가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고, 오지랍 넓은 나는 상담시간을 지키기 위해 늘 분쟁 조정에 참여 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면 원장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런 자리에 앉아 나의 꿈 일지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현실에서는..이라고 설명을 시작하면, 원장님은 그에 대한 대꾸 없이 "그 때 기분이 어땠어요?"라고 질문하고는 했다. 꿈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마당에 당시의 기분을 묘사하라니..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몇가지 약물을 처방해 주었다.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복용하고 있는 안정제와 수면 유도제, 수면 유지제 등은 L원장님으로부터 시작되어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복용 중이다.


48세에 상당기간 상담을 한 후, 58세에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L의원은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다. 다만 무표정한 데스크의 안내자가 엷은 웃음을 띄며 "오랫만이예요"라고 한마디 한 것이 전부였다. 어느날 밖에서 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내가 상담실에 들어갈 때 데스크의 부스스한 머리와 무표정의 여자가 강아지를 안고온 여자와 조용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 환자가 갑자기 소동을 일킨 것이다. 부시시한 데스크 여자의머리채를 강아지를 안고 온 환자가 붙잡고 있었다. 강아지는 이모셔널 애니멀이라 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에, 비행기 탑승 시에도 안고 탈 수 있다. 그런데 그녀는 왜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가졌을까? 원장님이 나가고 나도 따라 나가서 원장님은 환자를, 나는 놀란 강아지부터 안았다. 그리고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데스크의 여성과 한자 사이에 끼어들어 둘의 팔을 떼내었다.

일상의 상식을 뒤엎는 그 선생님은 토요일 오전까지 상담치료를 한 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비박에 나선다고 본인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건 블로그에 적고는 했다. 원장님도 피난처가 필요하겠지.. 날 것의 모습으로 자연에서 힐링을 하는.. 그런데 자신의 블로그에 실명을 노출하고(나는 익명으로 운영한다), 비박하면서 촬영한 사진들 중 대부분을 본인의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난 사진을 업로드 한다는 점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참, 그 건물의 화장실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쪼그려 앉아 볼일을 봐야 하는 구조이다. 약을 받으러 같은 층의 약국을 방문하면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약사가 "원장님은 알콜 중독이세요"라고 귀뜸해 준다. 즉 나는 우울증과 알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반문한 의원에서 알콜 중독자의 처방을 받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인들이 신경정신과를 소개해 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이 의원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