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신경정신과 주치의는 나를 심미형 HSP(Highly Sensitive Person)로 분류했다. 매사에 지나치게 예민해서 쉽게 강박이나 우울증 시달리기도 하고, 예민한 만큼 일할 때 장점은 있겠지만 반대로 살아가는데 단점도 많을 것이라 했다. 주치의는 와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HSP의 특성 상 와인을 예술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피스트적 설명도 덧붙였다(소피스트들은 통상 알려진 바와 달리 소송이 난무했던 그리스 시대의 변론가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명예에 누를 입히는 표현이 아니기를 바란다). 과유불급이 좌우명이지만 그의 말대로 대개는 예민한 것이 사실이어서 감정과 행동으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따라서 사는게 스케이트 타듯 매끄럽지는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소규모 아파트는 실버타운과 다를바가 별로 없다. 젊은 사람이라고는 부모가 살고 계셔서 아이를 맡길 요량으로 입주하는 경우 외에는 거의 없다. 물론 내 동생도 같은 케이스여서 부모님과 동생과 나는 같은 아파트의 동일 라인에서 살고 있고, 상당수의 집들이 비슷한 형편의 작은 동네이다. 아파트 내 암묵적 규칙이 거주민을 엘리베이터 등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것이라서, 같은 라인에 사는 분들과 대부분 목례 정도는 하고 지내지만 나의 예민함은 모르는 이와 잡담까지 허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휴직 기간을 6개월여 가지게 되면서, 특히 수영장에서 입주민들(사실은 나와 비슷하거나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들이다. 물론 나도 뒷방 늙은이로 앉아 있을 할머니 나이다)과 짧은 대화를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특히 낯가림이 심한 내가 결국은 손을 들만큼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세명의 여인들과는 종국에 책을 빌려 주기도 하고, 몇번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차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그이들 중 나보다 한살 많은 A는 하루키를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어느날엔가는 우리집에 들러서 두개의 서재에 책이 가득한 것을 보고, 하루키 신간이 있냐고 물어서 최근 몇년 사이에 신간 또는 재판으로 나온 책들을 빌려 주었다. 답례로 그녀는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한권 더 사 두었었다는 책을 내게 선물했는데, 첫장에 "사랑하는 형부와 언니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나는 모르는체 했다.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은 라디오 피디로 일하면서 무료로 배달온 신간들 때문이었다. 신문기자가 되기 위해 도서관에 들어간지 한달 반 정도 지났을 때, 방송사 취업을 원하는 친구를 따라가 중간점검을 할 겸 시험을 치렀고, 운 좋게 합격했다. 원하는 자리는 아니었으나 나는 더이상 도서관에 처박혀 있기 싫었던 까닭에 그냥 입사했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을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일인으로써 방송국은 시끄럽기 그지 없고 사람들은 기묘했다. PD나 기자나 엔지어나 모두 나의 상식과는 맞지 않았다(아니 나는 그들처럼 좋은 성격이 아니었다). 특히 그 시절에는 사장이 되고자하는 야망을 품은 이들이 만들어 낸 여러 라인들 사이의 갈등, 공채와 특채(학생회장 출신 등 낙하산)의 갈등 등 사내 정치가 극에 달했었다(물론 나는 10년을 약간 못채운 상태로 퇴사했기에 이후 상항은 모른다. 여튼 80년대 말과 90년대엔 그랬다). 각종 소음과 사내정치에 질려 신문사로 옮기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였보던 나에게 어느날 국장이 물었다.
"넌 뭘 가장 좋아하니?"
"책읽는 것이요."
"그래 그럼 책에 관한 프로그램을 춘계 개편에서 만들어 줄테니, 그만 두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너는 지금 하는 일에 적합한 자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요즈음 방송사들은 시도때도 없이 시청률 또는 청취율에 따라 프로그램 개편을 하지만, 내가 일하던 시기에는 춘계, 추계 개편이라는 룰이 있었다. 개편을 앞두고 우리는 늘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기획안을 작성해야 했다. 국장은 약속대로 나에게 신간을 소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 시간대를 내 주었고(비록 주말의 한적한 시간이었으나), 덕분에 나는 무상으로 집에 장서를 쌓게 되었다. 당시 출판사들은 통상적으로 3권의 신간을 보내왔다. 나는 한권은 회사 도서관으로 보내고, 한권은 선배들용으로, 그리고 한권은 선배들의 묵인하에 개인 소장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몇년 정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시기에 나는 약 2천여권의 도서를 수집할 수 있었고 많은 출판사 관계자들, 평론가들과 시인, 소설가들을 만났었다. 물론 그들은 대부분 주당이어서 맑은 정신으로 자리에 앉아 있기 쉽지 않았고, 어떤 책들은 내 취향과는 너무 달라서 집에 가져가지 않기도 했다.
