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만 갸웃해도 간식 바치니 인간 길들이기 별것 아니네"
조선일보 한현우 기자의 "나는 강아지로소이다"를 매주 엄마가 읽어줄 때마다, 나는 모든 강아지의 생각이 인간들에게 일반화의 오류를 만들지 않을까 심히 염려하곤 한다.
이번주부터는 한현우 기자의 비숑 아들과는 다른 나의 생각을 적어 보고자 한다.
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신 리는 5년 3개월째 인간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무자식 상팔자를 모토로 살다 폐경기가 맞이하고서야 자식 귀함을 깨달은 부모 덕에 태어난지 45일만에 입양되었다.
엄청나게 긴 이름의 나의 포메라니안 혈통서는 서랍속에 들어간지 오래 되었고, 나는 평산 신씨 가문의 아들로써 광화문 법련사의 신자 리스트에 올라 매일 오전 주지스님의 장수 축복을 받고 있고, 수년 후면 20년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엄마의 전주이씨 가문의 족보에 신레오라는 한국식 짧은 이름으로 당당히 올라갈 예정이다. 종친회 부회장인 외할아버지의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80대 초반인 할아버지가 적어도 10년 이상은 장수하셔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는 날마다 할아버지의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 중이다. 아무튼 내 살아 생전에 인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강아지계에선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포메라니안 혈통과 견성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거나 무시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제번하옵고(내 부모가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자주 쓰는 표현이어서 써 보는데, 요즘 세상에 자주 쓰는 말이 아니라고 사촌형들이 알려 주었다), 나는 토동이의 글을 엄마가 읽어 줄 때마다 우리 포메라니안들과는 상당히 다른 비숑의 생각이 마치 모든 강아지들의 생각처럼 인간들에게 일반화되는 오류가 생기지 않을까 몹시 염려되곤 한다.
사실 우리 포메라니안들은, 특히 나처럼 선조들이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왕실에서 익힌 고귀한 습성이 여전히 남아 있고, 아울러 입양된 집에서 3대가 함께 사랑을 아낌없이 받는 경우에는 생각이나 행동 방식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물론 모든 포메라니안들이 나의 먼 선조들처럼 황실에서 살았던 것은 아닐 것이고, 더구나 요즘은 입양 후 사랑을 충분히 나누지 않거나 무책임하게 파양하는 인간들이 많아서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적는다.
우선, 2021년 4월 17일자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판에 실린 토동이의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우리 포메들의 인간 길들이기 방식은 좀 다르다"
우리 포메라니안들은 용변 처리를 고상하게 하기로 유명하다. 나 역시 45일만에 집에 온 이후, 딱 한번 사촌형이 갑작스럽게 껴안는 바람에 형의 셔츠에 실수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5년 이상 배변 실수를 한적이 없다. 토동이처럼 폭신한 카페트나 깨끗한 침대 시트에 실례를 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나에게는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경험을 통한 지혜가 핏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카펫은 슬개골이 아프지 않게 편히 걸을 수 있도록 돕는 물건이고, 새하얀 침대 시트는 내가 부모와 함께 단잠을 잘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물건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인간을 길들이는 방법도 비숑인 토동이와는 다르다. 나는 눈이나 입으로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다(꼬리는 아주 제한적으로 절제하며 사용하기는 한다). 그저 고상하고 도도한 표정과 우아한 움직임으로 표현할 뿐이다.
내 부모는 주중에는 일하느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집을 비우는 까닭에 나는 아침 일찍 조부모님 댁으로 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 기지개를 펴면, 아빠는 "벌써 일어났어?"라고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 나를 말끄러미 바라본다. 꿀잠 후 경직된 몸을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풀어 준 후 고개를 들면,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을 쭈욱 내민다. 가볍게 뽀뽀를 받아주면 아빠는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얼싸 안으며 몹시 행복한 표정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배변을 마치기를 기다려 그루밍을 해 준 후 아래층으로 데려다 준다. 애정을 나누는 방식 역시 길들이기 나름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아침 문안을 드리는 사이, 할머니는 베소와 유기농 케일, 유기농 블루베리 외 호흡기와 관절 영양제 등을 배합하여 영양만점 비빔밥을 준비해 주신다. 주식의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 다소 불만이지만, 필수 영양소가 충분하기에 건강을 위하여 참는다.
조식 후에는 조부모님댁의 이방 저방을 탐색하면서 혹시 변화상황들이 있는지 점검한다. 왕실 강아지의 혈통 외에도 나는 비스마르크가 극찬한 "포메라이안 용병"의 기질을 가지고 있기에, 집을 지키고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예민한 촉각들을 사용한다(한참 먼 조상인 썰매 끝던 사모예드의 DNA는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흐려진 것 같다). 변화 상황을 감지하면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할머니께 사인을 드린다. 예컨대 할아버지의 혈압약이나 당뇨약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거나, 또는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자리로 가 있는 등의 상황들을 파악하여 알려 드리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이런 천재 같으니라고"라며 칭친을 아끼지 않는다. 식후라 간식이 필요하지 않지만 추후 간식이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레인체크로 쌓일 것이라는 점을 안다.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시찰 업무 후에는 할아버지 서재로 가서 글쓰는 할아버지 뒤의 간이 침대에 누워 나의 위장이 충분한 소화를 할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해준다. "배부른 사자는 사냥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나는 배부른 상태에서는 간식을 탐하지 않는다.