나의 첫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등이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묵직한 철학책들을 읽어왔던 나에게, 하루키의 저작들은 처음엔 대중성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는 책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어느 순간 어쩌면 나와 많은 면에서 닮은 하루키의 늪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나는 철학적 몽상가라기 보다는 대중적 몽상가로 변모해갔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을 그만 둔 이후, 나는 가끔 그의 신간을 읽기는 했지만, 더 이상 그의 늪에 빠질만큼 공감은 하지 못하는 현실주의자가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직업이 극한의 이성을 요하는 것으로 바뀐 까닭일 것이다.
하루키 본인은 매우 성실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나는 다시 대중적 몽상가로 변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우리집에서는 '파김치 아주머니'로 통하는 그녀로부터(처음 그녀가 말을 걸어올 때 파김치 좋아하세요?였고, 나는 실제 파김치를 매우 좋아하기에 그녀가 우리집에 첫 방문을 했을 때 그녀는 파김치를 한통 가져 왔었다) 하루키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저작들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대중적 몽상가의 늪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병원 다니기가 일상인 현재의 나의 삶이(어머니와 아들병원 포함) 실재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몽환적인 날들을 보내던 중, 나의 외아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름 족보가 있는 화이트 포메라니안이며 9살 10개월을 넘기고 있는 아들은 고관절 질환과 기관지 허탈, 갑상선 저하증과 호르몬 불균형 등 다양한 질환을 안고 있다. 사보험 가입 기준이 건강한 7살인데, 아들은 훨씬 전에 이미 질환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험 가입은 불가했다. 아들의 고관절 이상형증 및 퇴행성 고관절염 치료를 위해 자주 대학병원을 들락거리는 외에도, 최근 한달반 동안 아들은 목과 등, 가슴에 매우 심한 알러지와 진균성 염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국내 최고라는 대학병원 피부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호전되기는 커녕 점점 나빠지고 있다(시아버지도 생전에 늘 "국내 최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왜 악화일로냐"며 회진 온 주치의에게 호통치시곤 하셨었는데 이젠 이해가 된다). 알러지 전문인 피부과 주치의는 '할머니 할아버지 리스크'를 점검해 보라고 했다. 그렇다. 할아버지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우리 아들에게도 조금씩 공유될 것이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두분 모두 아무것도 안주었노라 손사래를 치시지만 그럴리가 없다. 새하얀 시루떡 같은 조그만 몸에 검고 큰 눈동자를 반짝이며 얌전히 턱밑에 앉아 있는 아들의 시선을 모른체하기 어려우셨을게다. 여튼 알러지라는 것이 꼭 새로운 음식이 아니더라도 평생 아무렇지도 않았던 음식에서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니까..
이순의 내가 1-20대로 돌아간 듯 몽상가의 날들을 보내던 중 갑작스레 아들의 병세가 악화되니 매우 당황스러웠다. 아들은 알러지에 더하여 심하게 구토를 했고, 그날밤 이후 와인에 더하여 평소보다 수면제를 두배로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영화에서 영국 수상으로 등장한 여배우가 "와인 두병에 수면제까지 먹고 간신히 잠들었는데 이 시간에 나를 깨울만큼 중대한 사건인가?"라고 소리치던 장면이 문득 생각난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대학병원 응급실을 다녀왔던 까닭에 심폐소생이 필요하지 않는 한 응급실이 무의미함을 알기에, 뜬 눈으로 아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중 여명을 맞았고(아들은 우리의 머리 위에서 주무신다), 대학병원 외 다른 옵션은 없는지 휴대폰을 들고 전전긍긍하던 중 수의학계의 허준으로 불리는 선생님의 병원을 찾았다. 당연히 9시 오픈일 것이라 생각하고 가칭 허준 선생님의 병원에 갔으나 10시 30분 오픈이어서 기다리던 중, 대학병원 피부과에서 연락이 왔다(플랜 B로 전화해 두었다).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인지 자신할 수 없는 몽롱한 상태에서, 여러 질환을 앓고 있는 만큼 새로운 병원보다는 오랜기간 여러과의 기록이 남아 있는 병원이 나을 것 같아 허준을 포기하고 대학병원으로 갔다.
피부과 주치의는 뜬금없이 자신의 생대추 에피소드를 말씀 하셨다. 본인은 어려서부터 생대추를 정말 좋아했는데, 어느날 보호자가 가져온 생대추를 먹고 나서 우리 아들처럼 온몸이 짓물러서 한달 동안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야 했다고 했다. 알러지 전문가이지만 자신도 피해가지 못하고 발병했었던 것처럼, 아들도 알 수 없는 어떤 물질을 섭취한 까닭에 발병한 바, 늦은 나이에 시작되었지만(강아지 나이 열살이면 사람으로 치면 칠순이다) 앞으로는 자주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는 내가 앞으로 10여년 동안 피부과 주치의를 언제든 다시 만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마찬가지로 알러지는 기묘하기 이를데 없는 증상이라는 것이 교수의 설명이었다. 한달반 전에는 항생제 내성을 고려하여 스테로이드 연고만 5일 동안 바르고 날마다 소독 및 일주일에 두번 약용 샴푸로 목욕을 시키라고 했었다. 그럼에도 악화 일로이다보니, 이번엔 스테로이드와 항생제 그리고 간 보호제 등을 처방해 줄테니 날마다 약 잘 먹이고, 날마다 세번씩 소독해 주고, 이틀에 한번씩 약용샴푸로 목욕하면 나아질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번에 회복되더라도 무엇인지 모를 그 알러겐은 앞으로도 비슷한 증상을 반복적으로 일으킬 것이라고 하니 답답한 일이다. 그리고 주치의는 한달반 전에는 왜 이번처럼 처방하지 않았는지? 그것도 기묘한 일이다. 그로부터 몇일이 지났으나 아들의 피부병은 별 차이가 없고 아픈 사람이 신음을 하듯이 끙끙 앓으며 잠자는 아들을 나는 여전히 밤새 뜬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내일은 추가 검사를 한다고 하니 무엇인지 원인을 찾고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알러겐은 꼭 음식에서만은 아니고 환경적 요인도 있게 마련이다. 주변환경 변화를 보면 고관절염 때문에 걷지 않으려는 아들을 위해, 어르신댁 복도에 창고에서 가져온 카펫을 깐 것이 전부였다. 체격 좋은 아버지도 혼자들기 버거운 카펫을 나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끌차에 올려 폐기물 처리 장소로 옮겼다. 아마도 와인의 능력일 것이다. 배부를만큼의 약을 먹고 재활병원을 하루 두번씩 다니면서 약간은 좋아지는듯 했던 내 육체와 정신은 와인 피클이 되어가고 있고, 잠이 부족해 하루키 탓을 안하더라도 24시간 몽환적이다. 나는 아들을 지킬 수 있으려나 ..
호모 사피엔스의 아들이나 딸은 어려서 기쁨을 주고 한 때 속을 썩이다가 철이들면 부모 곁을 떠나간다. 나의 아들은 나이가 들수도록 더욱더 가까이서 돌보아 주어야 한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아들은 태어난지 45일만에 내게로 와서 매순간 기쁨을 나누고 있다. 바라만 보아도 좋은 아들은 백석 시의 나타샤를 닮았다. 크고 상꺼풀진 눈 끝이 약간 쳐져서 늘 사색하는 분위기를 풍기고(실제 3년 반 동안 다녀도 사회성이 길러지지 않자 유치원에서는 사람으로 치자면 조용히 사색하는 성격 때문이라 했었다), 대소변을 철저히 가리고 집안 물런 하나 깨드린 적 없는 깔끔쟁이다. 하지만 나의 생활 패턴을 보면 우아한 아들을 잘 돌볼만큼 오래 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적어도 부모님이나 아들보다는 하루만큼 오래 살았음 하는 것이 내 바람일 뿐이다. 물론 오래 사는 동안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없다(태어난 이후 꿈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들이 나보다 하루라도 오래 살 수 있다면 나는 조금은 덜 괴롭게 삶을 마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의 몸과 정신은 와인피클이 되어 너무나 오래 살아버리지 않을지 염려되기도 한다. 와인피클로 살아 있다면 피클은 아들을 어떻게 돌볼 수 있으려나..
#HSP #호모사피엔스 #포메라니안 #하루키