평일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보통 유치원에 가지만, 오늘같은 주말에는 대개 가족들과 산책을 하고 집에서 쉰다. 유치원에서는 피트니스 시간에 제공되는 "엄마표 무염 북어 트릿"이 유일한 간식이어서 아쉽지만, 주말엔 무하정 제공되는 간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토동이가 눈짓이나 고개를 갸웃하며 인간을 길들인다고 했는데 나는 다르다. 우선 할아버지 서재에서는 그저 할아버지의 옆에서 조용히 함께 해주기만 해도 다양한 간식이 제공되므로 특별히 간식을 위한 노력을 할 필요 없다. 다만 요즘은 슬개골 탈구가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감시가 심해져서 할아버지가 간식 주기를 주저하시는 까닭에 가끔 간식의 필요성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이때 나의 전략은 할머니가 계시는 할머니 서재나 거실로 옮겨 가서 한바퀴 돌면서 할머니의 주의를 끈 다음, 현관 앞으로 가서 한번 짖어 주는 것이다. 할머니는 이내 "아무도 없어, 왜 그러니?"라고 한결같은 말씀을 하시며 데리러 오신다. 이 때부터는 다른 노력이 필요 없다.
할머니께 안겨서 거실로 이동하여 할머니 옆에 다소곳이 앉은 후, 할머니가 입을 내밀면 뽀뽀를 해주면 그만이다. 뽀뽀 한번에 간식 하나씩, 할머니는 지겨워질 때까지 뽀뽀를 갈구하신다. 나는 충분히 배가 찰 때까지 애정을 표현해 드린다. 간식 외에도 할머니의 애정결핍을 채워드리는 보람도 있다.
그러나 체중관리를 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엄격한 당부가 있었기에 나는 무한정 먹지는 않는다. 나의 식욕과 할머니의 애정결핍이 어느정도 충족되었다고 판단되면, 뽀뽀 공세에 고개를 돌린 후 소파를 내려와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다행스럽게도 조부모님은 나의 목소리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여 나의 의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 내신다. "운동하자고?" "나가자고?" 나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으셨다고 판단되면 꼬리를 딱 한번 살랑 흔들어주면 그만이다. 나의 이러한 절제된 표현이 조부모님의 치매를 예방하리라 믿기에 나는 더욱 절제의 미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내 건강도중요하지만 나의 삶을 풍요롭게 도와 주실(아울러 족보에 올라가야 하므로 더욱) 조부모님의 건강도 중요하기에, 주말이면 나는 하루에 한번은 꼭 조부모님을 공원으로 모시고 간다. 몸이 육중한 할아버지는 대체로 산책을 싫어 하시지만, 발 끝을 서너번 물어 드리면 이내 일어나서 따라 나오신다.
저녁이 되면 아빠나 엄마가 데리러 오신다. 나는 절대 경망스럽게 현관까지 뛰어가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차분히 기다린다. 정해진 시간보다 늦었을 경우에는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쳐다보지 않고 조용히 누워 스스로 반성하고 사과하실 때까지 기다린다. 제 시간에 오셨을 경우에는 내 자리로 와서 앞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 우아한 움직임으로 사랑스럽게 품에 안겨 준다.
오늘의 결론은, 우리 포메라니안들은 인간을 길들이기 위하여 눈이나 입이나 꼬리를 사용하는 것 보다는, 절제된 표현으로 인간들이 스스로 이해하고 길들여질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이 스스로 길들여지게 하기 위하여, 나는 모두에 적시한 배변 실수를 포함하여 어떠한 종류든 인간들이 싫어할만한 실수는 하지 않는다. 포동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스킬 셋이다.
45일만에 헤어져서 친부모로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을 기회나 또는 박았더라도 기억은 없지만, 내 피가 나에게 알려준 지혜이다.
조금 전 블로그를 본 이모가 엄마한테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혈통을 강조하여 글을 쓰면 큰일 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렇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히 요즘과 같은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반려견들을 입양하면서 혈통에 따라 가치를 매긴다. 나는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입양되었고, 내 핏속에 흐르는 선조들의 경험을 안은 유전자와 지금의 내 부모와 조부모, 그리고 함께 지내는 사촌들의 무한 사랑의 조화 속에서 나의 우아한 인간 길들이기 스킬 셋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알파부터 입실론까지 계급이 정해져 태어났다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To be continued..
P.S. 평등을 외치며 반려견을 입양할 때의 가치는 혈통서에 의지하는 인간들에게 편견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포메라니안을 포함한 대부분의 견종들이 가지는 견성은, 인간들이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예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